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욱의 자결에 대해
Ⅰ 서론
순욱이 조조의 선물이라고 가져온 신하의 보따리를 받았다. 그 선물이 바로 빈 밥공기. 순욱은 더 이상 조조에게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그간 조조를 따라왔던 자신에 대한 회한과 함께 자결을 한다. - 삼국지에서는 병사로 적고 있다 (우울증이었을까?) - 물론 이는 결과론이다. 이 결과를 보면 순욱은 '한조부흥'이었다. 그 방법으로 조조를 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조조는 '한조부흥'이 아니었다. 이를 두고 논자는 '군주보는 안목의 부족'이라고 말을 하며 '순욱의 세가지 실수'라고 악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결과'를 보고 순욱을 평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동기마저도 함께 살펴보자. 왜? 순욱은 조조를 택했을까?
Ⅱ 순욱이 조조를 택했을 세가지 가설
순욱은 '순가팔룡'의 명가집 자제로서 태어났다. 더군다나 총명하고 명석하기까지 하였으며 하옹이라는 이는 순욱을 보고는 '왕좌지재'라는 말까지 하였다. 이처럼 순욱은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엘리트로서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후한말에 말단 관직을 삼아 일을 하였으나, 동탁이 전횡을 일삼자 관직을 버리고 주유천하 하였다. 왜? 순욱은 주유천하를 하였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동탁을 제어할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고, 자기힘으로는 부족함을 충분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욱은 원소를 섬기기도 하였지만 인재가 아님을 알고는 조조에게로 온다. 그리고 조조에게서 평생을 바쳤으니 조조는 순욱이 보기에 난세를 해결할 수 있는 '인걸'로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난세 해결이라는 순욱의 이념속에는 당연히 '한조부흥'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었다.
'순가팔룡'의 자제이고 그 중에서도 '왕좌지재'라는 평가까지 받은 순욱이 조조를 잘 못 보았다? 그러한 가능성은 아무래도 없어보인다. 그렇다면 순욱은 조조가 천하를 평정하고 차지할 야심가인 줄 알아보고 도와주었다라는 두 번째 가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도 아니다. 왜? '한조부흥'을 위해 막판에 자신의 목숨까지 버린 인물이 순욱이다. 그런 인물이 본 '조조'는 따라서 유씨 한조를 말아먹을 인물로 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가능성만 남았고, 그것이 정말일 듯 싶다. 순욱이 조조를 섬길 당시 조조는 유씨 한조를 엎을 생각을 아예 하고 있지 않았던가 반대로 한조부흥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Ⅲ 조조라는 인물의 변화상
초창기 조조는 그러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물론 그 누구도 조조가 아니니까 조조의 행적만 살펴보고, 그의 행동을 파악하여 두가지로 분류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처음에는 한조 부흥을 위해 노력했지만 불가능함을 알고서 신왕조 개창으로 돌아섰다는 것이 그 첫 번째고 두 번째가 진류에서 세규합을 하면서부터 신왕조 개창에만 열중했다라는 설이 그것이다. 물론 나그네는 첫 번째에 가능성을 두고 있으며, 조조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진류에서의 세규합도 새왕조 개창이 아니라 단지 난세에 할거하는 타 군벌들을 견제하여 한왕조 몰락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순간 신왕조 개창으로 변하고 만다. 무엇일까? 나그네는 그것을 '동승의 모반'으로 인함이라고 보고 있다. 물론 그 전부터 조조의 그러한 모습은 보여지고 있지만 '동승의 모반'을 시발로 하여 조조는 그 전과 천양지차로 바뀌어지게 된다. 이는 후한의 명사들이라는 이들이 '조조'를 '한조의 역적'으로 몰아가면서 그를 뒤엎을 계략을 꾸미자 조조는 '한조'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물론 '허도의 사냥'에서 그 기미가 보였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헌제'를 모시고 있는 이로서의 주변인들에 대한 단순한 '세과시'라고 넘어가며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동승의 모반'이후 조조는 한조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는 '한조부흥'이었다가 모반 이후 '신왕조 개창'으로 180°변한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조조에게 남아있던 일말의 유씨 한조를 향한 마음이 아예 없어져 버리게 되는 것에는 기여 한 것이다. 조조는 그렇게 변해갔다.
