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A.D여름
요새를 포위하기가 무섭게 고트군은 목책과 관문을 부수러 요새로 돌격했다. 궁수들이 없던 아군은
보병들이 창을 던지므로서 저항했지만 고트군은 너무 많아 역부족이었다. 목책이 부서지기 직전 난 천막안에
숨어 전투를 지켜보았다. 결국 목책은 부서졌고 고트군이 무질서하게 들어왔다.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아군은
침착하고 용맹하게 싸웠다. 세 장군들과 플라비우스 가문의 가병들의 활약은 특히 눈부셨다. 말을 탄그들은 정규군보다
더 많은 적군을 죽이고 추격했다. 결국 숫자로 이겨보려 했던 고트군은 거의 전멸을 당했다. 적을 이기기가 무섭게 아군은
후고트왕국의 수도 아바리쿰으로 향했다. 도착하기가 무섭게 공격준비를 하였다.
공격이 시작되었다. 야만인 용병들이 빠르게 준비해놓은 땅굴로 성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이것을 고트군이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비록 패했지만 수도에는 아직도 많은 수비병들이 있었다. 곧바로 고트군이 성문을 열고 나와 땅굴을 파고 있는 용병들을 매장시키려 하자 전군이 땅굴을 보호하려고 공격하였다. 성밖에서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드디어 성벽이 붕괴되었다. 이미 전투에서 많은 전력을 상실한 고트군은 성안으로 돌격하는 아군을 막을수 없었다. 그들은 대광장까지 후퇴했고 결국 거기서 모두 전멸했다. 황제를 칭하던 기세등등한 군데릭은 끝까지 싸우다 자결했고 많은 고트의 왕족들, 신하들 그리고 서로마를 배신하고 처음엔 반란군에 그다음에는 고트에 도시를 팔아 오랫동안 번영을 누리고자 했던 도시의 귀족들과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서 학살을 당했다.
이것으로 갈리아 평정이 끝나기를 원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군데릭의 아들 에리히는 기적적으로 탈출해 갈리아 인근에 흩어져있던 고트의 패잔병들, 협조하던 부족들 그리고 용병들을 있는데로 모아 5개의 군단을 만들었다. 그 숫자가 2400명 정도 되었다. 플라비우스 가문이 평정에 동원한 군대가 다합해봐야 500명정도 일때 이것은 큰일이 아닐수 없다. 지원을 로마에 요청했지만 색슨족의 잩은 침략으로 4성1진의 군사들은 움직일수 없고 로마,라벤나,메디올라눔 이 도시들에도 군대가 없다는게 답장이었다. 서로마의 기울어지는 국력을 절실히 보여주었다.
412A.D
에리히는 다시 본거지를 갖기 위해 군대를 움직였다. 하지만 심각한 것은 그의 군대가 우리 정찰병들의 정찰범위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제 그가 어느 도시를 칠지 모르는 상황. 갈리아의 모든 도시들은 긴장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