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요즘 아일랜드에서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 일이 있어서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역사와 관련된 주요 사적지인 킬만햄 골(kilmainham gaol)에 다녀왔습니다.
킬만햄골의 전체 복원 모형 입니다.
킬만햄골(아일랜드 원어민 발음은 저와 약간 다른거 같은데 제가 다 따라하기 어려워서 일단 이렇게 발음해봅니다.)은 1796년에 영국이 아일랜드의 중심적인 도시인 더블린에 세운 감옥입니다.
이 감옥에서 아일랜드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죽고, 갇히는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제 생각에 이 감옥은 아일랜드의 서대문형무소라고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대체로 이 감옥은 원래는 절도, 강도, 사기, 채무불이행 등등 각종 생활범죄로 잡혀온 사람들이 다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1840년대에 들어 아일랜드에 감자마름병에 의한 대규모 기근이 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고, 이에따라 이 감옥에 갇히는 사람도 급증하게 됩니다.
1845년의 대기근 이후 1848년부터 급증한 아일랜드의 수형자 수의 그래프.
이렇게 수형자가 급증하면서, 원래는 감방에 1명씩만 수용해야 하는 킬만햄골의 감방에 1명이 아닌 5-6명씩 수용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킬만햄골 감옥의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킬만햄골 감옥의 통로입니다. 현대식 전등을 달았는데도 어둑어둑 하더군요.
게다가 여기의 창문은 당시에는 유리가 없어서 바람이 그대로 들어왔고, 이때문에 매우 추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대로 죽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네요.
여기는 킬만햄골에서 비교적 나중에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영화 마이클 콜린스의 촬영 장소였다고도 하네요.
19세기 중반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시대에 만들어졌는데, 벤담의 판옵티콘의 구조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여기에도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가들이 갇혀서 고생을 했다고 하네요. 신기술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했던 모습을 보니 으스스하기도 합니다.
사실 킬만햄골은 대체로 일반 생활범죄자들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특히 1914년에 이르러 이 감옥은 너무 오래되었기에 폐쇄하고, 군부대에 이 감옥을 넘기게 됩니다. 그런 상황이 변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1916년의 부활절 봉기입니다.
1916년의 부활절이 있었던 1916년 4월에 아일랜드 독립운동 세력들은 일제히 무장봉기를 시도하여 더블린 시내의 중앙 우체국을 본부로 하여 중요 건물들을 점거하고 치열한 항쟁을 벌였습니다. 약 일주일간 진행된 이 봉기는 2000여명의 아일랜드 독립운동가들이 참여하였지만, 2만여명의 영국군이 진압작전에 나서자 끝내 지도자인 피어스는 항복을 명령하게 됩니다.
이후 영국군은 모두를 체포한 다음 이 봉기의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7명 전원을 비롯하여 14명의 지도자들을 총살하게 됩니다. 영국군은 단심 군사재판으로 이들을 사형판결한 이후 처형했는데, 이때 군사감옥으로 쓰였으며, 처형까지 집행된 곳이 킬만햄골 입니다. 그래서 킬만햄골은 이후로도 계속 영국군이 아일랜드 독립운동가들을 잡아가두는 장소가 되었고, 나중에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공간이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1916년의 부활절 봉기 당시의 지도자들이 갇힌 감방들의 사진은 바로 아래와 같습니다.
전등때문에 밝아보이지만, 실제 시설은 매우 낡았고, 전등이 없다면 매우 어두운 곳입니다. 1916년의 부활절 봉기는 사실 실패한 봉기였습니다.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실패했으며, 지도자들은 모두 체포되어 최고위급 지도자들은 대부분 처형을 당했습니다. 더블린 시민들은 더블린 시를 파괴한 부활절 봉기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반전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영국 정부와 군대의 잔혹한 탄압이 오히려 아일랜드 국민들을 각성시켰고, 이후 이들은 치열한 투쟁에 나서게 됩니다. 1918년의 총선에서 선출된 대다수의 아일랜드 지역구 의원들은 1919년에 영국 의회에 출석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들끼리 모여서 아일랜드 의회를 선언하고, 곧이어 아일랜드 공화국을 선언하였습니다. 이후 1921년까지영국과의 치열한 혈전끝에 결국 영국-아일랜드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마침내 1922년에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자유국'이 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영광은 1916년의 봉기 직후에는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1916년의 봉기 지도자들은 미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채 두 눈이 가린채로 총살대 앞에 섰습니다.