그런데 왜? 순욱은 조조가 변해가는 것을 왜 눈치채지 못하였는가하는 점이다. 순욱은 관도대전이 끝나고 나서 조조가 구석을 받을때까지의 12년간의 기록이 전무하다는 문제가 있다. 삼국지도 마찬가지이고 삼국지 연의도 마찬가지이다. 순욱은 관도대전대까지 그 활약상이 아주 두드러진다. 허창천도와 이호경식, 구호탄랑에서부터 시작하여 관도대전의 4가지 승리론까지 순욱의 활약상은 삼국지 전반에서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관도대전이 끝난 이후부터 다시 등장하는 구석에 이르기까지 순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Ⅳ 12년간 사라진 순욱의 행적
순욱이라는 인물의 조조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았을 때 그 12년간 칩거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그 12년이라는 세월의 초점이 유비의 떠돌이 생활과 적벽대전에 맞춰져 있었던 탓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어떻게 조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때도 순욱은 쏘옥 빠져있다. 더군다나 나그네가 조조의 변화시기를 잡은 '동승 모반사건'도 벌어진 시간이 214년으로서 순욱 죽기 2년 전이다. 그렇다면 순욱은 그 이전에 조조의 변화를 모색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즉, 관도대전에서 조조가 의기 양양해지면서 하북의 절대강자로 군림하면서 '천하쟁패'의 꿈을 가졌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관도대전 직후 12년간 사라진 순욱의 행적을 쫓아갈 수 없다. 순욱은 '왕도'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그 왕도는 천하를 강력한 힘으로 정리한 후에 발현되어져야 할 왕도였다. 순욱은 '패도 후 왕도'를 내세웠던 것이다. 난세에 할거해 있는 군벌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난세를 정리할 '패도'가 필요하였다. 순욱은 임시방편으로 그 '패도'를 가꾸었던 셈이다. 그러나 관도를 정리하고 하북의 강자가 되어 '왕도'로 변화시킬 시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끝까지 '패도'를 추구하였다. 순욱은 그러한 조조를 바라보고서는 '후회'와 '한탄'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욱은 조조에게 '왕도'를 내세울 정치 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순욱이 심약하기때문일까라고 생각해볼만 하지만 이는 아니다. 관도대전까지 순욱의 계략이라는 것은 '심약'한 사람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고개가 절로 흔들거린다. 더군다나 이호경식, 구호탄랑 계책은 심약한 사람이 낼 계책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왜 순욱은 침묵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관도대전 이후 순욱의 이상은 조조에게서는 그리 큰 매혹거리가 되지 못한다. 물론 위에서 설명하였다시피 '새왕조 개창'이라는 과격한 생각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직 군벌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왕도'를 추구하기에는 자신의 지지세력기반이 그리 강력하지 못하고 있다. 중원이 얼마마한 땅인데 단지 하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것인가? 조조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순욱은 그러한 조조를 관도대전 이후에 알아차린 것이다. 아니, 알아차렸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 조조의 변화의 조짐을 눈치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고는 별로 크게 관여하지 않게된다. 하지만 그리해도 조조에게는 크게 부담이 가지 않는다. 이미 그때쯤이면 동소, 왕찬, 진림, 가후, 화흠 등의 '패도'정치를 지향하는 모사들이 주위에 들어차기 때문이다. 이때 순욱은 그 설 자리를 잃고 단지 조조의 상담역으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이는 종요가 '태조는 모든 일을 하기에 앞서 순군과 상의하였다'라고 말을 한 것에서 추측할 수 있다. 상의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는 '조조'의 멋대로 아니면 '패도주의 모사'들과 함께 행동하였을 것이다. 이때쯤되면 순욱은 그 발언권이 약화된 단순 '고문'에 지나지 않게 된다. 단순 '고문'이 되어버린 순욱이기에 그의 12년간 기록은 사라지기에 이른 것이다.
Ⅴ 그냥 죽은 것은 자기 행동에 대한 자아비판?
