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덴자우(judensau)- 독일어로 유대의 암퇘지- 는 유대교에서 불결한 동물로 여기는 커다란 암퇘지와 함께 있는 경멸스럽고 비인간스러운 유대인의 이미지로서 13세기에 독일과 몇몇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등장했다. 유덴자우는 이후 600년동안 계속해서 이어져왔으며 나치는 이를 다시 부흥시켰다.

1470년경에 뮌헨에서 발행된 이 목판화는 유덴자우를 보여준다. 유대인들이 돼지의 젖을 빨고 대변을 먹는 모습을 묘사했다.

콜마르의 성 마틴 대성당에 새겨진 유덴자우

비텐베르그 교구 교회에 조각된 유덴자우

1475년에서 1507년 사이에 건설되었고 유대인 게토로 가는 출입구 근처에 서있다가 1801년에 철거된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교탑에 벽화로 그려진 유덴자우는 특히 악명높은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폼 슈헴 함프호라스
마르틴 루터는 1543년에 자신이 저술한 폼 슈헴 함프호라스(vom schem hamphoras) - 불가지한 명칭들과 예수의 세대로부터 - 에서 비텐베르그의 유덴자우 조각에 대해 언급하였다.
여기 비텐베르그의 우리 교구 교회에는 암퇘지의 배밑에 누워서 젖을 빠는 새끼돼지와 유대인들, 암퇘지 뒤에 서서 뒷발을 들어올린채 고개를 숙이고 돼지 밑에 깔린 탈무드를 들여다보면서 가장 어렵고 예외적인 진리를 읽어내려는 랍비의 모습이 새겨진 유덴자우가 존재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유대인들은 그 장소에서 자신들의 구세주를 찾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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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임용관 작성시간 09.10.01 와하비즘이 시아파의 교리보다 더 강경한건가요? 고대로마에 기독교 강경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북아프리카의 무어인들이었죠... 로마에 박해를 받다가 끝내는 이슬람의 파도에 덮여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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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hyhn217 작성시간 09.10.01 현대 이란에서 적용되고 있는 쉬아파는 쉬아파 그 자체라기 보다는 호메이니에 의해 해석된 쉬아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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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임용관 작성시간 09.10.01 그렇군요. 호메이니는 시아파에게 아주 어려운 과제를 남겨준 인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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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알렉산드르2세 작성시간 09.10.11 종교적인문제가 아니라면 세계가 이모양이꼴이되지도 않았을겁니다. 애당초 로마만봐도 기독교의 분열로 인해 벌어진 참혹한 문제는 결국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지요. 비잔티움제국의멸망요인중하나는꽉만한 종교였지요 물론 이게 양날의 칼이라 국민들을 통합하는데는 종교만한 수단이 없었지만. 이단보단 이교도가 낫다는 그 정신나간 원리로 오토 2세를 이탈리아에서 몰아내는데 사라센과 협력하는 모습은 보기좋을리가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