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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 대해 아주 잘 아시는 분께...

작성자지국총| 작성시간11.07.18| 조회수378|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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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Venice의 선원 작성시간11.07.18 이것저것 제약하는게 많은것은 맞죠. 극단적인 예로 남녀간의 사랑을 표현한 음악&무낙 작품쓰다가 죽은 사람도 있다던데요.
  • 작성자 사탕찌개 작성시간11.07.18 네 사실입니다.
  • 작성자 지국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7.18 한달전에 빌렸던 책에서 중세시대 이슬람 과학의 발전이 근세들어 엄격한 이슬람 주의로 인해 학문까지 그 엄격한 이슬람법에 적용당해 쇠퇴했다는 말도 있었더만...
  • 답댓글 작성자 지국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7.18 이런 말하기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 지나치게 엄격한 이슬람주의가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은 아닐지요...
  • 작성자 RichardDawkins 작성시간11.07.18 이슬람 미술에서 기하학적 문양이 주로 쓰인 것도 종교적 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 작성자 VOCALOID 時代 작성시간11.07.18 뭐...이슬람이 근데 좀 X망이였던 이유 중 하나가, 같은 이슬람교도라도 파(派) 문제하고(수니파하고 시아파였나..)
    비교적 '정치분야'가 발달이 매우 미흡했다는 게 또 이유가 아닐런지..

    심지어 동양사 게시판에서 본 것에 의하면,

    "몽골이 쳐들어와서 초토화" 시킨 것이 또 이슬람을 폐쇄적으로 만들었다더군요..

    그 이전의 이슬람에서는 어느정도 종교(이슬람교)의 거시기한 점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좀 자유로웠고,
    학문이나 기술등도 유럽보다 오히려 우위에 차지한 게 많았었다죠..

    '근데 몽골 인베이젼 한 방에 다 나가 떨어지니;;;;;' (어이쿠..죄많은 제국일세;)
  • 답댓글 작성자 최하늘 작성시간11.07.18 몽골만 탓하는건 문제 있다능.
  • 답댓글 작성자 VOCALOID 時代 작성시간11.07.19 최하늘/


    뭐, 몽골만 탓하는 거 아니예요 ㅎㅎ 단지 불나려는 집 앞에 기름통을 한 번 던져 준 역할을 했죠...

    그리고 집이 타오를 불꽃은 이슬람이 서서히 지피게 됐고;;

    게다가 이슬람이 유럽(기독교)세력을 워낙 마땅치 않게 보면서, 그들과 되도록 상종하지 않으려는 것도
    있었다고 들었습죠. (원래 발전이란 게, 저는 '서로 얽히고 부딪히면서 형성'(대게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무엇보다 솔직히 이슬람이 좀 제약이 많은 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긴 하네요. 몽골 이전에도,
    솔직히 종교 교리에 거시기한 점을 토론할 때 '조금만' 인정해줬다하고...
  • 답댓글 작성자 아뉘 작성시간11.07.19 파(派) 문제는 어느 종교나 있었고 이슬람의 파(派)가 초기 기독교의 단성론/정통파 분쟁, 근세 기독교의 루터파/칼뱅파/카톨릭의 분쟁에 비해 더 심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이슬람은 태동부터 같은 유일신 종교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폈기 때문에 같은 이슬람 내 종파에 대해서도 기독교처럼 극단적인 분쟁으로 이끌어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중세 부이 왕조의 경우, 왕조는 쉬아파였지만, 지배한 곳은 수니파였으며, 행정직은 주로 기독교인들이 차지하였습니다. 또한, 이슬람의 '정치 분야' 발달 미흡 역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중동사' (김정위 지음) 이었나.. 이슬람 역사서였나 기억이 잘 안나는데, 여튼 사료에 의하면 이슬람
  • 답댓글 작성자 아뉘 작성시간11.07.19 세력은 대체로 페르시아/이란의 선진 정치체제와 적이었던 비잔틴 제국의 정치체제를 효과적으로 흡수했고, 셀주크 투르크와 같은 유목민들 역시 현지의 발달된 정치체제를 받아들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쇠락하기 전까지는 이슬람의 정치 체제는 대체로 서구의 것보다 발달되어 있었으며 하층민들의 생활 역시 서유럽의 개떡같이 가난한 삶에 비하면 훨씬 그 질이 높았다고 하는군요. 이슬람 권의 쇠퇴가 '몽골 침략' 이전부터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은 본 까페의 역사 게시판에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상당히 좋은 글이었으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 아뉘 작성시간11.07.19 "솔직히 종교 교리에 거시기한 점을 토론할 때 '조금만' 인정해줬다하고... " 이 부분의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전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어서.. 몽골 침략으로 압바스 왕조가 붕괴하기 전에는 바그다드나 여타 이슬람 대도시들에서는 신학 토론이 비교적 자유롭게 행해진걸로 압니다만..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네요.
  • 답댓글 작성자 VOCALOID 時代 작성시간11.07.19 아뉘/

