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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VOCALOID 時代 작성시간11.07.18 뭐...이슬람이 근데 좀 X망이였던 이유 중 하나가, 같은 이슬람교도라도 파(派) 문제하고(수니파하고 시아파였나..)
비교적 '정치분야'가 발달이 매우 미흡했다는 게 또 이유가 아닐런지..
심지어 동양사 게시판에서 본 것에 의하면,
"몽골이 쳐들어와서 초토화" 시킨 것이 또 이슬람을 폐쇄적으로 만들었다더군요..
그 이전의 이슬람에서는 어느정도 종교(이슬람교)의 거시기한 점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좀 자유로웠고,
학문이나 기술등도 유럽보다 오히려 우위에 차지한 게 많았었다죠..
'근데 몽골 인베이젼 한 방에 다 나가 떨어지니;;;;;' (어이쿠..죄많은 제국일세;) -
답댓글 작성자 VOCALOID 時代 작성시간11.07.19 최하늘/
뭐, 몽골만 탓하는 거 아니예요 ㅎㅎ 단지 불나려는 집 앞에 기름통을 한 번 던져 준 역할을 했죠...
그리고 집이 타오를 불꽃은 이슬람이 서서히 지피게 됐고;;
게다가 이슬람이 유럽(기독교)세력을 워낙 마땅치 않게 보면서, 그들과 되도록 상종하지 않으려는 것도
있었다고 들었습죠. (원래 발전이란 게, 저는 '서로 얽히고 부딪히면서 형성'(대게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무엇보다 솔직히 이슬람이 좀 제약이 많은 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긴 하네요. 몽골 이전에도,
솔직히 종교 교리에 거시기한 점을 토론할 때 '조금만' 인정해줬다하고... -
답댓글 작성자 아뉘 작성시간11.07.19 파(派) 문제는 어느 종교나 있었고 이슬람의 파(派)가 초기 기독교의 단성론/정통파 분쟁, 근세 기독교의 루터파/칼뱅파/카톨릭의 분쟁에 비해 더 심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이슬람은 태동부터 같은 유일신 종교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폈기 때문에 같은 이슬람 내 종파에 대해서도 기독교처럼 극단적인 분쟁으로 이끌어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중세 부이 왕조의 경우, 왕조는 쉬아파였지만, 지배한 곳은 수니파였으며, 행정직은 주로 기독교인들이 차지하였습니다. 또한, 이슬람의 '정치 분야' 발달 미흡 역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중동사' (김정위 지음) 이었나.. 이슬람 역사서였나 기억이 잘 안나는데, 여튼 사료에 의하면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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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아뉘 작성시간11.07.19 세력은 대체로 페르시아/이란의 선진 정치체제와 적이었던 비잔틴 제국의 정치체제를 효과적으로 흡수했고, 셀주크 투르크와 같은 유목민들 역시 현지의 발달된 정치체제를 받아들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쇠락하기 전까지는 이슬람의 정치 체제는 대체로 서구의 것보다 발달되어 있었으며 하층민들의 생활 역시 서유럽의 개떡같이 가난한 삶에 비하면 훨씬 그 질이 높았다고 하는군요. 이슬람 권의 쇠퇴가 '몽골 침략' 이전부터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은 본 까페의 역사 게시판에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상당히 좋은 글이었으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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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기 작성시간11.07.19 어메..-_-;; 질문하신 분이 4줄로 쓴 내용은 이슬람의 역사의 절반 정도는 써야되는 내용임..ㅋㅋ 라시둔 칼리프부터 4대 칼리프인 알리가 죽은 이후 이슬람이 정치적으로는 우마이마 칼리프왕조와 이를 계승한 압바스 왕조, 코르도바 칼리프왕조의 둘로 나뉘고...또 종교적으로는 수니파와 파티마를 정통으로 내세우는 시아파로 나뉘고...시아파가 좀 거시기 해서 코르도바 칼리프왕조 이후 알모라비툰이니 알모하드 등등등 같은 세력들이 어떻게 원리주의로 변해갔는지...게다가 그 중간 시기의 아사신들의 역사..ㅋㅋ 저런 엄청난 포괄적인 질문은...ㅋㅋ 아마 까페의 다른 많은 분들도 너무 써야될 내용이 많아서 귀차니즘 발동일 듯...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