순욱은 죽기 2년전에 벌어진 '동승의 난'때도 그 어떤 발언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자기가 모신 '조조'에 대한 반란이니까 죽어도 된다였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순욱은 유씨 한조를 포기한 것일까하면 그것도 아니다. 모시는 것은 '조조'인데 자기의 이상은 유씨 한조였다. '명목상 고문'으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를 이용하여 유씨 한조를 부흥시킬 목적이었을까? 순욱이 그렇게 바보는 아니다. 다만 자신의 힘이 없어졌고 지금 '조조'를 모시고 있고 그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자기 모순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난 대한승상 조조를 모시고 있는 것이다'라고 스스로 타당성을 부여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스스로 얼마나 한심해했을까.
그러나 마지막 구석을 받을 때 순욱은 결연히 '명목상 고문'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자기 목소리를 내기에 이른다. 그 말은 곧 '그러지 마라'라는 말이다. 이미 힘을 잃어 어떠한 영향력도 없는 순욱이다. 그의 말이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게다가 구석을 받게한 이들이 그러한 순욱의 말을 듣고 '잘못했습니다'하고 넘어갈 멍청이들이 아니지 않은가. 순욱의 말은 그대로 버림받고 순욱은 그제서야 한탄과 후회의 눈물을 쏟는다. 그리고 우울증에 빠져 시름시름 앓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순욱의 마지막이 이래서야 어디 '한조의 충신'이라는 명분이 서겠는가. 나관중은 과감히 순욱의 마지막을 바꾸어 놓는다. 조조의 사악한 빈 밥공기가 등장하고 순욱은 자결을 한다. 후한 우국충신의 마지막 멋진 말로이다.
하지만 우울증에 빠진 병사이건 밥공기 사건으로 인한 자결이건 순욱의 말로는 한심하다. 단지 '아니되오' 한마디 하고 자기 할 바를 다했다고 여긴 것일까? 명목상 고문이 되어버렸을 때 순욱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차라리 동승등과 연계하여 '조조'를 엎어버리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 마지막 충절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상과 맞지 않아 조조를 배신하기에 천하의 '배신자'라는 오명을 얻게 될것을 두려워 한 것일까. 아니면 자포자기인가? 모든 것을 포기한 순욱의 죽음. 순가팔룡 왕좌지재라는 이름을 들은 이가 택한 죽음이라기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죽음이다. 죽음에 이르러 순욱은 자기에게 후회를 했을까? 한조에 대해 북받치는 울분을 삼켰을까?
Ⅰ 서론
순욱이 조조의 선물이라고 가져온 신하의 보따리를 받았다. 그 선물이 바로 빈 밥공기. 순욱은 더 이상 조조에게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그간 조조를 따라왔던 자신에 대한 회한과 함께 자결을 한다. - 삼국지에서는 병사로 적고 있다 (우울증이었을까?) - 물론 이는 결과론이다. 이 결과를 보면 순욱은 '한조부흥'이었다. 그 방법으로 조조를 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조조는 '한조부흥'이 아니었다. 이를 두고 논자는 '군주보는 안목의 부족'이라고 말을 하며 '순욱의 세가지 실수'라고 악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결과'를 보고 순욱을 평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동기마저도 함께 살펴보자. 왜? 순욱은 조조를 택했을까?
Ⅱ 순욱이 조조를 택했을 세가지 가설
순욱은 '순가팔룡'의 명가집 자제로서 태어났다. 더군다나 총명하고 명석하기까지 하였으며 하옹이라는 이는 순욱을 보고는 '왕좌지재'라는 말까지 하였다. 이처럼 순욱은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엘리트로서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후한말에 말단 관직을 삼아 일을 하였으나, 동탁이 전횡을 일삼자 관직을 버리고 주유천하 하였다. 왜? 순욱은 주유천하를 하였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동탁을 제어할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고, 자기힘으로는 부족함을 충분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욱은 원소를 섬기기도 하였지만 인재가 아님을 알고는 조조에게로 온다. 그리고 조조에게서 평생을 바쳤으니 조조는 순욱이 보기에 난세를 해결할 수 있는 '인걸'로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난세 해결이라는 순욱의 이념속에는 당연히 '한조부흥'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었다.
