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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EB)Safot Softim biKarthadast 3

작성자Daum Bark|작성시간07.02.16|조회수201 목록 댓글 3
 

사실 정치적인 인물도 아닌 순수 야전지휘관 타입의 그가 추대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귀족들과 별로 적대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적을 만들지 않는 그의 소탈함도 한몫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적이 없을지 몰라도 그는 언변으로 인기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말투는 짧고 무뚝뚝했고, 진솔했지만, 수식이 없는 간단한 말투는 보기에 따라서는 공격적일 수도 있게 보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가 처음 집정관이 된 후 추진한 일은 대로마전쟁지속과 북아프리카 통합문제였다.

북아프리카 통합문제, 즉 북아프리카의 해안지방의 도시들을 다 함락하여 바다를 카르타고의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서 때때로 나타나는 북아프리카 해적선의 출몰이랑 관련이 많았다. 그 방편으로 그는 Mastia의 1개 완편군단을 모조리 차출, 북아프리카의 Siga에 상륙하는 것으로 정했다. 오늘날의 알제리 해안도시다.

다행히도 반군은 단지 2개의 창병대만을 보유한 소규모였다. 잠시만의 포위 후 도시는 무난하게 함락되었다. 비로소 북아프리카 서부의 모든 해안은 카르타고의 손에 들어온 셈이다.  표면적으로도 Siga의 함락은 무역로의 활성화를 가져왔고, 나름대로 재정에는 조금 기여했으나, 문제는 로마였다. 두어번의 공위에 실패하자, 로마는 1개 완편군단을 조직, 다시 메사나를 포위했다. 때마침 메사나에서는 나무방벽이 돌벽으로 대체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병력구성상 열세였다. 그러나 로마군에게도 잇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골치아픈 문제가 있었다. 로마군은 몇 번의 전쟁과, 뒤이은 북벌로 상당한 정예병을 상실했고, 이의 양성도 만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병력부족의 공백을 메꾼 것은 갈리아의 병사들이었다. Lugoae로 구성된 이들은 벌거벗은 상의와 단창, 방패를 가진 단촐한 차림이었는데 유일한 장식은 문신이 전부였다. 두말할 나위없이 이들의 용맹성은 대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의 결핍과 장비의 부족을 메꿀수는 없었다.

포위전이 개시되자, 성루에서 발사되는 화살에 무수한 사상을 내면서도 이들은 돌벽을 타고 올라와서 카르타고군의 Toxotai를 격파했다. 기세등등한 이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중앙광장으로 향할 때, 중앙광장에는 조용히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카르타고의 본진이 있었다.

카르타고군은 성벽에서 적을 맞이하지 않고 중앙광장에 집결하여 빽빽한 phalanx의 대열을 만들었다. 이 갈리아인들은 소란을 피우면서 일단진입은 했지만, 빽빽한 phalanx를 보자 질렸는지 바로 공황상태에 빠졌다. 머리수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갈리아인들이 도망가고, 몇 안되는 Triarii, Hastati, Pinceps가 분전을 했으나 결국 카르타고군에게 압도되고 말았다.

로마인 지휘관들이 고래고래 악을 쓰면서 독려한 결과로 몇몇 갈리아인들의 집단이 카르타고군의 리비안 창병대와 부딪혔는데, 많은 사상자를 내고는 패주해 버렸다. 결국 로마인들도 갈리아인들을 데리고는 어렵다는 생각에 싸움을 포기하고 후퇴했고, 이전에 카르타고 본토에서 수송되어 투입된 누미디아 기병대는 신나게 벌판을 가로지르면서 로마군과 갈리아인들을 도륙했다. 아무튼 이 이후로 로마와는 싸움다운 싸움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카르타고의 세작들은 로마가 이미 게르고비아까지 공성을 할 태세라고 보고했다. 게르고비아는 갈리아 중부에 위치한 도시로서, 그들의 수도였다. 갈리아와의 전쟁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로마군이 시칠리아로 넘어오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았다.


