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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공화국의 몰락 6 [일어서는 로마군]

작성자카이사르 마그누스|작성시간07.01.25|조회수481 목록 댓글 3

게르만과의 전투이후 첫 참패를 맛본 로마군은 여러가지를 터득하게 된다.

1. 기술력과 지구력에서는 로마군이 압도하지만. 적의 파격적인 돌격력은 무시할수없다는점.

2. 적들의 기병력은 갈리아 기병보다 훨씬더 우세하고 파격적이라는 점.

3. 현지는 적에게 유리했고 각도시들마다 이미 게르만화 되어 있으므로 보급이 불가능하다는것.

이 3가지는 로마군의 여지껏 무시해왔던점들이다.

그동안 연전연승을하던 로마군은 첫번째 터득한점에서 완전히 허를찔렷다. 게르만을 갈리아 취급한것이 그문제였다. 두번째. 이것도 기병대를 갈리아기병대로 착각했다. 세번째 게르만화되었지만 로마화 하면 된다는 로마의 생각이였지만 현실은 훨씬 어려웠다. 게르만은 각도시들마다 병력을 차출해 다키아는 그야말로 땅만 많았다. 농사지을 사람도 별루없었다. 다 징병에 끌려 갓기때문이다. 이때 로마의 경제인들이 다키아땅에 부동산을 차렸다면 꽤 돈을 벌었을만큼 농사를지을만한 땅은 엄청나게 많지만 인구가 없었다. 그만큼 세금도 적게 들어왔다. 그리고 보급도 당연불가했다 인구수가 2천을 크게 밑도는 도시에서 보급을한다고해도 과연 얼마만큼이나 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런상황을 알고있던 로마는 이탈리아에서 지원군을 파병하기에 이른다.

이로서 로마군은 일리리아군단과 이탈리아군단으로 나눠져서 다키아 중부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때 로마군에 승전보가 전해졌다. 트라키아의 3개군단을 로마군이 두개군단으로 격파했기 때문이고 적의 군단을 거의 전멸시켰다. 이승전보는 발칸반도 전역에 퍼졌고 이때부터 발칸반도는 군단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트라키아에 대한 정면 승부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승리를 말미암아 로마군은 비잔티움을 공략할수 있게 되었고 그러는동안 다키아 중부 절반은 획득한 일리리아군단과 이탈리아 군단도 사기가 치솟았다. 이때 갈리아에서는 2년간의 휴전을 깬 골족이 다시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갈리아중부는 로마화가 시작되고있었고 사회간접자본도 실행되고있었지만. 독자적으로 방어군을 형성하기엔 역부족이였다. 이에 로마도 다시금 이탈리아 중부와 북부에서 군단을 모집하여 갈리아 중부로 보냈다. 가는길에 알프스산맥에도 한개군단을 배치해놓고 갔다. 그당시 알프스도 로마화가 진행되었지만 독자적인방어군을 형성하기엔 역부족 이였기 때문이고 알프스또한 전쟁터가 되었기 때문에 이탈리아를 방어하기위해 한개군단을 배치했다.

발칸반도와 갈리아에서 싸우는 로마군은 비잔티움까지 함락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동방의 패권자로서 한때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까지 포위하고 파르티아 영토의 98%를 장악하고있었던 셀루시드 제국이 결국 멸망하고야 만다. 이집트와아르메니아 그리고 파르티아의 이 연합군에 협공을 받은 셀루시드 제국은 그렇게 멸망했고 마지막 황제는 임시수도에서 자결했다고 한다. 이제 동방은 이집트,파르티아,아르메니아가 주도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로마는 다키아 중부를 완전제패 하고 비잔티움일대를 확보하고 갈리아 중부를 점차 확대 해 가는등 게르만전투 참패를 딛고 일어선 로마는 다시금 서방의 패권자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는동안 로마군에 유능한 인재가 나타나게 되는데 그가바로 Julianus Caelius 였다. 게르만과의 전투이후 이자를 받게된로마군은 Julianus Caelius 의 등장으로 로마군은 다키아 중부를 다시 탈환하려하는 게르만군에대해 엄청난 승리를 가져다줄 인재를찾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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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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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틸라 | 작성시간 07.01.25 21살 얼굴이 ㅋㅋㅋ
  • 작성자mistery | 작성시간 07.01.27 지도보니까 도시가 상당히 많네요.
  • 작성자클레오파트라남편내 | 작성시간 07.01.27 저거 다먹으려면 -_-;; 반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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