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어떻게 무적의 스웨덴군을 폴타바 전투에서 무찌를 수 있었을까?
작성자the Prince of New South Wales작성시간09.05.10조회수1,884 목록 댓글 301709년에 일어난 폴타바 전투는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결정적인 전투들 중의 하나로 자주 뽑힌다. 이 전투를 분수령으로 당대 유럽의 강대국 중 하나였던 스웨덴은 몰락하고 러시아가 본격적인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대북방 전쟁 전의 러시아는 이른바 가능성있는 국가로 생각되긴 했지만 유럽국가들의 기준에서 봤을때는 그닥 강대국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폴타바 전투는 여러가지 의미로 중요한 것이다.
폴타바 전투
그렇다면 러시아는 어떻게 강대국으로서, 더욱이 당대 사대명장 중 하나인 카를12세가 이끄는 스웨덴군을 무찌를 수 있었을까? 흔히들 스웨덴이 너무 적을 많이 많들었느니 러시아의 전략이 좋았느니 하지만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러시아군의 중앙과 양익을 지휘했던 표트르1세, 멘시코프, 셰레메테프의 합동작전이었다고 생각한다. 세계사를 바꿔놓은 결정적인 전투인 폴타바를 승리로 이끌었던 이들 세명의 환상적인 합동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 한번 다뤄볼까 한다.
전쟁이 시작된 뒤 표트르는 군대를 모아 리보니아를 침략하였지만 재빠른 상륙작전으로 덴마크를 먼저 무릎꿀린 카를12세는 러시아군에게로 향했다. 카를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표트르는 급히 지휘권을 폰 크로이에게 맡기고 떠나버렸다. 스웨덴군은 숫적으로 열세였지만 양측간에 포격전이 벌어지는 도중 폭풍이 불어왔고 날이 어두워지자 스웨덴 장군들은 카를에게 공격을 폭풍이 다 지나간 다음으로 연기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카를은 단호했다.
"바람이 우리 등 뒤에서 적의 얼굴을 향해 불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나르바 전투
카를의 명령으로 스웨덴군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표트르가 떠나고 장교들의 태반은 말도 안통하는 외국인인 상태에서 사기가 떨어진 러시아군은 궤멸되어 패주해버렸다. 이 전투로 인해 표트르는 적전도주를 했다는 이유로 전유럽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카를은 러시아에 대한 경멸감을 가지게 되어 더이상 러시아와 상대하지 않은채 폴란드로 전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이것은 카를 일생 최대의 실수가 되었다.
스웨덴의 왕이자 당대 사대명장 중 하나인 카를12세
카를이 폴란드에 집중하는 동안 러시아는 핀란드와 리보니아를 공격하여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고 특히 나르바에서 뛰어난 지휘력으로 휘하부대를 안전하게 철수시킨 바 있는 셰레메테프는 라피노, 에레스트페르, 후멜스호프에서 잇달아 스웨덴군을 상대로 승리하여 스웨덴의 리보니아 통치는 불안정해졌다. 리보니아의 스웨덴 야전군이 약화되고 이제 남은 병력은 각 도시의 수비대 밖에 남지 않게되자 셰레메테프는 몇번이나 자신의 공격을 물리친 적이 있는 마리엔부르크를 다시 공성하였다.
표트르의 가장 뛰어난 무장 셰레메테프
당시 마리엔부르크에는 에른스트 글룩이라는 사제가 살고있었는데 그는 마르타 스카프론스카야라는 소녀를 데리고 살고있었다. 마르타는 링겐에서 사무일 스카프론스키라는 리보니아 농민의 딸로 태어났는데 세살때 어머니를 잃었기 때문에 이를 불쌍하게 여긴 그 지방의 사제가 데려와 키우게 되었다. 하지만 그 사제 역시 가난하고 가족이 많았기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마침 그 지방을 지나가던 글룩이 자기가 대신 마르타를 떠맡기로 한 것이다. 글룩은 마르타로 하여금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게 하고 집안일도 시키며 지냈는데 교육은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마르타는 읽거나 쓰지를 못했다.
