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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K군에게 / 인문학 대학원에 진학한 J씨에게

작성자코쟁이25|작성시간13.04.30|조회수1,231 목록 댓글 5


[딸깍발이]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K군에게
2010년 12월 20일 (월) 15:21:40진태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서양철학  editor@kyosu.net

 

안녕하세요, K군. 날이 무척 추워졌습니다.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졌다죠? 어수선한 국내외 정국에 매서운 바람까지 몰아치니 마음이 한층 더 스산해지는 느낌입니다.


얼마 전 메일을 통해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조언을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죠? 제 강의 시간에 K군이 했던 발표나 기말 보고서의 우수함을 생각하면 두말없이 적극 진학을 권장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학생들을 가르치고 접해왔지만, K군처럼 우수한 사고력과 글쓰기 능력을 겸비한 학생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깊고 넓은 학문의 세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뜻을 펼치기 바랍니다.


이렇게 권하고 싶은 것이 제 본래의 마음이겠지만, 실제로 제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웬만하면 다른 길을 택해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권하는 것은 과연 한국에서 학문을 하는 것, 특히 인문학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심각하게 회의를 품게 됐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K군처럼 홀어머니에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국내에서 석ㆍ박사과정을 마쳐야 한다면, 또 서울대 학부 출신도 아니라면, 평생 밥벌이도 제대로 하기 힘든 학문을 하기 위해 과연 십 수 년의 고된 수련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지금 K군의 머릿속은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가득차 있을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든 국내에서 공부하든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무언가 새로운 관점을 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인문학적으로 해명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으면 되지. 그리고 학자의 삶이란 게 풍족한 삶일 수는 없으니까 그냥 굶주리지 않을 정도로 생계만 꾸릴 수 있다면, 다소 가난하더라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사는 게 더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이 아닐까.
만약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고 또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선 국내 학계에서는 외국에서 공부했느냐 국내에서 공부했느냐가 큰 문제가 된다는 점입니다.


서울대 학부 출신도 아니면서 국내에서 공부하겠다는 것은 이미 졸업 후에 정규직 취직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학계의 비정규직의 삶이란 고달프기 짝이 없습니다. 여러 명의 비정규직 교수의 가슴 아픈 자살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저는 혹시 제가 학문의 길을 권한 누군가가 훗날 이런 참담한 삶의 끝자락에 서게 되지 않을까 정말 두렵습니다.


어찌어찌해서 다행히 취직이 된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인문학하기란 그리 보람 있는 일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국 학계는 한국 사회의 다른 어떤 분야 못지않게 신자유주의적 체제로 철저히 재편되고 있는 중입니다. 학계의 신자유주의는 크게 두 가지 구호로 집약됩니다. 단기 수익성을 높여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라.


다른 학계에 비해 현저히 뒤처지긴 하지만 인문학계도 나름대로 이 두 개의 지상명령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교원이거나 아직 정년보장을 받지 못한 교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1년에 많게는 10여 편에서부터 적게는 3~4편에 이르는 등재지 논문 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수익성의 학문적 기준이 1년에 몇 백 퍼센트의 업적을 남겼느냐로 표시되기 때문에 질적 우수성, 독창성이나 깊이 같은 기준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인문학하기란 논문 작성 기계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질적인 평가는 외국 학계에 위임됩니다. 곧 어떤 학자의 질적 우수성은 일차로 그가 외국(=미국)의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로 측정되고, 그 다음에는 그가 외국의 저명학술지에 논문을 실었느냐로 평가됩니다. 따라서 우수 학자의 일차 요건은 유학 경험, 영어로 글 쓰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국내 대학 출신이든 외국 대학 출신이든, 또 동양어권이나 유럽어권 유학생이든 영미권 유학생이든 가리지 않고 관철되는 철의 법칙입니다.


K군, 그러니 영미권의 유명 대학원에 진학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간곡히 권하거니와 학문의 세계에 발을 디디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 인문학, 특히 철학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 아까운 재능과 인생을 낭비하지 말기 바랍니다.


