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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초기 공화정 로마 군사적 성공의 비화

작성자마법의활|작성시간07.09.17|조회수969 목록 댓글 7

 로마는 공화정기 이후 카밀루스의 군제 개혁 및 유연한 전술 채택 (갈리아 군의 전술을 일정 정도 모방, 차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로 부쩍부쩍 다른 라틴계 부족을 확실히 압도해나가게 됩니다.

 

 특히 방진의 유연한 전술로의 발전 방향은, 카밀루스 시대 이후 확실히 자리가 잡히게 되는데 이 방향이 포에니 전쟁 이후 예기지 않은 진화를 겪으면서 드디어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을 완벽에 가깝게 제압하는 열쇠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이건 로마가 어느 정도 특유의 공화정 체제가 자리잡힌 시기의 이야기고.

앞서 애기한 유연한 전술의 진화는 당대에는 누구도 그렇게 될 것을 예상한 자가 없었습니다.

 

 왕정 시대 (거의 전설로 보는) ~ 공화정 초기 로마의 성공은 과연 무엇으로 봐야하는가? 정말 전설상에 등장하는 뛰어난 왕들의 업적 때문일까? 그렇게는 보기 어려울 듯 합니다.

 

 전술이 우수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주변 라틴 부족들도 그들과 똑같은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체제가 우수했다..라고 말하기에는, 그게 사실은 그렇게 큰 요인이 아니었습니다.

 

 체제 포용성 덕분라고 말하기는, 이 것 역시 왕정~공화정 초기 로마의 군사적 강함과 생존과는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없습니다.

 

 대체 어떻게 로마는 다른 라틴 부족 국가들을 압도하게 된 것일까? 그건 바로 주인을 잘 선택해서, 그 주인에게 우수한 기술, 문화, 물적 토대를 지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정성스레 잘 키운 사냥개 한 마리가 어설픈 늑대들을 압도하는 것처럼.

 

 고대 전쟁사 이야기와 사생활의 역사 라는 책을 보면, 최근에 비문 비석 발굴을 통해 알게 된 로마 초기사의 진상이 드러나있습니다. 로마인들이 기존에 써놓은 문자로 남은 역사와는 달리, 주변 국가들이 남긴 유물이나 비문은 전혀 다른 사실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에트루리아에 대해 종속 - 신속하는 속국의 상태로까지 떨어졌었다는 사실을. ( 천하의 로마도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진보한 국가의 속국이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

 

 로마에서 쫓겨난 최후의 왕이라는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그를 지원해주었다는 에트루리아의 명군 포르센나. 정말 그랬을까?

 

 알려진 것과는 달리, 오히려 타르퀴니우스가 로마 홀로서기 주장의 주창자였고, 당연히 종주국의 군주인 포르센나 왕과는 최악의 대립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로마의 원로원과 귀족 가문들은 그런 주장을 지지하지 않고, 거꾸로 왕에게 반감을 품게 됩니다.

 

 야심이 강한 이 왕이 에트루리아의 맹주 포르센나 왕에게 대항하기 위해 전제 왕권을 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로마 원로원 귀족들의 요청하에 포르센나왕이 군대를 보내주었고, 로마 귀족들이 때맞추어 내응했습니다.

 

 안팎에서 공격당한 타르퀴니우스는 결국 왕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아주 후대의 이스라엘도 통치 능력이 떨어지는 헤로데스 아켈라오를 장로들의 청원으로 몰아낸 뒤, 이후 장로들의 회합인 산헤드린이 로마 총독의 후원을 받아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됩니다. 역사는 비슷한 유형이 늘 반복됨을 여기서 느끼게 됩니다. )

 

 이에 로마는 왕을 없애고 소원하던 공화정 체제는 이루었으나, 그 댓가로 에트루리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더욱 저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당시 라틴 연합이 와해된 진짜 이유도, 에트루리아의 첨병 노릇을 하게 된 (혹은 그렇게 보인) 로마에 대해 다른 라틴 부족들이 이질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시오노 나나미께서 쓰신 것처럼 체제의 다름도 원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 는 바로 이것이었을 거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반감을 느끼던 말던 로마가 가졌던 우위가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로마는 지속적으로 에트루리아의 지원을 받아가며 다른 라틴 부족들을 제압합니다.

 

 그리고..... 상황은 세월이 흐르면서 반전됩니다. 에트루리아는 그즈음 갈수록 강력해지는 갈리아의 남침 압력을 받아내야 했고, 그에 더불어 고질적인 체제 문제가 겹치게 됩니다. (연맹 체제에서 끝나버렸다는 문제. )

 

 쇠퇴기를 맞은 에트루리아는 이즈음 주변 라틴 부족들을 복속시켜 세가 강해진 로마에게 하나하나씩 각개격파 당하며 결국 역으로 로마에게 신속하는 처지로 떨어지고야 맙니다. 이것이 초기 로마의 군사적 성공의 비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세력이 약할 때 느 세력의 속국을 하는 것,  기득권층은 전제를 추구하는

내부 권력자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지배를 하는 외부 지원 세력의 지배를 택하는 경향이

역시 로마 초기사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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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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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중세기사 | 작성시간 07.09.17 ;;; 에트루리아에 지배당한거는 오히려 유명한거 아닐까요;; 그책 오래된듯 하네요.에트루리아에 지배당한건 70-80년대 부터 어린이 학습만화에도 실린건뎅..
  • 답댓글 작성자황제 | 작성시간 07.09.18 먼나라이웃나라 6권 이탈리아 편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마법의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09.18 지배당한 것은 유명하지만, 그 세부 진행 경과는 나오지 않았었습니다.
  • 작성자학생[역갤] | 작성시간 07.09.18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확실히 초기에는 선진 문명을 빨리 접하는 쪽이 유리해 지는 것에 동의합니다.
  • 작성자입닥제국 | 작성시간 07.09.18 역시! 항상 카밀리안 로마군 볼 때마다, 그리고 후기 볼 때도 "분명히 갈리아의 영향을 받았을꺼야" 생각했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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