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 전투는 러시아 원정 후에 벌어진 전투입니다.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 원정으로 대부분의 군대를 잃고 크게 세력이 약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원정 그 자체 때문에 나폴레옹이 망한 건 아닙니다) 그러자 영국-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는 "기회는 이때다!" 하고 제4차 대(對) 프랑스 동맹을 맺고 프랑스를 공격합니다. 이에 맞써 나폴레옹은 남아있는 군대를 끌어모아 싸우게 됩니다.
그래서 양쪽은 1813년 10월에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대규모 회전을 벌이게 되는데 이 전투가 바로 라이프치히 전투입니다. 나폴레옹은 어떻게든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이 전투는 나폴레옹군의 패배로 끝나게 됩니다. 그 기세를 타고 영국-프로이센 동맹군은 프랑스를 향해 진격하게 되죠. 그리하여 1814년 3월에는 마침내 파리가 영국-프로이센 동맹군에게 함락당합니다. 모든 게 다 끝나버렸다는 걸 깨달은 나폴레옹은 동맹 측과 협상을 하고,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 엘바 섬으로 귀양가게 됩니다.
그러자 동맹 측은 루이 16세의 동생, 루이 18세를 프랑스의 새로운 국왕으로 앉히게 됩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앞으로 유럽을 어떻게 할 것인가 회의를 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빈 회의입니다. 빈 회의는 영국-프로이센-러시아-오스트리아 사이의 욕심 때문에 오랬동안 결론이 나오지 않은 채 지지부진했습니다. 그런데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나폴레옹이란 놈이 엘바섬에서 탈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겁니다.
그래서 양쪽은 1813년 10월에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대규모 회전을 벌이게 되는데 이 전투가 바로 라이프치히 전투입니다. 나폴레옹은 어떻게든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이 전투는 나폴레옹군의 패배로 끝나게 됩니다. 그 기세를 타고 영국-프로이센 동맹군은 프랑스를 향해 진격하게 되죠. 그리하여 1814년 3월에는 마침내 파리가 영국-프로이센 동맹군에게 함락당합니다. 모든 게 다 끝나버렸다는 걸 깨달은 나폴레옹은 동맹 측과 협상을 하고,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 엘바 섬으로 귀양가게 됩니다.
그러자 동맹 측은 루이 16세의 동생, 루이 18세를 프랑스의 새로운 국왕으로 앉히게 됩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앞으로 유럽을 어떻게 할 것인가 회의를 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빈 회의입니다. 빈 회의는 영국-프로이센-러시아-오스트리아 사이의 욕심 때문에 오랬동안 결론이 나오지 않은 채 지지부진했습니다. 그런데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나폴레옹이란 놈이 엘바섬에서 탈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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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문라이트 작성시간 05.02.03 1812년...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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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creios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5.02.03 이런 실수를......... ^^; 지적 감사합니다. 문라이트님^^(방금 전에 고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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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creios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5.02.03 그건 제가 연재하던 게 아닌데요. 다른 분이 연재하시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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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록키마르시아노 작성시간 05.02.04 이전투에서 나폴레옹이 믿었던 부하가 배신을 때립니다. 그래서 진 것이죠. 원래는 프랑스군이 우세였다가 배신때문에 사기가 죽어 진 것이죠. 이 전투 이전만해도 나폴레옹은 연전연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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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제국의명장 작성시간 05.02.06 오죽 결론이 않났으면 그 당시 신문들이 빈 회의에 대해 [회의은 뒷전이고 대표들은 춤만 춘다.]라고 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