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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서 "압슬"을 검색해보니

작성자securitad|작성시간22.11.07|조회수415 목록 댓글 0

걍 심심해서.. 조선왕조 실록 싸이트에서 압슬형- (사금파리를 무릎 아래 깔아놓고 널빤지 위를 밟아 형신을 가하던 소위 "역적제조기", 후엔 너무 잔혹하다고 하여 영조때 폐지됨 )- 을 검색해봤는데

압슬형이 가장 빈번하게 기록되었던 특정 시기는 언제였을까? 다분히 태종이나 선조때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광해군 시기에 압도적으로 많음 ㄷㄷ. 압슬로 검색하면 나오는 조선왕조 기사가 총 497개인데 광해군이 192개임 ㄷㄷ. 즉 40%가 훨 넘는다는 거.

 

물론 검색에 잡히는 빈도 자체가 특정 시기에 압슬이 특별하게 많이 횡행하였다는 역사적인 증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뭔가 뻥~찌는 느낌이 안들 수가 없군요 ㅠ 

 

그래서 무엇 때문에 광해군 시기에 압슬이 이렇게 많이 검색되는지 한번 살펴봤는데.

 

아마 어떤 역모사건이 있었던 같음. 추국을 위해 관련자들에게 "압슬"을 사용하라고 친히 지시하는 광해군.

 

여러차례 압슬형을 가했으나 자복하지 않는 사람들도 발생 중.

 

* 남여 안 가리고 압슬형 시행 중 - 개중에는 임산부도 있었던 모양(근데 무려 다섯번이나 받았음, 태종때 무골이던 강상인이 네번까지 견디고 도저히 안되어 죄를 불었다는 그 압슬인데 ㄷㄷ) , 추국청에서 그 여인에 대해 출산 후에 형을 가하자고 청하는 모습도 보임.

* 압슬 자체가 잔인하기는 하지만 사형이 아닌 나름대로 심문 절차?이기 때문에 받는 사람이 도중에 숨이 끊어지면 곤란해짐. 그래서 다섯번 이상은 시행 안했던 것 같음.

 

사태는 커지고 역모 관련자들도 겁나 잡혀오고 있는 상황, 그런데 개중엔 압슬을 가해도 자복하지 않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중. 뭔가 초조해보이는 광해군.

 

압슬형이라는 게 워낙 잔인한 방식이고 순간적인 쇼크사를 발생시킬 수 있는 고문 방식이니 중간에 죽는 사람들도 나오는 상황.

다음은 특이해서 좀 더 찾아본 내용인데.. 어린 아이에게 압슬을 시행했다는 기록이 보여서 가져 옴.

 

이윽고 오강이라는 10살 아이에게 압슬형을 가하자는 박승종

 

몸이 나약하므로 안된다며 반대하는 심희수.

 

광해군 왈: 이 아이는 어리니 압슬형을 무겁게 가하지 말고 차분하게 천천히 국문하여 문초하도록 하라.

즉 압슬을 시행하되 성인과는 달리 가볍게 해주자는 이야기 같은데..

 

아래에 당시 사관의 평이 있음.

 

압슬형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겁게 누르면 사람이 갑자기 기절하고 입을 다물어 인사불성이 되고, 가볍게 누르면 아우성을 치므로 용이하게 실없는 말을 자복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가볍게 누르도록 하여 마치 형벌을 신중히 쓰는 것처럼 한다.

 

조종조에 비록 이 형벌이 있기는 하였으나, 반드시 큰 옥사가 났을 때 괴수 한두 사람에게만 사용하였다. 그렇지만 두 번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마다 이 형벌을 사용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네 번이나 다섯 번을 사용하기도 하고, 또는 곤장을 사용하지 않고 곧바로 압슬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오강 같은 어린아이가 압슬형을 받았으니, 그가 실없는 말로 거짓 자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까지임, 역사와 관련되었지만 본인의 가십성 뻘글에 가깝기에 자유게시판에 걍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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