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다 주요인물
아키야마 노부토모
아버지를 몰아내고 자립 직후의 신겐이 뒤를 걱정할 필요없이 동 시나노 북 시나노 방면으로 병을 출진 시킬수 있던 것은 후방을 튼튼히 지키는 노부토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겐의 6녀와 오다가의 장남 오다 노부타다가 정략 결혼할 때, 신겐의 사자로써 노부나가에게 간 노부토모는 오다 측 장수들을 위협하여 신겐의 기상을 떨쳐 주었다.
또한 미카타가하라 전에서는 야마가타 마사카게 부대와 함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추격,
이에야스로 하여금 똥오줌을 싸며 "노부토모는 다케다의 사나운 소와 같은 무서운 남자"라는 말을 남기게 하였다.
나가시노 전에서 대패한 후 노부토모는 신겐 시대에 확보된 다케다의 최전선 기지인 미노의 이와무라 성을 사수하려 했으나, 오다군에게 체포되어 죽었다.
하라 도라타네
타게다 가 내에서 귀신 미노라 불리던 도라타네는 노부토라 신겐 2대를 섬기며 항상 전투에 따라다녀 전투 38회 온몸에 받은 상처가 53군데나 되는 강한 사내였다.
도라타네가 다케다의 노부토라에게 귀속한 때는 신겐이 태어나기 전 노부토라가 센코쿠 다이묘로서 실력을 갖추어 가던 때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약관 18세. 신겐이 자립했을 무렵 이미 노신으로서 가내에서 부동의 지위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는 공성전을 특기로 했는데 성을 빼앗자마자 큰 보수가 필요없이 곧바로 쓸 수 있는 공략방법을 즐겨 사용하였다.
가와나카지마 전에는 늙어서 참전하지 못하고 1564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나다 유키타가
신슈의 명문 사나다씨는 유키타카에 의해 다시 일어선다.
신겐 초기인 1546년 일문을 거느리고 신겐에게 귀속했다. 본래 동 시나노의 명문인 운노 씨 출신이지만 무라카미 요시키요의 공격을 받아 일족이 붕괴되자 유키타카는 일문을 데리고 신겐에게 의탁한 것이다. 신겐은 유키타카를 동 시나노 공략 선봉에 내세웠다. 이 군공으로 신슈의 지이사가타 군을 하사 받고 사나다를 본거지로 하는 동시에 이름도 바꾸게 된다.
신겐조차 넘지 못한 거대한 산인 무라카미 요시키요를 유키타카는 모략으로 두성을 함락시켜 무라카미 요시키요를 압박하니 지모는 신겐보다 뛰어나다 볼 수 있다.
신겐 사후 그 뒤를 따르 듯 2년후 병사한다.
다케다 노부시게
신겐에게 매우 신뢰받는 무장이다. 신겐의 친 동생이기도 한 노부시게는 형 못지않게 문무 양면에 뛰어났다. 노부토라는 노부시게를 편애하고 신겐을 멀리하여 가업을 노부시게에게 물려주려 하였으나 형의 고충을 해아려 형의 비상수단을 암묵리에 양해하여 신겐을 따랐다.
형제가 아닌 군신으로서 신겐을 진실로 존경하고 충성을 다함으로써 가신들에게서 높은 신뢰를 샀다.
신겐의 보좌역으로서 좋은 군략과 식견을 제시하였다.
가와나카지마 전에서 신겐의 본진이 겐신의 맹 공격으로 진형이 흐트러져 대혼란에 빠지자 노부시게는 우에스기 군대를 막기 위해 스스로 신겐이라 외치며 칼을 들고 필사적으로 싸워 죽음으로서 신겐은 호랑이 입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다케다 가쓰요리
신겐의 4남 신겐은 스와 요리시게를 모략으로 죽이고 그 딸을 겁탈하여 측실로 삼았는데 여기서 태어난 사람이 가쓰요리다. 가이 사람들은 가쓰요리가 태어난 것을 깔보며 달가워 하지 않았다.
신겐이 스와 사람들을 회유하는 수단으로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것 처럼 가신들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겐은 오히려 가쓰요리를 어느자식보다 사랑하였으며 풍림화산과 더불어 스와대명신이란 깃발을 만들어 자신의 깃발로 삼아 가쓰요리의 가슴 깊은 고충을 덜어 주었다.
스루가 침공을 반대하는 장자 요시노부를 죽이고 정식 후계자로 삼았다.
그러나 쇼군 요시아기에게 임관과 '자'를 받으려던 시도가 노부나가에 의해 좌절되자 평생 시로 가쓰요리로 지내야 했던 이 후계자는 가신들의 눈에겐 어디까지나 아들 노부가스의 후견인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있는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전장터에서 무공을 새워 훌륭한 무장으로 성장 하였고, 가신들에게 신망을 사고자 노력하였다.
실제로 야습전과 기마용병술에선 신겐조차 가쓰요리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신겐이 3년 동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자 가쓰요리는 신겐의 죽음을 감추려면 오히려 신겐이 하였던 대로 공격을 해야 한다고 판단, 중신들에게 출격을 명하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것모습 일뿐 그의 속사정은 아직까지 가신들이 신겐을 생각하고 사모하자 아버지를 능가하고자 하는 욕망때문이었다.
그러나 태생적인 한계와 무리한 출정이 내분을 일으키고 이는 다케다 군을 차츰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나가시노 전에서 대파하고 다케다가에선 이제 유일하게 남았던 중신 니시나 모리노부마저 전사하자 16세이던 아들과 함께 영지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오다와 내통한 오야마다 노부시게에게 길이 가로막혀 진퇴양난에 빠진 채 1582년 3월에 부인, 아들과 함께 할복하였다.