마르타가 열일곱이 되었을 때 그녀가 다니던 교회에 한 스웨덴 기병이 방문하게 되었다. 마르타를 보고 반해버린 그는 마르타에게 청혼했고 그녀는 청혼을 받아들였다. 글룩은 기꺼이 그들의 결혼을 허락해줬고 그 병사가 속한 부대의 장교는 결혼선물로 상등병으로의 승진을 약속했다.
셰레메테프가 마리엔부르크를 공격한 때는 바로 이때였다. 방어전을 위해 곧 불려갈 것을 예상한 그 병사는 글룩에게 결혼식을 서둘러줄 것을 약속했고 사흘 뒤 결혼식이 치뤄지게 된다. 8일 간의 짧은 결혼생활 뒤 그 병사는 도시의 방어를 위해 불려갔고 마르타는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
셰레메테프는 만약 항복하지 않는다면 도시를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 협박했고 그를 상대로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수비대장은 요새를 폭파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는 자신의 계획은 비밀로 했지만 글룩에게만은 말한 뒤 도시에서 미리 도망칠 것을 부탁했다. 글룩은 가족들과 마르타, 그리고 아이들의 교사인 신학생 고트프리트 부름과 함께 도시에서 나가 러시아군의 진지로 찾아가 셰레메테프를 만났다. 셰레메테프는 글룩을 친절하게 맞았고 글룩은 번역가로서 러시아에서 활동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셰레메테프의 눈은 누군가를 쭉 바라보고 있었다. 글룩의 대가족들 중에 섞여있는 앳된 얼굴의 아가씨, 바로 마르타였다. 계속 지켜보던 셰레메테프는 그녀가 누구인지 물어봤고 글룩은 그녀가 자신의 가족과 함께 지내며 며칠전 막 결혼했다고 알려줬지만 셰레메테프는 말했다.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나와 함께 지낼 것이다."
이렇게 하여 마르타는 여섯달 동안 셰레메테프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탐욕스럽고 뇌물을 좋아했지만 유능했던 표트르의 총신 멘시코프
그즈음 표트르의 총신으로 막 떠오르던 멘시코프는 마르타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가 어떻게 마르타를 알게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확실한 것은 역시 알려지지 않은 경위로 인해 마르타는 멘시코프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멘시코프가 셰레메테프에게서 마르타를 샀다는 말도 있고 강제로 빼았았다는 말도 있지만 이것은 별로 신빙성이 없고 아마 다음과 같은 상황이 아니었을까?(가정)
멘시코프 "저 아가씨는 누굽니까?"
셰레메테프 "얼마전 리보니아 전역에서 발견한 아가씨인데 가족도 없고 불쌍해서 제가 보호해주기로 하고 데려왔지요."
멘 "저런... 그런데 원수께서는 계속 전쟁 때문에 자주 집을 비우시지 않습니까?"
셰 "그렇...지요."
멘 "그렇다면 별로 저 아가씨를 돌볼 시간이나 여유도 없을테니 제게 맡겨보는건 어떻습니까?"
셰 "그 그건...;;;"
멘 "원수께서는 전쟁에 집중하십시오. 저는 항상 수도에 머무르니 저 아가씨를 더 잘 보살필 수 있을거 아닙니까. 이게 다 원수께서 전쟁에만 집중하도록 하고 부담을 덜어드려 원수의 마음을 편하게 하여 나라와 폐하를 위해 더 많이 봉사하도록 하려는 저의 뜻깊은 배려(?)입니다.(능글능글)"
셰 ";;;"
경위야 어떻든 마르타는 멘시코프의 집으로 옮겨가 몇달 동안 같이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표트르가 멘시코프의 집에 방문하게 되었고 마르타를 보게 되었다. 표트르는 여자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마르타에게 계속 마음이 끌렸다. 점점 표트르가 멘시코프의 집을 방문하는 횟수가 길어지기 시작하자 멘시코프도 슬슬 눈치를 까기 시작했다. 차르가 자기 여자에게 눈독들인다는 사실에 기분나쁠 수도 있지만 원래 멘시코프가 총신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승질나면 아무나 두들겨패는 표트르의 구타를 아무말 없이 그대로 받아줬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르타를 이용하여 더욱 표트르의 환심을 살 계획을 세웠다.