이 사이에 Harmalcar는 Mastia의 내륙에 있는 도시인 Baikor에 주목했다. 이 도시는 거의 2개 완편군단정도의 수효에 해당하는 반군들에 의해서 지켜지고 있는 도시였다. 특히 광산이 있어서 금광을 개발만 하면 상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고, 외교적으로도 이베리아 토착세력과 분란을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Siga를 점령했던 부대를 다시 불러들여서 편성과 보충을 마친 후에 힘겨운 행군을 개시하여 도시의 외곽에 접근하자, 반군들은 기세좋게 맞아 싸웠다. 그러나 병법의 최대 금기, 축차투입! 반군 2개 군단 VS 카르타고 1개군단의 전투였으나 반군은 정말로 큰 손실을 입고 패주했다. 우선 그들은 되는대로 모인 민병대가 전부였지만, 카르타고는 이베리아 보병대, 리비안 창병대, 일부 민병대와 더불어, 누미디아 기병대, 이베리아 투창기병, 이베리아 창기병, 이외에 Caetrati라고 부르는 칼과 방패를 들고, 갑옷까지 갖춰입은 정예보병대까지 보유한 상태였으므로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다.

전투가 벌어지자 본진구성은 가운데는 민병대, 그 옆에는 Liby-Phoenician 창병들을, 맨 바깥에는 Caetrati를 배치했다. 그리고 뒤쪽에는 장군기병대, 좌익에는 누미디아 기병대, 우익에는 이베리아 투창기병을 배치했고, 장군 기병대의 후위에는 이베리아 창기병을 배치했다. 그리고 보병대의 배후에는 민병대와 더불어 경장인 이베리아 보병대와 리비안 창병대를 예비대로 세웠다.


위와 같은 배열에 적은 말 그대로 장사진으로 돌격을 해왔다. 앞서서 오던 적들은 누미디아 기병들이 던진 창에 맞아 죽는 자가 속출했으나 적들은 그대로 본진으로 돌격을 해 왔다. 카르타고군은 중앙을 약간 뒤로 물리면서, 급히 후방의 기병대를 우회시켰다. 적은 가운데로 몰리면서 돌파를 시도했지만, 가운데의 정예 Liby-phoenician창병들에게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2열의 이베리아 보병들을 역시 좌로 빼서 적의 좌측을 압박하자, 적의 2열에서 재빨리 이에 대응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즉시 카르타고는 우회시킨 기병들로 하여금 반군의 배후에 돌격을 감행케 했다. 바로 적장이 죽고, 반군들은 무질서하게 패주하기 시작했다. 패주의 대열을 역시 누미디아 기병들이 휘젖고 돌아다녔고...

뒤이어 도착한 공격 2파도 역시 비슷한 요령으로 격파하였다. Baikor는 그 즉시 함락되었고, 노략질을 당했다. 이제 카르타고는 또 다른 광산지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Hamalcar는 승리 후에 개선을 위해서 가려던 중, 식중독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천재 야전지휘관의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카르타고의 시민들은 또 다른 유능한 인물의 죽음에 슬픔을 금하지 못했다. 국장이 선포되고, 아울러 귀족회의에서 면밀한 공적 심사 끝에 새로 집정관에 선출한 사람은 Barca였다. 그의 공적은, 메사나를 로마의 공위에서 잘 지켜낸 역시 노련한 장군이었다. Barca는 선대의 Hamalcar와 같은 과묵함도 없었고, Hanno같은 신중함과 신사스러움도 없는 야심만만한 인물이었다. 어찌보면 로마인 같다고들 했다.

그는 우선 로마와의 소강상태를 이용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만들고자 했다. 곧 그의 소망대로 이뤄질 업적을...

(계속)

http://europabarbarorum.com/features_ma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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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ROK_Agrianoi | 작성시간 07.02.18 건필! 하지만 스샷을 올리란 말이에요! EB0.8노래만 첨부하지 마시고 =_=
  • 작성자프리드리히 대공 | 작성시간 07.02.23 daum bark님 예전에 스샷 프로그램을 켜니까 튕긴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
  • 답댓글 작성자Daum Bark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02.28 사실 그래서 못만들고 있습니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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