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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EB)Safot Softim biKathardast2

작성자Daum Bark|작성시간07.02.15|조회수187 목록 댓글 0

Hanno는 귀족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자신의 영토적 야심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하라 사막의 유목민들에게 눈을 돌렸다.

Cydaus는 사막의 반군도시로서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있는 목책성이었다. 이 곳으로 원정을 계획한 카르타고는 1/2군단규모의 병력을 동원하여 지루한 행군 끝에 포위했다. 전투는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사막에서 보급의 부족은 곧 전멸을 의미했으니까.

더군다나 도시를 포위하는 기간이 오래되면 적의 구원군이 몰려올 것이 뻔했다.

전투는 별 특이사항이 없는 카르타고군의 승리로 끝났다. 적은 인구덕분에 식민지가 되는 정도로 끝났는데, 문제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이었다. 광산도, 농장도 없는 사막도시의 유일한 생계수단은 낙타였다. 낙타를 팔아서 겨우 먹고사는 종족을 정벌한들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귀족들의 실망은 컸으나, 굳이 원정을 한다고 하니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그들로서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거기다가 Gader에서 민란이 터져서 결국 카르타고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반군도시가 되었다. 더더욱 귀족들은 할말이 없을 터였다. 진작에 Hanno가 반란의 우려를 경고한 덕택에 그들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졌다.

분노한 Hanno는 곧 Mastia에서 병력을 보내어서 탈환을 시도했다. 이러한 어수선한 상황으로 혼란한 카르타고에게 불과 3년 만에 로마는 새로이 개전을 선포하고 다시 Messana를 포위한다. 과거에는 로마인을 잘 모르던 카르타고인들도 비로서 로마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로마인들은 카르타고가 바라보듯이 그렇게 야만적이지 않았다. 카르타고인들은 그들의 세련되지 못한 매너와 말투를 조롱했지만,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문학과 예술을 이해했고, 이를 모방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또한 그들은 전투로서 단련된 전사의 집단으로서 싸움을 잘하는 사람, 건강한 사람,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칭송받는 사회분위기였다. 돈이 많은 사람을 대접하는 카르타고랑은 달랐다. 또한 포기할 줄 모르는 강인함이 자그마한 체구에서 나오는 자들로서 한번 진 빚은 결단코 돌려주는 무서운 결의를 가진 민족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좀더 나중에 알게 될 터였다.

Gader의 탈환과 보복학살이후에 다시 들려온 Messana의 재포위 소식에 Hanno는 우울했다. 화평제안을 수락한 것에 대한 책임도 지어야 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신용의 배반이었다. 상인이었던 카르타고인들은 신용을 잘 깨지 않는다. 그러나 무례한 전사집단인 로마인들은 신용으로 여겨지는 동맹도 정략의 하나로 펼쳤다는 점이 다른 점이었다.

당연하게도, 기다렸다는 듯이 귀족들은 꺼리를 만난 듯, ‘거봐라’ 하는 소리를 공공연히 외쳤다. Hanno는 사절을 로마측 병영에 급파했다. 카르타고의 사절에게 돌아온 답은 냉랭했다.

“재교섭은 없다. 우리가 왜 그대들과 동맹을 맺어야 하나? 동맹의 하등의 이유가 없다.”

배신감에 분노한 Hanno가 작전지휘차 직접 Lilibeo로 갔다. 귀족들은 조롱하고 비웃으면서, ‘니가 저지른 일이니 니가 마무리 지으라’고 뒤에서 놀려댔다. 아무리 놀려도 기분대로 함부로 귀족을 죽일 수는 없는 일. 기도 안찬 Hanno는 착잡한 심정으로 시칠리아로 향했다.

시칠리아의 Lilibeo에서는 더 나쁜 소식이 들려왔다.


