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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ecuritad 작성시간06.06.10 '기술적 균형상태의 돌파여부가 그 사회의 기술패러다임을 결정한다'는 태제를 증명하기 위해 많은 근거와 가설들을 제시하셨지만 글 전체 분위기가 웬지 산만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님은 서두에서 '자, 그럼 오늘의 주제인 공성전 기술로 넘어가 봅시다. 중세말 동양의 투석식 공성무기가 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발달해 있었다고 일단 보고, 그렇다면 그 원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라고 먼저 이 글의 주제를 밝히고 계십니다. 허나 뒤에 가선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죠. '동서양의 기술수준의 '우열관계'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갑옷이나 전술 같은 응용과학 부문을 비교하는 것보다는 기초과학의 수준을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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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ecuritad 작성시간06.06.10 그리고 님이 내세우신 가설 -이미 경갑체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데, 충격전에 새로 관심을 갖게 된 황제 하나가 중갑을 새로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그러나 그럴싸한 중갑을 만들고 활용하기에는 아직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갑에 비해 상당히 '비효율적인' 수준의 갑옷이 만들어졌고, 이것을 한번 입어본 황제는 중갑의 효용에 회의를 느끼고 더이상의 개발을 중지합니다. 반면 일찍부터 중갑 위주의 전술이 발달했던 서양에서는 중갑에 대한 기술적 배리어가 오래전에 극복되었기 때문에 지속적 투자가 순조롭게 이뤄졌죠.- 역시 뒤에 가서는 '역사는 개인이 아니라 대중에 의해 만들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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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ecuritad 작성시간06.06.10 거대한 흐름이기 때문에, 단순하고 순리에 맞는 방향으로 흐르는 겁니다."라는 주장을 통해 사실상 그 근거가 부정되고 있습니다. 즉 가정의 출발은 '개인(황제)에 의해 만들어 지는 역사'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개인은 역사를 만들 수 없다는 또 다른 성격의 주장을 하고 계시는 거죠.' 물론 님이 쓰신 글은 지적 박식함이 묻어있는 훌륭한 글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일관성은 좀 부족한 것 같네요. 그것만 좀 더 보완하시면 더욱 훌륭한 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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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게이볼그 작성시간06.06.11 투석기도 유럽이 중국의 영향을 받은바가 있다는군요ㅡ유럽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대포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대포가 풍포라는 이름으로 1004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것은 프레임에 설치하여 회전시키는 대형 투석기로서, 투석기의 들보끝에 매어 잇는 로프를 동시에 당겨 발사하는 것이었다. 이런 투석기는 유럽에서는12세기 초 모사라베 필사본에 처음 등장했고 북방 십자군이 리스본을 공격하던 때인 1147년에 다시 등장했다ㅡ린 화이트 중세의 기술과 사회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