킬만햄골의 감방 옆의 작은 공터는 원래 죄수들에게 돌을 쪼개는 노역을 시키는 노역장이었는데, 영국군은 바로 이 노역장에서 1916년 부활절 봉기의 지도자들을 처형합니다. (이들의 처형장면은 영화 마이클 콜린스의 초반 장면에 나오게 됩니다.)
이때 처형당한 14명의 지도자들 중에 13명이 처형당한 장소입니다. 처형당한 곳에 십자가가 세워져있습니다.
이때 처형 당한 사람들 중에는 처형 하루전에 처형 사실을 통보받고 급히 감옥내의 교회에서 10분짜리 결혼식을 치른 사람(조셉 플런켓Joseph Plunkett)도 있었습니다. 결혼식을 하고나서 단 7시간만에 총살을 당했지요.
14명의 지도자들 중 한명인 코놀리(James Connolly)는 따로 이곳에서 사형당했습니다. (같은 노역장의 다른 방향의 벽입니다.) 코놀리는 사실 전투중에 부상을 입어 1-2일밖에 더 못사는 상황이었느데 영국군은 아일랜드인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고자 병원에 있는 사람을 굳이 끄집어내어, 걷지도 못하는 사람을 의자에 묶은채 처형시켰습니다. 그래서 처형장소가 이 사람만 다는 것입니다.
킬만햄골에서 처형당한 14명의 1916 부활절 봉기의 지도자들의 명단
이 처형장에는 아일랜드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습니다. 처형당한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던 독립국 아일랜드의 깃발이 이곳에서 앞으로도 영원히 휘날릴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역사는 비록 그 당시에는 실패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국 옳은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이 처형장의 전체적인 모습을 짧은 동영상으로나마 보여드립니다.
결국 여러 사람들의 피값에 의해 아일랜드는 1921년의 평화조약에 의해 독립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영국은 아일랜드에게 가혹한 조건을 요구했습니다.
아일랜드의 북부지역을 여전히 독립시키지 않으며,
아일랜드는 완전한 독립국이 아닌 영제국의 소속 자치국가로서, 아일랜드의 의원들은 영국의 왕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했습니다.
이건 마치 일본이 한국을 독립시켜주는 대신에 경상도를 일본땅으로 하고, 한국은 일본제국 내의 자치국이 되며, 한국 국회의원들은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는 조건과 비슷했죠.
당연히 이는 국론의 분열을 초래하게 됩니다.
한편에서는 이 평화조약을 받아들여서 일단 아일랜드의 국가와 군대를 가진 다음에, 이후 다시 독립을 쟁취하자고 주장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굴욕적인 조약을 거부하고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아일랜드 의회는 아슬아슬한 표차로 평화조약에 동의하게 됩니다.
이 사진에는 의회 내의 조약 찬성파와 반대파의 표 수와 각자의 주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의회에 의해 통과되어 조약이 실행되어 1922년 1월에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었던 영국의 총독이었던 '더블린 캐슬'에서 아일랜드의 통치권을 이양받는 공식 행사를 치르고, 아일랜드는 자신의 군대, 경찰, 정부를 가진 하나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사건은 내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조약반대파들은 독립전쟁때 썼던 방식을 그대로 아일랜드 자유국을 향해 사용했고, 아일랜드 자유국 역시 영국이 했던 탄압을 똑같이 반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킬만햄골에는 봉기를 일으켰던 조약반대파들이 구금되었습니다. 바로 몇달 전까지만 해도 영국을 향해 함께 싸우던 동료들을 구금하고, 감시해야 했던 자유국측 사람들은 심적으로 많이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이 내전은 1922~1923년까지 약 1년여간 지속되었지만, 다행히 내전은 종결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내전이 끝남에 따라 1924년에 킬만햄골은 마지막 죄수를 내보내고 사실상 폐쇠되게 됩니다. 이후 1916년 봉기의 50주변인 1966년에 이 감옥을 복원하고, 이후 박물관으로 전환되어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원래는 아일랜드에 갈 생각이 거의 없었는데, 우연히 아일랜드에 간 김에 결국 킬만햄골에 가게 되었네요.
1916년의 봉기가 실패로 끝났지만, 결국 성공에 이른 역사는
1919년의 3.1운동이 당시에는 실패인 것 같지만, 결국 세계에 한국의 독립열망을 알려 성공에 이른 역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서대문 형무소에서 느끼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곳인 아일랜드의 킬만햄골에 대한 답사기를 짧게 나마 공유해봅니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장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