진태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서양철학



인문학 대학원에 진학한 J씨에게
[딸깍발이] 진태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서양철학
2011년 03월 14일 (월) 17:35:18진태원 편집기획위원 고려대 서양철학  editor@kyosu.net

  
 진태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서양철학 
  J씨, 안녕하세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은 J씨에게 이런 답장을 보내게 되어 기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지난 겨울 K군에게 보내는 편지가 <교수신문>에 실린 뒤 기자에게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몇 년 전에 제 강의를 들었던 한 독자에게 온 글이라면서 기자가 전해준 메일이었습니다. J씨는 그 메일에서 공대에 재학 중이던 2004년 제 수업을 듣고 인문학의 묘미를 알게 되어 공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이제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하게 됐다고 소식을 알려주셨죠?

  사실 제가 처음 K군에게 보내는 편지를 칼럼에 실었을 때는 후속 칼럼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내용이 확실히 정해져 있지는 않았지만 첫 번째 칼럼에서 했던 이야기가 제가 하고 싶은 말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칼럼에서 인문학을 공부하지 말라, 철학을 공부하지 말라고 했던 말을 혹시 사람들이, 특히 학생들이 저의 진심으로 이해할까 두려웠던 것이죠. 그래서 후속 칼럼을 통해 한국의 현실에서 인문학, 특히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도저히 계산이 나오지 않는 미친 짓으로 보임에도, 왜 인문학을 공부하는 일이 필요한지, 그것이 왜 해볼 만한 일인지, 자크 데리다 식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일종의 계산 불가능한 것인지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J씨의 메일을 받고 제 생각이 공연한 기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J씨는 제가 그 칼럼에서 전하려 했던 메시지를 정확히 꿰뚫어보았고 더욱이 삶의 경험을 통해 그 칼럼의 한계까지 잘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편지의 일부를 인용해보겠습니다.

  “전 고등학교 때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 때 이미 철학을 전공해서는 밥벌이가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철학은 시간이 있을 때 취미로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 그리고 공대에 들어갔고 석사까지 마친 후 기업연구소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그러나 입사 2년 정도 지난 후,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강해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선은 돈을 번다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 자본주의가 착취하는 것은 사람의 노동력 이외에도 인간성이나 순수한 의지,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기업 역시 학벌과 실적주의에 물들어 있고, 돈이 되는 연구를 중심으로 연구비가 투자되고, 그러니 정보를 왜곡해서라도 연구비를 따내야 합니다. 대기업의 수익은 대부분 중소기업을 착취한 결과이며 이기심과 탐욕이 미덕으로 공감되고 있었습니다.

  (…) 하물며 이 구조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결코 ‘나’도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신자유주의라는 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욕구를 억압당하고 있었으며, 조금 떨어지는 콩고물로 약간의 허영심을 느끼며 아득바득 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J씨가 말한 대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통을 겪는 것은 다만 인문학도만이 아니라 소수의 특권 집단을 제외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 아니거나 좋은 학벌을 갖지 못한 사람들, 좋은 배경이나 연줄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애초부터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구조적으로 박탈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또 어찌어찌해서 정규직의 자리를 잡을 기회를 갖는다 해도 그 자리는 또 다른 피 말리는 경쟁의 장소일 뿐입니다.

  따라서 인문학의 영역이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따라 재편된다는 이유로 인문학, 철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인문학도의 삶이 고단하고 위태로운 것이라면, 다른 영역에서의 삶 역시 그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별다른 배경이나 연줄이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 삶이 불안하고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일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란 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특정한 질곡의 메커니즘에서 비롯한 것인지 따질 만한 여유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게 좋은 삶, 공정한 삶의 방식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고달픈 삶을 각오하고 인문학도의 길을 택한 J씨의 결정이 반갑고 고마웠던 것은 그것이 자신의 삶의 문제가 보편적인 문제라는 인식에 기초를 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조리한 삶의 현실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 삶을 끌어안은 채 그 부조리함의 원인과 조건, 한계를 따져보는 것,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헤아려 보는 것, 인문학이란, 철학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J씨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진태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서양철학


출처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2126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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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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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zombie | 작성시간 13.04.30 그러게요 고대에서 저러면 다른 대학은.. 휴우..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13.04.30 순수 인문학은 솔직히 한국에서는 힘들죠
  • 작성자FatePhilia | 작성시간 13.04.30 으엌....;;;
    대학원 간다고 하면 교수가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게 '집에 돈 있냐'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기러기 | 작성시간 13.04.30 아...............
  • 작성자惡賭鬼 | 작성시간 13.04.30 제가 하고 싶은 말 하고 똑같음. 핵심은 인문학이 힘들다는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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