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는 네덜란드 3부회가 아시아 식민지역에서의 상거래 독점을 인정한 1602년 3월에 설립되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세계 최초의 다국적 법인이었으며, 최초로 채권을 발행한 회사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서 1623년 11월 7일 발행한 액면가 2,400 굴덴의 채권이다.
동인도 회사는 암스테르담(Amsterdam), 미델부르그(Middelburg) (젤란드 - Zeeland - 에 위치), 엔크후이센(Enkhuizen), 델프트(Delft), 후른(Hoorn) 그리고 로테르담(Rotterdam)에 위치한 6개의 회의소(Kamers)로 구성된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8개 상공 회의소가 제공한 6,424,588 굴덴(gulden)의 자금으로 출발하였다.
후른(Hoorn) 회의소는 266,868 굴덴을 제공했다.
델프트(Delft) 회의소는 469,400 굴덴을 제공했다.
젤란드(Zeeland) 회의소는 1,300,405 굴덴을 제공했다.
암스테르담(Amsterdam) 회의소는 3,679,915 굴덴을 지원했다.
로테르담(Rotterdam) 회의소의 자본금 지원은 순조롭지 않았다. 로테르담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173,000 굴덴을 제공했다. 도르데레흐트 거주민들의 영향력에 의한 것이었다. 엔크후이센 (Enkhuizen) 회의소는 540,000 굴덴을 제공함으로서 암스테르담과 젤란드에 이어 동인도 회사내의 자본금 공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초창기 358명의 주주들은 소규모 상인들이었기 때문에 손실을 각오해야만 했다. 동인도 회사의 이익을 나누어 갖는 회원들 중에서 이민자들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입찰자 1,143명 중 39명이 독일인 이었으며, 301명 이상이 주이트 네덜란드인 (Zuid-Nederlanders) - 벨기에 출신 - 이었고, 아이작 르 마레는 8만 5천 굴덴을 투자한 고액 투자자였다.



회사 본부는 자바의 바타비아(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 설립되었다. 동인도 회사가 육두구와 향미료를 강제적으로 독점 유지하던 반다 섬을 포함하는 향료 제도, 이후 인도네시아가 되는 곳에도 역시 식민지 출장소가 설립되었다. 독점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현지 주민에 대한 폭력적인 억압이 포함된 정책이 사용됬으며 강탈 행위와 대량 학살도 꺼리지 않았다.
동인도 회사는 아시아 전역에서 무역을 했다. 상선은 페루의 에스파냐 광산에서 은을 싣고 네덜란드를 거쳐 바타비아로 들어왔으며 아시아에 있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정착민들에게 보급품을 가져다 주었다. 일본에서 온 구리와 함께 은(Silver)은 중국과 인도에서 직물로 교환되었다. 도자기를 포함한 목화와 비단같은 물품들은 향료로 교환되거나 유럽으로 운반되었다. 동인도 회사는 또한 유럽의 사상과 기술을 아시아에 전달하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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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동안 일본에서 유럽인과 무역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던 나가시카 해안의 인공섬 데지마의 동인도 회사 출장소는 보다 평화로웠다. 1640년에 동인도 회사는 스리랑카에 위치한 갈레 항구를 포르투갈에게서 빼앗아, 계피 무역 독점을 무너트렸다.1658년에 제라드 훌푸트(Gerard Hulft) 는 칸디의 국왕 라자싱혜 2세의 도움을 받아 콜롬보를 공격해 점령한다. 1659년 계피 독점을 원하는 동인도 회사가 점령한 해안 지대에서 포르투갈인들은 쫓겨나게 된다.


1652년에 얀 반 리벡(Jan van Riebeeck)은 동 아시아로 여정을 떠나는 동인도 회사 선박을 재보급하기 위해서 희망봉(Kaap de Goede Hoop)에 전초 기지를 설립한다. 나중에 이 기지는 케이프 콜로니(Cape Colony)로 알려진 확실한 식민지가 되며, 더 많은 네덜란드인과 다른 유럽인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된다. 동인도 회사의 출장소는 페르시아(현재 이란), 벵갈(현재 방글라데시와 인도 일부), 말라카, 시암(현재 태국), 중국 본토(광동), 포모사(현재 대만)와 인도 남부에 걸쳐 설립되었다. 1662년에 콕싱가(Koxinga) - 정성공(鄭成功) - 는 대만에서 네덜란드인들을 몰아낸다.
1669년경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150척의 상선과 40척의 전선, 5만명의 직원, 1만명의 사병, 수입액 중 40퍼센트의 배당금을 지불받는 세계에서 이제껏 본적이 없는 가장 부유한 사설 기업이었다.
동인도 회사는 계속해서 영국과 충돌을 일으켰으며, 특히 1623년의 암보냐 학살 사건으로 인해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다. 18세기 내내 동인도 제도의 소유권을 놓고 투쟁이 심화되어갔다. 네덜란드 연방과 영국이 벌인 네번의 전쟁(1780 ~ 1784)을 통해 동인도 회사는 재정적인 난관에 부딪쳤으며 네덜란드 3부회가 해산된 지 4년 후 회사도 해산됬다. 동인도 제도는 1815년의 빈 회의 (Congress of Vienna)에 의해 네덜란드 왕국(The Kingdom of the Netherlands) 에게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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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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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Secret Garden 작성시간 07.06.06 좋은 글 잘 봤습니다아! 캐러비안해적 보면서 저 문장이 항상 멋지다고 생각했었는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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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푸헬헬 작성시간 07.06.06 1캐러비안에 나오는 동인도회사는 영국회사아닌가요? (문장이 틀린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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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Τιταυιζ 작성시간 07.06.06 오~ 평소에 궁금했는데 감시히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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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총통각하 작성시간 07.06.08 육두구는 당시 사람들에게 흑사병에 좋다는 말까지 돌아 엄청난 가격을 주고라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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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mistery 작성시간 07.06.17 엄청난 대기업이군요. 전 영국회사인줄 알았음. 인도를 점령하고 ㄷㄷ한게 영국이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