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ROME: 스크린샷

[EB] 에페이로스 : 카운터 어택 1

작성자maestro|작성시간10.07.10|조회수184 목록 댓글 0

 

 

 

안티오케이아 점령으로 셀레우코스 지휘부가 혼란하고 있는 틈을 타,

 

시데에 주둔중이던 대규모의 부대가 시데의 치안 악화에도 불구하고 안티오케이아 후방의 타르소스를 공격하기 위해 출병합니다.

 

타르소스 공략에만 성공한다면, 안티오케이아 방어는 좀 더 쉬워질것이며 본토로부터의 보급 확보에도 문제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셀레우코스의 안티오케이아 재탈환 군이 안티오케이아 북쪽에 도착하여 결집하는 것이 포착되었습니다.

 

만약에라도 안티오케이아를 뺏겨버리면 후퇴 할 수 없는 방어군은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는만큼, 반드시 지켜내야 할것입니다.

 

 

한편 서부전선에서는, 카라리 공략을 앞두고 카르트하드스트 정예군의 상륙으로 일시 후퇴했던 서부 예비 제 2군이

 

정예군이 본토로 귀환한 것을 보고 받고 카라리의 재 점령을 위해 재출병합니다.

 

 

올 것이 왔습니다. 대규모의 안티오케이아 탈환군이 진격해 왔습니다.

 

이후에도 셀레우코스의 공격이 끊이지 않을거라 확신한 사령관 티모다모스 장군은

 

병영이 건설될 때 까지 병사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나가기 위해

 

기동력이 빠른 그의 수하들과 기병 병력들을 이끌고 나가 약 3부대 적들을 각개격파 한 후,

 

나머지 적 군대가 기병 견제를 위해 우왕자왕 하는 모습을 보이자 전 보병진을 돌격시켜 적들을 감싸는 작전을 감행하였습니다.

 

이 작전은 제대로 먹혔고,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 승리를 이루어 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티오케이아 공격을 이끌었던 티모다모스 장군이 이 전투해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티모다모스 장군은 헤라클레토스 폐하의 친동생입니다. 동생의 비보를 들은 폐하께서는 전국에 임시 애도의 날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시각, 타르소스에서도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빠른 타르소스 점령을 위해 급파된 병력이었기에 공성전을 목적으로 구성된 병사들이 아니었고

 

이에 비해 적 병사들은 대부분이 파이크 병으로 이루어졌으며 수적 우세마저 점한, 수성전에서 매우 유리한 구성이었습니다.

 

이를 얕잡아 본 셀레우코스의 타르소스 방어군은 우리군을 오합지졸이라 비웃으며 스스로 나와서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타르소스 공격을 맡고 있던 우리군의 지휘관은 먼저 제작해둔 공성탑을 이용해 성벽을 점령하였습니다.

 

그 후, 열린 게이트를 통해 미끼 부대를 진입시켜 속도가 느린 파이크 병들이 골목쪽으로 유인되면

 

성벽을 타고 올라간 슬링어 병들의 일제 사격을 시작하게끔 하였고

 

성벽 밖에서 대기 중이던 속도가 빠른 단창병들이 후방 포위를 하게끔 지시를 내려 적 병사들을 차례차례 섬멸하였습니다.

 

 

제 아무리 유능한 병사들이라 할 지라도, 우리군의 전략과 그들의 자만에 의해 차례차례로 포위당하자 손 쓸 도리가 없었고

 

우리군은 수적 우세를 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장군 호위대는 5명 밖에 남지 않는 격렬한 전투였음에도 타르소스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타르소스를 점령하기는 했지만

 

타르소스의 주민들은 아무래도 우리 에페이로스 제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매일 같이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보고를 받은 타르소스 지휘관은 반동분자는 모두 사형에 처하라 명하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보자관이나 본국의 대신들은 '그것은 야만인들이나 할짓'이라며 지휘관을 말리려고 했겠지만,

 

전략적 관점에서 보아도 타르소스에서 반란이 일어난다면 동부 전선에 이득이 될 것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사형은 집행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지중해에서 셀레우코스를 몰아내는 일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