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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와 운영진, 비판과 견제의 매커니즘

작성자리블루|작성시간14.01.18|조회수282 목록 댓글 3

 집단 내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수습하는 방법은 둘 중 하나입니다. 덮거나, 혹은 끄집어내거나.

 문제를 카펫 아래로 쓸어 넣는 것이 당장은 편한 방법이겠지만 언젠가는 불룩하게 솟아오른 카펫에 발이 걸려 넘어질 것이 뻔합니다. 때문에 이번 기회를 빌어 카페의 운영진과 이에 대한 비판과 견제 매커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미리 밝히면 저 운영자 아닙니다. 그냥 뭔가 일이 터질 때마다 몇 마디 던지는 오지랖 쩌는 일반 회원일 뿐이죠. 때문에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전적으로 제 사견이며, 이 카페의 여러 운영진 분들의 생각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밝힙니다. 몇몇 분들이 자꾸 오해를 하시는지라...

 

 

=====

 

 

질문 하나 던지겠습니다. 우리는 왜 카페의 운영진을 신뢰할까요?

우리는 무슨 근거로 철권을 쥐고 있는 운영진을 믿고 카페에 발을 붙이고 있나요?

 

고대의 제정일치 사회라면 그, 혹은 그들이 신에게 기름부음 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참주정이라면 그가 가진 영향력, 재력, 무력이 강하기 때문일 겁니다.

절대왕정이라면 그의 혈관에 푸른 피가 흐르기 때문일 겁니다.

민주정이라면 그가 인민의 투표로 선출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카페 운영진은 다릅니다. 그(그들)은 단지 이곳을 처음 만들었기 때문에 권력을 가집니다. 창조주이기에 무제한의 권한을 획득하는 것이죠. 이들의 권력은 어떤 정당화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카페에서 운영자와 회원의 관계는 앞서 언급한 정치체제의 그것보다는 종교, 신과 피조물의 관계에 가깝습니다. 승계 역시 눈곱만큼의 민주적 요소 없이 저 King in the North의 방식대로 선견자의 ‘내정’에 따라 결정됩니다. 최고운영자인 카페지기는 필요하다면 회원을 자르거나, 강등시키거나 할 수 있고, 게시판을 만들기도, 없앨 수도 있습니다. 카페 안에서 그는 전지전능합니다. 때문에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면 카페는 비민주적입니다.

 

 예전 이야기를 꺼내보겠습니다. 2003년, 혹은 2004년으로 연도는 정확하진 않지만 여튼 코찔찔이 중딩 시절 저는 백모 씨가 운영하던 네이버의 ‘미디블 토탈워 커뮤니티’란 곳에 가입했습니다. 미디블 토탈워 1의 멀티를 주로 하던 소규모 친목 카페였죠. 여기서 엘린님, 버서크칸님 등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저 삼국지나 토탈워의 싱글게임이나 즐기던 제가 멀티플레이를 하고, 카페 채팅방에서 수다를 떨게 됐죠. 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카페가 폐쇄됐습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카페지기였던 백모 씨가 마음대로 카페를 없애버렸다고 하더군요. 주말마다 작은 공간에 모여 웃고 떠들며 즐기던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린 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운영자의 ‘변덕’이 초래했습니다. 다행히 엘린 님을 위시한 분들이 카페를 만들고 가입했던 분들을 알음알음 불러 모았기에 다시 ‘공간’은 찾을 수 있었지만 당시 느꼈던 당혹감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카페 시스템은 비민주적이기에 취약합니다. 카페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이 한번쯤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럼에도 여러분은 카페 운영자를 신뢰할 수 있나요?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카페는 운영자, 혹은 소수 운영진만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카페 운영자가 설령 창조주라 한들 카페에서 활동하는 회원을 창조하지는 못합니다. 그, 혹은 그들은 단지 판을 만들 뿐입니다. 그들이 벌여놓은 놀이판을 키우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전적으로 회원들의 몫입니다. 운영진은 전능하되 전능하지 않은 불완전한 신입니다. 그들의 창조물인 카페를 살아 움직이게 하기 위해 그들은 회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때문에 카페는 시스템적으로는 비민주적이되, 카페의 목적에 의해 민주적 성격을 띠게 됩니다. 이는 전적으로 ‘여론’의 힘입니다.

 

 카페 운영진은 시스템상 막강한 권한을 손에 쥡니다. 그러나 이를 휘두르는데 있어 회원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합니다. 카페의 여론에 촉각을 세우고, 그 목소리에 자신의 결정을 비춰보아야 합니다. 사람에 따라 전횡을 휘두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횡을 휘두르는 운영자, 혹은 소수 운영진이 ‘지배’하는 카페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떠나기 때문이죠. 여러분의 발길이 머물지 못하는 카페는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투표 등 복잡하고 장기적인 절차를 따질 것 없이, 클릭 한 번을 덜함으로써 여러분은 카페 하나를 없앨 수 있습니다. 카페에서 진정으로 전능한 것은 기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입니다.