'순가팔룡'의 자제이고 그 중에서도 '왕좌지재'라는 평가까지 받은 순욱이 조조를 잘 못 보았다? 그러한 가능성은 아무래도 없어보인다. 그렇다면 순욱은 조조가 천하를 평정하고 차지할 야심가인 줄 알아보고 도와주었다라는 두 번째 가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도 아니다. 왜? '한조부흥'을 위해 막판에 자신의 목숨까지 버린 인물이 순욱이다. 그런 인물이 본 '조조'는 따라서 유씨 한조를 말아먹을 인물로 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가능성만 남았고, 그것이 정말일 듯 싶다. 순욱이 조조를 섬길 당시 조조는 유씨 한조를 엎을 생각을 아예 하고 있지 않았던가 반대로 한조부흥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Ⅲ 조조라는 인물의 변화상
초창기 조조는 그러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물론 그 누구도 조조가 아니니까 조조의 행적만 살펴보고, 그의 행동을 파악하여 두가지로 분류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처음에는 한조 부흥을 위해 노력했지만 불가능함을 알고서 신왕조 개창으로 돌아섰다는 것이 그 첫 번째고 두 번째가 진류에서 세규합을 하면서부터 신왕조 개창에만 열중했다라는 설이 그것이다. 물론 나그네는 첫 번째에 가능성을 두고 있으며, 조조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진류에서의 세규합도 새왕조 개창이 아니라 단지 난세에 할거하는 타 군벌들을 견제하여 한왕조 몰락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순간 신왕조 개창으로 변하고 만다. 무엇일까? 나그네는 그것을 '동승의 모반'으로 인함이라고 보고 있다. 물론 그 전부터 조조의 그러한 모습은 보여지고 있지만 '동승의 모반'을 시발로 하여 조조는 그 전과 천양지차로 바뀌어지게 된다. 이는 후한의 명사들이라는 이들이 '조조'를 '한조의 역적'으로 몰아가면서 그를 뒤엎을 계략을 꾸미자 조조는 '한조'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물론 '허도의 사냥'에서 그 기미가 보였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헌제'를 모시고 있는 이로서의 주변인들에 대한 단순한 '세과시'라고 넘어가며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동승의 모반'이후 조조는 한조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는 '한조부흥'이었다가 모반 이후 '신왕조 개창'으로 180°변한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조조에게 남아있던 일말의 유씨 한조를 향한 마음이 아예 없어져 버리게 되는 것에는 기여 한 것이다. 조조는 그렇게 변해갔다.
그런데 왜? 순욱은 조조가 변해가는 것을 왜 눈치채지 못하였는가하는 점이다. 순욱은 관도대전이 끝나고 나서 조조가 구석을 받을때까지의 12년간의 기록이 전무하다는 문제가 있다. 삼국지도 마찬가지이고 삼국지 연의도 마찬가지이다. 순욱은 관도대전대까지 그 활약상이 아주 두드러진다. 허창천도와 이호경식, 구호탄랑에서부터 시작하여 관도대전의 4가지 승리론까지 순욱의 활약상은 삼국지 전반에서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관도대전이 끝난 이후부터 다시 등장하는 구석에 이르기까지 순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Ⅳ 12년간 사라진 순욱의 행적
순욱이라는 인물의 조조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았을 때 그 12년간 칩거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그 12년이라는 세월의 초점이 유비의 떠돌이 생활과 적벽대전에 맞춰져 있었던 탓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어떻게 조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때도 순욱은 쏘옥 빠져있다. 더군다나 나그네가 조조의 변화시기를 잡은 '동승 모반사건'도 벌어진 시간이 214년으로서 순욱 죽기 2년 전이다. 그렇다면 순욱은 그 이전에 조조의 변화를 모색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즉, 관도대전에서 조조가 의기 양양해지면서 하북의 절대강자로 군림하면서 '천하쟁패'의 꿈을 가졌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관도대전 직후 12년간 사라진 순욱의 행적을 쫓아갈 수 없다. 순욱은 '왕도'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그 왕도는 천하를 강력한 힘으로 정리한 후에 발현되어져야 할 왕도였다. 순욱은 '패도 후 왕도'를 내세웠던 것이다. 난세에 할거해 있는 군벌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난세를 정리할 '패도'가 필요하였다. 순욱은 임시방편으로 그 '패도'를 가꾸었던 셈이다. 그러나 관도를 정리하고 하북의 강자가 되어 '왕도'로 변화시킬 시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끝까지 '패도'를 추구하였다. 순욱은 그러한 조조를 바라보고서는 '후회'와 '한탄'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욱은 조조에게 '왕도'를 내세울 정치 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순욱이 심약하기때문일까라고 생각해볼만 하지만 이는 아니다. 