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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라케다이몬 건국기-도로스 왕자 전사록-개전

작성자포에니안|작성시간07.02.11|조회수157 목록 댓글 1

'그들은 감히 우리를 침범하지 못할것이다.설사 그런다 해도 그들의 군대는 알렉산더 대왕의 후손인 우리 마케도니아의 군대에 맞서 마치 망치로 두들긴 살얼음과 같이 박살날것이다.' -미케도니아의 왕 에우노스

 

B.C 257년,라케다이몬 왕국과 마케도니아 왕국사이 전운이 감돌자 귀족회의에서 마케도니아의 국왕인 에우노스는 이렇게 말한바가 있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이 그 다음해,동해안 토벌군과 마케도니아 토벌군 합 약 5000천여명으로 구성된 라케다이몬의 침략군이 일제히 라케다이몬-마케도니아의 국경을 넘었다.

이것이 바로 남북조 통일전쟁의 시작이였다.

2000명은 동해안 토벌군에,3000명은 마케도니아 토벌군에 편입되어 파죽지세와 같은 기세로 자신들의 목표를 향하여 진격해갔다.

하지만 먼 훗날 헬무트 폰 몰트케가 한말중에 이런말이 있지않은가.

'어떠한 전략도 적과의 첫 충돌후 지속되는일이 없다.'

이것은 물론 고대전에도 적용이 되는듯싶다.

동해안으로 향하던 2000여명의 동해안 토벌군은 테르몬 주변전투에서 군전력의 30%에 해당하는 600명을 잃었으며 그후 주력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나 1100명이 테르몬에서 주저 앉아버렸으며 나머지 3000명은 라리사를 점령,수도 펠라의 인근에서 적의 주력과 충돌,거의 반절에 해당하는 약 1200여명이 전사하여 라리사로 후퇴하려했지만 추격군의 추격은 피할수없었다.


 

 

 
추격군은 마케도니아 토벌군의 잔당을 라리사 인근의 호수에서 따라잡을수 있었다.
여기서,마케도니아 토벌군은 배수진을 펼치고 결사항전을 펼치게 된다.

 
전투중에 마케도니아 토벌군의 총 지휘관이자 제일 총망받던 마르도니우스가 전투중 전사하였다.
하지만 끝까지 남은 전사들은 항전하였다.
 

 

하지만 전투의 결과는 너무나 뻔한것이였다.수적열세는 물론이고 퇴로까지 막힌그곳에서 마케도니아 토벌군은 섬멸되었다.
 

이렇게 양군의 정지,섬멸로 라케다이몬의 기습은 완전한 실패로 끝이 나버렸다.
약 4천명이 전사하였고 마케도니아군의 손실은 1천명 안밖에서 그쳤다.
이제 마케도니아군은 재정비,공세를 취할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라케다이몬은 군전체를 마케도니아군이 공세를 펼치기전에 재 편성해야하는 국난에 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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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이미지 편집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스샷 퍼온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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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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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annibal | 작성시간 07.02.11 으흥.. 배수진이군요.. 굉장한 시도였지만 역시 구원군이 없다는 전제하에서는 매우 위험한 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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