    오오...많은 걸 알고 갑니다..

    참고로 마지막 줄의 '어디서 읽으셨는지'에 대한 출처는;; 저도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본 거라 정확한
    출처는 기억잇;;; 아무래도 제가 그 때 좀 결핍된 자료를 봤나 봐요;; 역시 이래서 인터넷보단 책을 읽어야 되는 듯 ㅡㅡ;;
  • 답댓글 작성자 jyni 작성시간11.07.19 VOCALOID 時代 님.. 서양사 게시판에서 hyhn217님 글을 찾아보시면 좋을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 VOCALOID 時代 작성시간11.07.19 jyni/

    넵. 제대로 된 자료읽고(우리 카페의 역갤은 대단들하시니 믿을만하다능;) 이슬람에 대한 마인드를 체인지
    해야 할 듯요;
  • 작성자 panchan1 작성시간11.07.19 사실입니다. 특히 해당 국가의 지배 문화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는 학문적 요소들은 크게 제약을 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통치 구조를 위협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주는 연구들은 활발한 편입니다.
  • 작성자 배고프네 작성시간11.07.19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전근대 문명 사회는 다 그렇죠 뭐
  • 작성자 나기 작성시간11.07.19 어메..-_-;; 질문하신 분이 4줄로 쓴 내용은 이슬람의 역사의 절반 정도는 써야되는 내용임..ㅋㅋ 라시둔 칼리프부터 4대 칼리프인 알리가 죽은 이후 이슬람이 정치적으로는 우마이마 칼리프왕조와 이를 계승한 압바스 왕조, 코르도바 칼리프왕조의 둘로 나뉘고...또 종교적으로는 수니파와 파티마를 정통으로 내세우는 시아파로 나뉘고...시아파가 좀 거시기 해서 코르도바 칼리프왕조 이후 알모라비툰이니 알모하드 등등등 같은 세력들이 어떻게 원리주의로 변해갔는지...게다가 그 중간 시기의 아사신들의 역사..ㅋㅋ 저런 엄청난 포괄적인 질문은...ㅋㅋ 아마 까페의 다른 많은 분들도 너무 써야될 내용이 많아서 귀차니즘 발동일 듯...ㅋㅋ
  • 작성자 ▦무장공비 작성시간11.07.19 무슨 종교든지 원리주의로 흐르면 별별문제에 한다리 걸치고 관여 할려고 듭니다-_-;;;;; 이슬람은 근대에 들어오며 '외세의 침탈'에 대한 안티테제로 '종교'를 고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유독 많았고요.
  • 작성자 hyhn217 작성시간11.07.19 살아있는 생물체를 묘사하는 것에 대한 금기는 있었지만 회화 예술은 엄연히 존재했습니다.
    로맨스는 이슬람의 어느 시기에나 문학의 단골 소재였죠. 이슬람 이전부터 구전되던 라일라와 마즈눈, 페르시아 수피 시인들의 서정시, 서사시는 위에 언급한 회화의 주재로도 자주 쓰였구요.
    음악의 경우, 이슬람 문화권에서 '시'가 차지하는 역할을 생각할 때, 과연 음악이 완전히 배제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시는 본질적으로 음율-음악이 따라오는 장르거든요.
  • 작성자 hyhn217 작성시간11.07.19 몽골 침입 이후 '이슬람'에 대해 많이들 말이 나오지만, 몽골 침입 이후 등장한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 제국은 이전의 압바스 왕조나 파티마 왕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비무슬림들을 데리고 600년이 넘게 꾸려갔던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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