관도대전까지 순욱의 계략이라는 것은 '심약'한 사람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고개가 절로 흔들거린다. 더군다나 이호경식, 구호탄랑 계책은 심약한 사람이 낼 계책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왜 순욱은 침묵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관도대전 이후 순욱의 이상은 조조에게서는 그리 큰 매혹거리가 되지 못한다. 물론 위에서 설명하였다시피 '새왕조 개창'이라는 과격한 생각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직 군벌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왕도'를 추구하기에는 자신의 지지세력기반이 그리 강력하지 못하고 있다. 중원이 얼마마한 땅인데 단지 하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것인가? 조조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순욱은 그러한 조조를 관도대전 이후에 알아차린 것이다. 아니, 알아차렸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 조조의 변화의 조짐을 눈치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고는 별로 크게 관여하지 않게된다. 하지만 그리해도 조조에게는 크게 부담이 가지 않는다. 이미 그때쯤이면 동소, 왕찬, 진림, 가후, 화흠 등의 '패도'정치를 지향하는 모사들이 주위에 들어차기 때문이다. 이때 순욱은 그 설 자리를 잃고 단지 조조의 상담역으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이는 종요가 '태조는 모든 일을 하기에 앞서 순군과 상의하였다'라고 말을 한 것에서 추측할 수 있다. 상의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는 '조조'의 멋대로 아니면 '패도주의 모사'들과 함께 행동하였을 것이다. 이때쯤되면 순욱은 그 발언권이 약화된 단순 '고문'에 지나지 않게 된다. 단순 '고문'이 되어버린 순욱이기에 그의 12년간 기록은 사라지기에 이른 것이다.
Ⅴ 그냥 죽은 것은 자기 행동에 대한 자아비판?
순욱은 죽기 2년전에 벌어진 '동승의 난'때도 그 어떤 발언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자기가 모신 '조조'에 대한 반란이니까 죽어도 된다였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순욱은 유씨 한조를 포기한 것일까하면 그것도 아니다. 모시는 것은 '조조'인데 자기의 이상은 유씨 한조였다. '명목상 고문'으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를 이용하여 유씨 한조를 부흥시킬 목적이었을까? 순욱이 그렇게 바보는 아니다. 다만 자신의 힘이 없어졌고 지금 '조조'를 모시고 있고 그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자기 모순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난 대한승상 조조를 모시고 있는 것이다'라고 스스로 타당성을 부여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스스로 얼마나 한심해했을까.
그러나 마지막 구석을 받을 때 순욱은 결연히 '명목상 고문'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자기 목소리를 내기에 이른다. 그 말은 곧 '그러지 마라'라는 말이다. 이미 힘을 잃어 어떠한 영향력도 없는 순욱이다. 그의 말이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게다가 구석을 받게한 이들이 그러한 순욱의 말을 듣고 '잘못했습니다'하고 넘어갈 멍청이들이 아니지 않은가. 순욱의 말은 그대로 버림받고 순욱은 그제서야 한탄과 후회의 눈물을 쏟는다. 그리고 우울증에 빠져 시름시름 앓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순욱의 마지막이 이래서야 어디 '한조의 충신'이라는 명분이 서겠는가. 나관중은 과감히 순욱의 마지막을 바꾸어 놓는다. 조조의 사악한 빈 밥공기가 등장하고 순욱은 자결을 한다. 후한 우국충신의 마지막 멋진 말로이다.
하지만 우울증에 빠진 병사이건 밥공기 사건으로 인한 자결이건 순욱의 말로는 한심하다. 단지 '아니되오' 한마디 하고 자기 할 바를 다했다고 여긴 것일까? 명목상 고문이 되어버렸을 때 순욱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차라리 동승등과 연계하여 '조조'를 엎어버리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 마지막 충절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상과 맞지 않아 조조를 배신하기에 천하의 '배신자'라는 오명을 얻게 될것을 두려워 한 것일까. 아니면 자포자기인가? 모든 것을 포기한 순욱의 죽음. 순가팔룡 왕좌지재라는 이름을 들은 이가 택한 죽음이라기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죽음이다. 죽음에 이르러 순욱은 자기에게 후회를 했을까? 한조에 대해 북받치는 울분을 삼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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