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Lanciarii
제정기 Lanciarius들에 대한 첫번째 자료는 유대인 역사가로서 기원후 1세기에 활동한 요세푸스의 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어로 기록한 저작에서 로마군의 주둔군 사령관(Provincial Roman general)은 개선식에 참가할 때 ‘Longchophoroi’ 라고 부르는 그의 보병 호위병과 함께 행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 보병들은 해당 사령관이 이끌던 군단에서 차출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세푸스가 ‘호위병’이라는 의미로 ‘Longchophoroi’를 사용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전기 고전시대의 그리스어에서는 호위병을 ‘Doruphoroi(spear-carriers)’라고 기록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그리스, 특히나 저작자들을 많이 배출한 아테네의 정치체제가 민주정으로 변하면서 단순히 호위병이라는 의미였던 ‘Doruphoroi’ 의 의미도 변하게 됩니다. 즉, 이들은 참주나 전제군주의 호위병을 의미하는 단어로 변했고 전제군주라면 학을 떼던 당대의 인식은 ‘Doruphoroi’ 에 부정적인 의미를 가미했던 것입니다. 마치 인도 게르만족 문화에서 행운의 상징이었던 갈고리 십자가 – 하켄크로이츠 – 가 나치를 상징하게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요세푸스를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은 Doruphoroi를 Longchophoroi라는 말로 대신했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형태의 보병들 역시 2세기에 그리스어로 저술활동을 했던 아리아노스에 의해 입증됩니다. 그는 對 알란족 전쟁에서 그가 이끌었던 로마군이 다양한 타입의 ‘Longchophoroi’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서술했습니다. 아리아노스는 몇몇 보조병들을 ‘Longchophoroi’로 묘사하였으며 여기에 더하여 정규군단의 반수를 차지했던 이들은 군단병이 전위에서 적을 막는 동안 자신들의 무기를 던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리아노스는 이들을 ‘Kontophoroi’ 라고 쓰기도 했는데, 이는 명백하게 Doruphoroi 라는 말을 쓰는 것을 피해서 쓴 것입니다. 그는 또한 그의 보병 호위병들을 ‘Longchophoroi’라고 서술하기도 했는데, 그들을 나머지 병사들과 구분하기 위해 그들을 ‘Kouphoi’ 혹은 ‘가볍게 무장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리아노스를 따라 전장 여기저기로 그를 수행하기 위해(즉, 많이 싸돌아다녀야 함으로-역주) 이들 호위병들은 다른 Longchophoroi에 비해 경무장차림으로 다녔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 Lanciarii가 ‘경무장 보병’으로 굳어지게 만든 주범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규편성이었는지, 아니면 전장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는 장군을 수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일시적인 편성이었는지는 확실치가 않습니다. 알란족과의 전쟁을 다룬 아리아노스의 저작에서, Longchophoroi는 자신들의 무장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으며 ‘Lonche-bearer’는 Longchophoroi라고 적혀있습니다. 이 또한 현재 Lanciarii가 그들의 무장에서 병종명이 유래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게 만든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와중에도 요세푸스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사령관을 수행하는 선택된 집단이었다는 단초를 제공해주었습니다. 따라서 요세푸스 시대의 Longchophoroi 도 또한 Longche로 무장했다고 보는 것이 이성적인 결론일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문헌 자료뿐만 아니라 고고학 유물 자료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Lanciarius라는 병종에 대한 첫 번째 유물은 아파메아에서 발견된 비석문으로 제2 파르티아 군단의 병사였던 Aurelius Marcianus의 것입니다. 3세기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비석에 Marcianus는 ‘Discens Lanchiari’ 즉 ‘훈련병(Trainee) Lanciarius’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단, 이 부분은 좀 이상한 것이 원래 로마군 계급에서 Discens는 상병정도 되는 위치의 군단병이었음을 볼 때 여기서 Discens를 훈련병이라고 한 것은 원 저작자의 실수거나 착오에 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역주) 이 비석은 1988년에 발간된 로마연구회 78호 학술지에 수록된 J.C Balty의 『Apamea in Syria in the Second and Third Centuries A.D.』에 이 비석의 연도에 대한 토론과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아파메아는 그리스어권역이었으며 따라서 여러 언어가 혼합된 스펠링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5개의 중형 투창 -즉, Lancea- 을 오른손에 들었던 것으로 보이며, 왼손에는 방패를 쥐고 있었습니다. 방패는 다소 축소된 형태로 표현되어 있으며 타원형에 중앙에 돌출부가 있고 사이즈가 작아 경보병 전술에 적합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다른 비석들에 묘사된 Lanciarius가 아닌 정규 군단병들도 똑같이 작은 사이즈의 방패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Lanciarius가 든 것으로 묘사된 작은 사이즈의 방패는 실제보다 더 작게 묘사되었음이 분명하며, 실제로 Lanciarius들이 든 방패는 군단병의 방패와 동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제2 파르티아 군단 내에서 Aurelius Marcianus의 직책 - Discens Lanchiari - 은 Lanciarius 의 원 모체가 군단병 (Discens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상병급의 군단병이었습니다. -역주) 이었음을 잘 알 수 있으며, 동시에 수많은 비석 중에서 구별되는 그의 독특한 비석으로 보아, 아주 한정된 숫자의 Lanciarius만이 요세푸스와 아리아노스의 기록에 등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1개 군단, 수 천명 중에서 고작 수 백명에 불과했던 병종이 3세기까지 유지되었음을 의미합니다. Marcianus에 더하여, Discens가 아닌 다른 Lanciarius 한 명도 역시 아파메아에 비석이 남아있는데, 그는 4자루의 Lancea를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주 최근에 (라고는 해도 이 글이 2003년에 마지막으로 수정되었으니 근 10년 전;;;; -역자) 이 글의 초본을 놓고 토론을 벌였을 때, Duncan Head는 사료를 통해 처음으로 로마군대에 Lanciarii가 나타난 때는 Antesignani가 사라진 시점과 동일하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군기 앞에 서는 자’라는 의미의 Antesignani 는 의심할 여지 없이 포에니 전쟁 시기 군단의 중장병과였습니다만 (리비우스의 기록 23.29.3을 참고), 이후 Velites가 사라져가던 시기인 기원전 1세기에는 그들이 예전에 Velites가 맡았던 경보병의 몇가지 역할도 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자면 카이사르의 기록에서 Antesignani는 기병을 보조하고 적 전열을 꽉 붙들어 매는 역할을 맡았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기록에서 그들이 이러한 경보병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다른 군단병보다 더 가볍게 무장했다고 서술했으며 이러한 경보병 역할을 맡을 시에, 이들에게 Lancea는 Pila보다 더 적합한 무기였습니다. 아마도 로마군단의 다른 병과들이나 전통이 그러했듯이, 이러한 과정은 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