아키야마 노부토모
아버지를 몰아내고 자립 직후의 신겐이 뒤를 걱정할 필요없이 동 시나노 북 시나노 방면으로 병을 출진 시킬수 있던 것은 후방을 튼튼히 지키는 노부토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겐의 6녀와 오다가의 장남 오다 노부타다가 정략 결혼할 때, 신겐의 사자로써 노부나가에게 간 노부토모는 오다 측 장수들을 위협하여 신겐의 기상을 떨쳐 주었다.
또한 미카타가하라 전에서는 야마가타 마사카게 부대와 함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추격,
이에야스로 하여금 똥오줌을 싸며 "노부토모는 다케다의 사나운 소와 같은 무서운 남자"라는 말을 남기게 하였다.
나가시노 전에서 대패한 후 노부토모는 신겐 시대에 확보된 다케다의 최전선 기지인 미노의 이와무라 성을 사수하려 했으나, 오다군에게 체포되어 죽었다.
하라 도라타네
타게다 가 내에서 귀신 미노라 불리던 도라타네는 노부토라 신겐 2대를 섬기며 항상 전투에 따라다녀 전투 38회 온몸에 받은 상처가 53군데나 되는 강한 사내였다.
도라타네가 다케다의 노부토라에게 귀속한 때는 신겐이 태어나기 전 노부토라가 센코쿠 다이묘로서 실력을 갖추어 가던 때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약관 18세. 신겐이 자립했을 무렵 이미 노신으로서 가내에서 부동의 지위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는 공성전을 특기로 했는데 성을 빼앗자마자 큰 보수가 필요없이 곧바로 쓸 수 있는 공략방법을 즐겨 사용하였다.
가와나카지마 전에는 늙어서 참전하지 못하고 1564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나다 유키타가
신슈의 명문 사나다씨는 유키타카에 의해 다시 일어선다.
신겐 초기인 1546년 일문을 거느리고 신겐에게 귀속했다. 본래 동 시나노의 명문인 운노 씨 출신이지만 무라카미 요시키요의 공격을 받아 일족이 붕괴되자 유키타카는 일문을 데리고 신겐에게 의탁한 것이다. 신겐은 유키타카를 동 시나노 공략 선봉에 내세웠다. 이 군공으로 신슈의 지이사가타 군을 하사 받고 사나다를 본거지로 하는 동시에 이름도 바꾸게 된다.
신겐조차 넘지 못한 거대한 산인 무라카미 요시키요를 유키타카는 모략으로 두성을 함락시켜 무라카미 요시키요를 압박하니 지모는 신겐보다 뛰어나다 볼 수 있다.
신겐 사후 그 뒤를 따르 듯 2년후 병사한다.
다케다 노부시게
신겐에게 매우 신뢰받는 무장이다. 신겐의 친 동생이기도 한 노부시게는 형 못지않게 문무 양면에 뛰어났다. 노부토라는 노부시게를 편애하고 신겐을 멀리하여 가업을 노부시게에게 물려주려 하였으나 형의 고충을 해아려 형의 비상수단을 암묵리에 양해하여 신겐을 따랐다.
형제가 아닌 군신으로서 신겐을 진실로 존경하고 충성을 다함으로써 가신들에게서 높은 신뢰를 샀다.
신겐의 보좌역으로서 좋은 군략과 식견을 제시하였다.
가와나카지마 전에서 신겐의 본진이 겐신의 맹 공격으로 진형이 흐트러져 대혼란에 빠지자 노부시게는 우에스기 군대를 막기 위해 스스로 신겐이라 외치며 칼을 들고 필사적으로 싸워 죽음으로서 신겐은 호랑이 입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다케다 가쓰요리
신겐의 4남 신겐은 스와 요리시게를 모략으로 죽이고 그 딸을 겁탈하여 측실로 삼았는데 여기서 태어난 사람이 가쓰요리다. 가이 사람들은 가쓰요리가 태어난 것을 깔보며 달가워 하지 않았다.
신겐이 스와 사람들을 회유하는 수단으로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것 처럼 가신들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겐은 오히려 가쓰요리를 어느자식보다 사랑하였으며 풍림화산과 더불어 스와대명신이란 깃발을 만들어 자신의 깃발로 삼아 가쓰요리의 가슴 깊은 고충을 덜어 주었다.
스루가 침공을 반대하는 장자 요시노부를 죽이고 정식 후계자로 삼았다.
그러나 쇼군 요시아기에게 임관과 '자'를 받으려던 시도가 노부나가에 의해 좌절되자 평생 시로 가쓰요리로 지내야 했던 이 후계자는 가신들의 눈에겐 어디까지나 아들 노부가스의 후견인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있는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전장터에서 무공을 새워 훌륭한 무장으로 성장 하였고, 가신들에게 신망을 사고자 노력하였다.
실제로 야습전과 기마용병술에선 신겐조차 가쓰요리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신겐이 3년 동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자 가쓰요리는 신겐의 죽음을 감추려면 오히려 신겐이 하였던 대로 공격을 해야 한다고 판단, 중신들에게 출격을 명하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것모습 일뿐 그의 속사정은 아직까지 가신들이 신겐을 생각하고 사모하자 아버지를 능가하고자 하는 욕망때문이었다.
그러나 태생적인 한계와 무리한 출정이 내분을 일으키고 이는 다케다 군을 차츰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나가시노 전에서 대파하고 다케다가에선 이제 유일하게 남았던 중신 니시나 모리노부마저 전사하자 16세이던 아들과 함께 영지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오다와 내통한 오야마다 노부시게에게 길이 가로막혀 진퇴양난에 빠진 채 1582년 3월에 부인, 아들과 함께 할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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