표트르1세. 이 그림은 영국에 갔을때 그린 것인데 가만있질 못하는 성격 때문에 화가 곳프리 넬러는 이 그림을 그리는데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표트르는 어릴적 어머니와 가족들의 뜻에 따라 예프도키아 로푸히나와 결혼했지만 별로 가정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결국은 아이까지 낳은 로푸히나를 폐위시킨 뒤 수녀원에 보내버렸다. 그뒤 공식적으로 계속 홀아비(?)로 지내고 있었지만 사실 그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외국문물에 관심이 많던 표트르는 자주 외국인거주지를 방문했는데 그와중 열일곱의 영국소녀인 애나 몬스를 만나게 되었다. 이둘은 애인이 되었고 잘만 했다면 애나는 환후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표트르가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다스리는 성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표트르에게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어릴때 배를 본뒤 조선술에 광적인 마니아가 되어 네덜란드와 영국에 유학(?)까지 가서 일반 목수의 신분으로 직접 배를 만든 적도 있었고 그뒤 할일이 없을때면 틈틈이 배만드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겼다. 돌아다니는 것을 꽤 좋아하여 항상 전쟁에 나가거나 군사훈련에 참가하여 열정을 불태웠다. 이렇듯 가만 있질 못하고 항상 돌아다니니 항상 표트르만을 기다리는 애나는 점점 외로워졌고 바로 그런때 그런 그녀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준 사람이 나타났다. 프로이센 대사인 카이절링이었다.
카이절링과 애나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는 잘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카이절링은 애나에게 청혼을 했고 애나가 그것을 수락하였다는 것이다. 카이절링은 자기 자신을 차르의 라이벌이라고 하며 이제 차르에게 이겼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이것이 직접적으로 차르에게 알려졌다가는 어떤 경을 치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는 총신인 멘시코프에게 접근하여 자신과 애나와의 관계를 알려준 뒤 표트르에게 잘 좀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은 바로 멘시코프가 기다리던 기회였다.
멘시코프는 애나를 배려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의 생각은 오직 마르타를 애나의 자리에 대신 앉혀 자신의 영향력을 더욱 높일 생각 밖에 없었다. 그는 카이절링에게 자신이 그들의 일을 표트르에게 말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일단 애나가 진짜 카이절링과의 결혼을 원한다는 "확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둘은 즉시 멘시코프의 계획에 놀아났다. 애나는 자신이 카이절링을 사랑하며 이 세상 누구보다도 카이절링과 결혼하기를 원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써서 멘시코프에게 준 것이다.
서약서를 손에 넣은 멘시코프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표트르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적절한 기회가 왔을때 말했다.
"폐하께서는 애인 애나 몬스가 누구보다도 폐하를 사랑한다고 믿으십니까? 만약 아니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만, 알렉사샤(멘시코프의 애칭). 나는 그녀가 나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그녀가 직접 나한테 말하기 전까지는 안그렇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네."
그말을 들은 멘시코프는 주머니에서 애나의 서약서를 꺼내 표트르에게 주었다. 그것을 읽은 표트르는 즉시 애나에게 갔고 처음에는 화내는 기색도 없이 서약서의 내용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녀가 그렇다고 하자 표트르는 그녀의 배신을 비난하며 선물로 주었던 두디노 영지와 다이아몬드 액자에 담긴 자신의 초상화를 빼았았다. 애나가 머물던 궁과 보석들은 그대로 두었지만 그뒤 표트르는 애나에게 완전히 관심을 끊어버렸고 멘시코프의 책략으로 애나는 졸지에 차르의 신뢰를 배신한 여자로 불명예를 당하고 말았다.
