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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Re:Re:적벽대전이 없었다고??

작성자Diaho|작성시간03.02.06|조회수71 목록 댓글 1

적벽의 전투는 확실히 있었습니다.(...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위서 무제기에도 있고 오서 오주전, 촉서 선주전에도 기록이 있습니다. 주유전에 가장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 제갈량전에도 한대목이 끼어있군요...

당시 삼국의 주요 인물들의 열전에 모두 기록이 되 있는 것만 해도 진실성을 의심하긴 좀 그렇지 않을까요? 뭐..모두 정사 삼국지에 있는 기록들이라 진수가 세기적 사기를 쳤다고 하면 할말 없습니다만....(그랬다간 일단 누군가의 아들 혹은 손자에게 얻어 맞았겠지요)

규모와 과정에 진실성이 의문시 되는 것이지 적벽 전투 자체의 존재 유무는 따질 가치가 없다고 봅니다. 이른바 정사 삼국지라는 물건은 285년(맞나?)에 쓰여진 겁니다.(주로 읽히는건 송대에 배송지가 주석을 단 물건이지만) 백년도 안지났는데 명색이 史를 기록하면서 사기 치겠습니까. 진수의 부친이 삼국지에 출현할 정도인데요..(이름은 기억이 안납니다만 별 볼일 없는 위치입니다... 소설에서는 제갈량의 언젠가의 북벌때 사로 잡혔다가 하후 뭐시기랑 포로 교환되는 부장입니다.)

애초에 천년이 넘어 쓰여진 소설에 사료적 가치를 부여한다 하지 않는다라는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조운이 소설에서 만큼 종횡무진한 기록이 없는건 슬프지만)


제 사견으로는 위와 오의 양 군 합쳐(유비군따윈 있으나 마나 였으니깐) 20만에서 최대 30만정도가 어우러 졌다고 봅니다. 소설에서 주유가 손권과 신료들을 설득할 때 한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거지요.(내레 5만만 주시면 조조군 15만을 까버리갔시요) 전투의 결과로 조조군이 더이상의 남방 평정을 시도 할 수 없을만한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하나 괴멸적인 타격도 아니었던 듯 싶습니다.
일단 조조군의 주요 무장들은 하나도 죽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보통 괴멸적인 패배라면 주군을 보호한답시고 포위를 뚫다가, 추격군을 상대하다가 한둘은 죽어 나가기 마련이죠.(허저가 좀 설치긴 합니다만) 오군에게 전과 확대 의지와 능력이 없었던지 비록 패주 였지만 질서 있었고 퇴각로가 안전했다는 의미라 봅니다.(이로서 화용도의 의리를 소설적 허구로 전락시켜버리는구나) 게다가 조조군은 여전히 중국 최강의 전력으로 여기저기서 설쳐대죠. 당시 조조의 인적 물적 기반과 회복력이 월등하기도 했습니다만 정말로 그렇게 엄청나게 당했다면 몇년은 죽어 지내야 정상 아니겠습니까.
유비와는 다른 겁니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이릉 전투 지고 유비는 많은 장수와 병력, 물자를 잃고 향후 몇년동안 촉은 조용히 죽어 지내야 했습니다. 제갈량이 유비의 유지에 그렇게 불타지 않았다면 더 오래 죽어 있었겠지요.(그런것에 불타는게 멋지지만)



뭐 어쩌다가 좀 두서 없는 장광설입니다만 결론은 적벽대전은 있었고 생각보다는 쫌만한 스케일이었을거란 거죠... 결국 동의한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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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분단극복 | 작성시간 15.11.04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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