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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기요탱박사는 단두대로 처형되지 않았다.

작성자Daum Bark|작성시간10.11.19|조회수1,725 목록 댓글 2

죄인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같은 종류의 위법행위는 같은 종류의 형벌로 처벌해야 한다.

-Joseph Guillotin-

 

프랑스혁명당시 사형집행에 사용된 단두대는 누가 발명한 것일까?

'기요틴'이라 불린 이 단두대는 많은 사람들이 발명자 기요탱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남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파리대학 해부학 교수였던 기요탱은 사형수가 고통없이 죽을 수 있도록 이 단두대 사용을 추천했을 뿐이다. 진짜 발명자는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는 거의 매일같이 사형이 집행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刑吏가 큰 낫으로 사형수의 목을 베었는데, 간혹 실수라도 하면 처참한 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이를 본 기요탱은 국민회의에 죄수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기계의 사용을 제안했다. 그것이 바로 '기요틴'이다.

 

사형수라 할지라도 고통없이 죽을 권리는 있다고 주장한 기요탱 박사는 1789년 11월 외과의사 루이가 고안한 기계를 사형수들의 목을 자르는데 이용하자며 국민의회에 처음 선보였다. 1791년 6월, 국민회의는 기요탱 박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초생달 모양의 칼날을 마름모꼴로 바꾸면서 악명높은 단두대의 원형이 완성되었다. 이 단두대는 살아있는 양과 시체들로 실험을 거치고 나서, 1792년 4월 당시 최대의 절도범이었던 페르티에에게 처음 시도되었다. 처음에는 이 단두대의 이름을 기계를 고안한 앙투안 루이의 이름을 빗대어 '루이젯' '루이종'등으로 부르다가 나중에 '기요틴'으로 부르게 되었다. 당시 기요탱과 갈등관계에 있던 국회 출입기자들이 그를 조롱하여 이렇게 붙인 것이다. 허나 당시 대중들에게는 이 단두대는 '국가의 면도칼' 이란 이름으로 더 잘 불렸다.

 

기요틴은 도끼를 두 기둥사이에 달아놓고, 그 아래에 죄수를 눕힌 뒤, 사형집행관이 밧줄을 풀면 도끼가 떨어지면서 목을 자르게 되어 있는 중력을 이용한 처형장치이다. 이것으로 루이 16세와 왕비 앙투와네트, 로베스피에르등등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었다. 심지어는 기요탱 그 자신도 이 장치로 처형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기요탱은 단두대에서 죽은 것이 아니고, 1814년 어깨에 난 종기때문에 사망했다. 기요탱은 사망하기 전까지도 자신의 이름이 단두대의 별명으로 불리는 것을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의 가족은 법정에서 단두대가 자신들의 姓氏로 호칭되는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소송을 했지만 결국 원고측이 패소했으며, 이를 계기로 기요탱의 자손들은 성을 바꾸게 된다. 

 

프랑스에서는 1981년에 와서야 이 기요틴을 이용한 처형을 폐지한다.

 

참고문헌

김상운, 세계를 뒤흔든 광기의 권력자들 (2005)

구드룬 슈리, 피의 문화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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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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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북리의 음곡 | 작성시간 10.11.19 참고문헌 중에 세계를 뒤흔든 광기의 권력자들 이건 저도 읽었던 거네요 ㅋㅋ 표지에 무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있어서 기대했건만, 정작 책 내용에는 단어 하나 없었다는 ....ㅠ.ㅠ
  • 작성자ㅤㅇㅢㅇㅤㄲㅢㅇ꿍 | 작성시간 10.11.20 81..생각보다 늦게 폐지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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