로마군은 카르타고군에게 패배한 지난번과는 달리 대규모였고, Hastati나 Triarii와는 달리 Princeps와 Samnite 창병들까지 대동하고 왔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수효도 많고, 특히 숫적으로도 카르타고랑 그다지 별 차이가 없는 자들로서 지난번 Epeiros를 정복했던 군단이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실전경험이 있는 병사라는 말이었다. 과거의 오합지졸들이랑은 달랐다. 이들에게 대항하고 있는 카르타고의 군대는 카르타고 민병 4, 리비안 창병4, 그리고 궁병2. 특이한 것이 이베리아 보병1과 Liby-phoenician 보병대2가 있어서 다소간 위안이 된다는 것이었다.


전투는 8월의 뜨거운 햇살아래 벌어졌다. 로마군은 3군데서 목조성채를 헐고 진입했다. 카르타고의 궁수들은 열심히 활을 쏘았으나 로마군의 갑주덕분에 화살은 터무니없이 효과가 없었고, 곧 이들은 공포에 질려서 패주하고 말았다. 뒤이어 로마군은 도시의 중앙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역시 중앙에는 겹겹이 배치한 카르타고의 병사들이 로마군을 기다렸고, 난전이 벌어졌다. 그러다가 로마의 지휘관이 있는 부대가 골목길에서 리비안 창병들에게 앞뒤로 포위되어서 결국 죽임을 당했다. 겨우겨우 승리를 거머쥔 카르타고군은 큰 희생에 놀랐다. 사상자가 로마군보다 더 많았던 것이다!! 이겨도 상처뿐인 전투였다.

Hanno는 부지런히 피해입은 부대를 새 부대로 교체하고 다시 보충하길 반복하여 잠깐 만에 도시를 완전방어태세로 바꿔 놓았다. 로마군은 지속적인 공위를 펼칠 병력의 여유가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이태리 북부에 갈리아인들이 대규모 공위를 퍼부었으므로 잠시 눈을 돌렸다. 대신 로마의 해군이 나서서 카르타고의 항구들을 봉쇄하고 다녔다.

재정상의 적자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적의 함대를 격파하니, 다시 흑자가 되었다. 조금씩 모인 돈으로 카르타고는 재기를 도모했다. 우선, Mastia에서 부대를 증강, 이 부대가 북아프리카의 Tingi를 접수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역시 반군도시인 이 도시는 약간의 전투 끝에 함락되고, 약탈을 명한 지휘관덕분에 카르타고는 상당량의 수익을 올렸다. 이 수익금으로 창설한 해군은 곧 로마의 여러 항구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로마는 일부 군단을 빼서 다시 시칠리아 진입을 시도한다. 그러나 역시 초기로마의 국력은 강대국인 카르타고에 미치지 못했다. 카르타고는 마음만 먹으면, 1개완편군단을 만들수도 있었지만(물론 경제적 부담 때문에 그렇게는 안하지만..) 로마는 1/2군단이 한계였다. 게다가 이들은 구태의연한 phalanx전술을 사용하는 중보병위주로서 이후 군제개혁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자취를 감추지만, 아직까지는 카르타고군도 로마군이랑 해볼만한 상대였다. 그런 상태에서 군을 발진시키는 것도 무리라고 판단한 로마는 더 이상의 공위는 가하지 않고 대신 부지런히 갈리아 침략부족을 격파했다. 잠깐만에 로마는 다시 북이태리를 손에 거머쥐고 이어서 Massilia까지 뻗어나갔다.


한편 Hanno는 고단한 하루일과를 마치고 침상에 들었는데, 다음날에 깨어나지 않은 상태로 평안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죽음에 카르타고의 시민들은 슬픔을 금하지 못했다. 귀족들도 그의 탁월한 정책지도력은 인정했다. 다만 외교적으로는 로마에 배신당하여 오점을 남기기는 했지만. 아무튼 귀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새로 집정관이 된 인물은 예전의 Hamalcar였다. 그는 이베리아 속주 총독으로서 Gader의 반란진압과 Arse로의 영토확장의 공로를 인정받아서 마침내 국가수반에 임명된 것이었다. 그의 과제는 로마와의 군사문제 처리와 만성적인 재정적자 해결, 그리고 숙원사업(지중해 제패)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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