 

 현실 정치에서 우리는 민주적 절차 이면에 도사린 수많은 비민주적 요소와 마주합니다. 저항하고 투쟁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잃어야 합니다. 몸담고 있는 국가에서 함부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통치론에서 존 로크가 피력한 ‘묵시적 동의’가 비판받는 지점이 여기에 있죠. 이에 비춰보면 카페 시스템은 역설적으로 지극히 민주적입니다. 운영진은 흡사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처럼 절대적 권력을 휘두르며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지만, 근본적으론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여론의 눈치를 보며 ‘묵시적 동의’를 구해야 하기에 로크의 그것과도 유사합니다. 홉스와 로크가 적절히 믹스된 결과물이 오늘날의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입니다.

 

 얼마전 윤가람님이 ‘나 어차피 이 카페 나가도 상관없음 흥’이라 댓글을 남긴 것도 기실은 저 ‘묵시적 동의’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 것에 가깝습니다. 뭐 이미 지난 일이고 이건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니 넘어가죠.

 

여튼 구구절절 늘어놓은 말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카페는 시스템적 한계로 운영진이 무제한적 권력을 가지지만

2. 카페 회원들의 ‘묵시적 동의’를 구해야 하기에 그 운영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3.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카페 회원들의 ‘여론’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은 이번에 있었던 타메를랑님의 생일공지와 책 홍보 메일 등 소위 ‘운영진의 직권남용’으로 요약할 수 있는 행위를 제 나름의 시각으로 풀기 전에 제 생각의 기반, 커뮤니티를 바라보는 시각을 여러분께 보여드린 것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면,

 

 타메를랑님의 생일 공지는 분명 직권남용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생일 등 경조사는 개인의 것이지 공공의 것이 아닙니다. 운영자가 개인 자격으로, 다시 말해 공지란 권력을 행사하지 않고 남들과 같이 자게에 생일 축하글을 올렸다면 이는 용인할만한 수준입니다. 솔까말 깊이 따지고 들면 위에서 누차 이야기한대로 “‘신적 권력’을 쥔 운영자의 글과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와 뭐가 다르냐”고 볼 수 도 있습니다만 여기서 다룰만한 내용은 아니고, 어떠한 금전적 이익도 얻을 수 없는 커뮤니티 운영자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과 같기에 넘어가겠습니다. 여튼 일반 회원들이 할 수 없는 힘을 이용해 개인사에 대한 축하를 ‘요구’했기에 이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 수위는 다를지언정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카페 여러분 모두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제 관점에서 책 홍보는 애매합니다.

 아시다시피 타메를랑님은 작가입니다. 작가는 책이 많이 읽히면, 많이 팔리면 좋습니다. 때문에 타메를랑님의 책 홍보 메일이나 게시글은 영리추구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메를랑님에겐 이 카페에 10년 넘게 있으면서 운영자로 봉사한 이력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타메를랑님의 운영에서 불만가질 부분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공정하다고 단죄할 것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예전 모 님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했을 때 개인적으로 교류가 있던, 몇년 지기였던 그 사람을 강퇴한 타메를랑님의 행정 처리를 보면서 운영자로서의 ‘공정함’에 신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책 홍보 메일 역시 비슷하게 카페에서 책을 출간하신 눈팅3급님의 전례를 봐도 비단 운영자가 아니더라도 카페 회원 중 책을 출간한 분들을 타메를랑님이 공지와 메일을 통해 홍보해왔기에 공공성이 있는 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를 두고 이견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게 ‘글’입니다.

 

 저번에 쓴 글에서 오해를 산 부분이고, 크락수스님의 지적도 있었기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글과 댓글의 비유에서 진정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내용, 정확히 말해 상대를 설득하고자 하는 ‘노력’의 여부였습니다.

 

 타메를랑님의 책 홍보에 대해 자신의 불만을 제기하려고 했다면 자신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보다 정확히 전달하려는 노력을 수반했어야 합니다. 델카이저님의 글은 타메를랑님의 직권남용에 대해 자신의 불만을 구체적으로 풀어냈습니다. 때문에 표현의 수위는 별개로 하더라도, 델카이저님의 글은 누구나 정당한 문제제기, 운영진에 대한 적절한 견제로 받아드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 반응을 봐도 타메를랑님은 델카이저 님의 글을 보고 카페 회원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고, 시정의 여지를 보였습니다. 대화가 통했던 것이죠. 잘하면 이번 일은 여론을 통한 카페 회원의 운영진 견제의 좋은 미담으로 남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책장사나 스팸’을 운운한 댓글은 다릅니다. 자신의 불만을 단지 한 두줄의 글에 응축해 타메를랑님의 ‘직권남용’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는 것에 편승해 터트렸을 뿐입니다. 이것은 단지 분노의 표출일 뿐 상대방에 대한 어떤 개선이나 변화를 요구하는 비판이 아니었습니다. 책 홍보가 불만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불만을 운영진에게, 나아가 카페 여론이 충분히 동의할 수 있도록 전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글입니다.

 

 책장사, 스팸이란 표현의 수위를 두고 이견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여론 환기의 ‘노력’에 빗대보면 과연 어떻게 보이시는지요.