멘시코프의 계획대로 애나의 일로 인해 상처를 입은 표트르의 빈자리를 채운 것이 바로 마르타였다. 루터교도였던 그녀는 정교로 개종하고 예카제리나라는 새 이름을 얻었는데 여로모로 그녀는 애나보다 더욱 완벽한 짝이었다.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표트르의 성격이 애나에게 문제가 되었지만 예카제리나는 항상 표트르를 따라다니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표트르가 참여하는 전쟁이나 순행은 여자에게는 고단한 일이었지만 건강했던 예카제리나는 항상 표트르의 옆에 함께했고 그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야생마같은 표트르를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여자였다.
표트르는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개혁과 숙청을 했는데 그와중 자비와 인내, 동정심 등을 잃어버릴 때가 많았다. 그것을 일깨워주는 사람은 예카제리나였고 그녀 덕분에 엄벌과 처형에 처할 뻔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졌다. 그녀의 자비로운 마음과 어진 성품은 모두가 그녀를 좋아하도록 만들었고 특히 군대에게 있어 무자비한 차르와는 달리 자신들을 배려하고 아껴주는 예카제리나는 마치 성모와도 같은 존재였다. 페르시아 원정 때 표트르는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군대에게 계속 행군하도록 한뒤 막사에서 잠을 잤는데 깨고 난 뒤 군대가 행군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노한 표트르는 누가 감히 차르인 자신의 명령을 무시했냐고 성을 냈는데 그때 예카제리나가 말했다.
"병사들이 더위와 갈증으로 죽을 것 같아서 제가 했습니다."
분노한 표트르 앞에서 이렇게 두려움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예카제리나만이 유일했다. 가끔 표트르는 심한 두통을 앓았는데 두통이 한번 나면 분노가 일어나고 분노한 표트르는 통제불능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그의 옆에 있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오직 예카제리나만이 두려움없이 나서서 표트르를 자신에게 이끌어 그의 머리를 자신의 품에 눕게 한다음 이마를 쓰다듬었고 마음이 평온해진 표트르는 예카제리나의 품에서 잠들었다. 표트르가 몇시간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고 있는 예카제리나의 무릎에서 일어나면 분노의 발작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유머스럽고 쾌활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예카제리나의 부탁으로 표트르는 리보니아 총독에게 농민들 중에서 스카프론스키가를 찾도록 했고 곧 예카제리나의 두 형제와 두 자매들이 성 페테르부르크로 보내졌다. 마부같은 낮은 신분으로 살던 이들은 예카제리나에 의해 부유한 생활을 하며 교육을 받았고 표트르가 죽자 곧 백작으로 봉해졌다. 도움을 받은 것은 가죽들 뿐이 아니었다. 자신을 키워준 글룩이 죽자 그의 아내에게는 연금이 지급되었고 아이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줘 그중 두명은 군대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마리엔부르크를 떠난 지 십년 뒤 고트프리트 부름을 만나 그를 알아본 예카제리나는 그에게도 한달에 16루블의 연금을 주기도 했다.
폴타바 전투에서 표트르, 셰레메테프, 멘시코프는 중앙과 양익을 지휘했다. 위에 언급한 이야기를 보면 전투에서 이들의 완벽한 합동이 어째서 가능했는지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그렇다. 그들은 바로 한여자를 공유했던 구멍동서들이었던 것이다! 같은 여자를 공유했었으니 얼마나 구멍동서로서의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강했겠는가? 마르타 스카프론스카야, 아니 후일 여제 예카제리나1세가 되는 한 어린 소녀를 모두 같이 거쳤다는 어찌보면 아주 단순한 관계지만 그것으로 인해 이들은 무적의 스웨덴을 꺾고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폴타바에서 최강의 명장이 지휘하는 강대국 스웨덴을 꺾은 것은 바로 한명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표트르의 뒤를 이어 여제로 즉위하는 예카제리나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