 

 말은, 그리고 글은 칼입니다. 잘 벼린 글은 한 번의 휘두름만으로 상대의 숨통을 끊을 수 있습니다. 실력 있는 논객의 글은 관중에게 아름다운 검무를 보는 것과 유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우리가 유시민, 진중권 등의 논객에 열광하는 것도 이와 유사한 심리입니다. 우리 카페 역시 몇몇 회원 분들이 흡사 이런 논객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카페를 뒤흔든 관심종자들의 분탕질에서도 이 분들의 ‘칼 끝’은 여지없이 빛났죠. 허나 이런 잘 벼린 칼만이 사람을 벨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딘 칼도 사람을 벨 수 있습니다. 칼 끝이 뭉툭하다고 해도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장소를 찾아 꽂힌다면 소위 말하는 ‘논객’의 그것과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카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관심종자를 몰아내는 것은 논객들의 노력 못지않게, 자신의 생각을  서툴게, 그러나 진솔하게 담아낸 댓글들의 힘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잘 벼려있던, 무디던 칼은 칼이고, 글은 글입니다.

 

 하지만 잘 벼린 칼이든, 무딘 칼이든 잘못된 타이밍, 잘못된 장소에 꽂히면 최악의 결과를 낳습니다. 특히 어찌됐든 자기 생각을 ‘벼려야’하는, 시간을 쏟아야 하는 벼린 칼에 비해, 무딘 칼은 그저 순간의 감정을 담아 상대를 한두 번 담그면 되기에 더 위험합니다. 물론 잘 벼린 칼이 엉뚱한데 꽂히는 건 더 끔찍하지만, 빈도를 봤을 때 우리가 더 쉽게 마주할 위협은 무딘 칼, 한두 줄 댓글입니다.

 

 보는 시선에 따라선 책장사, 스팸을 운운하는 댓글 한두 개가 별게 아니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 댓글은 최악의 타이밍, 최악의 장소에 꽂힌 무딘 칼이었습니다. 너무나 쉽게 휘두를 수 있는 칼이기에 이런 댓글은 위험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댓글 한두줄의 폭력에 13년 동안 카페에 있었던 회원 한 명을 잃었습니다. 뭐 거창한 타이틀을 빼더라도, 우리는 대화가 통하던 운영자, 성실하게 글을 올리던 회원을 잃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론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민주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시스템적으로 민주적 운영이 불가능한 카페는 근본적으로 카페가 모두의 놀이판이기에 여론에 의한 비판과 견제가 가능한 것이죠. 이런 힘이 카페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까닭은 회원 개개인이 곧 카페를 구성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운영자가 카페를 민주적으로 운영하지 않을 때, 영리를 추구하며 상업화를 추구할 때 카페 회원들은 ‘묵시적 동의’를 거부함으로써 카페 자체를 무너뜨려 저항해왔습니다. 지금까지 명멸해간 수많은 카페들이 이런 수순을 밟아나갔습니다. 10년을 넘긴 우리 카페가 몰락해간 다른 카페들의 전철을 밟지 않은 것은 운영진의 권위에 억눌리지 않은 일반 회원들의 여론을 통한 적극적인 비판과 견제가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비판과 견제를 수용한 ‘양식있는’ 운영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카페 운영진 역시 쥐고 있는 권한과 별개로 그들 역시 이 카페를 구성하는 회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 역시 우리들처럼 글, 혹은 댓글에 상처받을 수 있는 인간입니다. 운영진을 동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운영진을 비판할 때 그들을 절대 권력을 쥔 피도 눈물도 없는 기계로 대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설득할 대상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 의사를 전달할 상대역으로, 동의를 구하기 위해 노력을 쏟아야할 같은 회원으로 대하란 뜻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비판과 비난은 다릅니다. 그 차이는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노력 여하에 갈립니다. 이런 노력 없는, 최소한의 사유와 성찰도 없는 감정의 배설은 무딘 칼을 휘두르는 폭력에 불과합니다. 운영진의 권력 남용 못지않게 여론에 편승해 툭툭 던지는 비난 역시 견제 받아야 합니다. 여론 역시 하나의 강대한 권력이며, 어떤 권력이든 견제받아야 함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운영진이든 일반 회원이든 이 '놀이판'이 오래가기를 바란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땅, 같은 커뮤니티에 발 딛고 서있기에 시스템이 낳은 권력의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운영진과 회원 개개인은 상호 신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한 쪽을 완전히 끝장내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신뢰를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쓰는 글의 무게를 짊어져야 합니다. 

 

=====

 

 첨언해 타메를랑님이 설령 카페에 돌아온다 하더라도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어떤 식으로든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일 공지는 분명한 직권남용이며, 책 홍보 메일 역시 카페의 여론을 수렴해 그 용인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비슷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문제는 덮기보다는 끄집어내어 풀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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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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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Mr.비버 | 작성시간 14.01.18 그럼 투표 한번 하는건어떨까요? 타메를랑님의 행위에 대해서...카페내 여론이 궁금하네요.
  • 작성자fdsa | 작성시간 14.01.18 투표괜찮은듯하네요
  • 작성자기러기 | 작성시간 14.01.19 어찌되었든 타메를랑님이 다시 카페로 돌아오셨으면 좋겠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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