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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근대 유럽][서론] The Phantom of the Bohemia - 신성로마제국 (수정완료...)

작성자나스르공작☆|작성시간12.01.14|조회수548 목록 댓글 0

30년 전쟁의 리메이크 버전입니다.... 첫화는 무지짧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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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로마 제국> 

 

게르만 족의 대 이동 이후 혼란에 빠진 유럽의 질서를 다시 세운 프랑크의 위대한 왕은 바로 우리가 흔히 "카를 대제"라고 부르는 사를마뉴였다. 서로마 재건이라는 장대한 꿈을 가지고 여러 부족을 통합하면서 프랑크 왕국의 영토를 광대하게 넓혔고 프랑크만의 문화를 꽃피운 그였지만, 그 시대의 왕국에서는 장자 세습제가 정립되있지 않았기 때문에 위대한 대제의 왕국은 손자대에 이르러서 삼국으로 분열되기에 이르른다.

 

 프랑크 왕국이라는 주축을 잃은 유럽은 얼마 되지 않았던 평온을 끝마치고, 또 다시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동방에서 마자르족(헝가리인)이 침입해오자 모든 유럽인들은 카를 대제와 같은 강력한 군주를 갈구하게 되었고 그런 기대에 부흥하듯이 나타난 인물이 바로 동프랑크의 왕 "오토 1세" 였다. 그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국내를 휘어잡았으며 국외로는 중부프랑크(북 이탈리아)를 평정하는 동시에 유럽을 위협하던 마자르 족을 격퇴시켰다. 유럽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은 오토 1세는 "모든 로마인의 왕"으로서의 대관식을 치르고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 프랑크의 위대한 왕 사를마뉴(왼)와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오토 1세(오른쪽 사진의 왕관 소유) 이다. 두 군주 모두 혼란에 휩싸인 시대에 등장 하여 유럽의 질서를 다지기 위해 노력하였다. 사를마뉴의 프랑크 왕국에서 갈라져 나온 동프랑크는 오토1세가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는 초석이였다)

 

 그러나 지방영주들의 동맹체와도 같았던 제국에는여러가지 문제가 항상 함께했었다. 황제는 게르만족의 전통과도 같았던 "선출직"이였고 중앙집권화를 할만한 황제의 정부는 부재했었다. 중앙집권화의 부재는 후대 황제들이 교황과의 대립관계에 있을때 큰 걸림돌이 되었고(하인리히 4세가 그 좋은 예이다, 독일 주교 선출권 문제로 교황과 대립하게 되자, 교황 그레고리 7세는 황제를 파문했고 독일내의 군주들의 동요를 눈치 챈 황제는 결국 카노사에서 교황에게 굴복 하고만다), 독일의 귀족들은 서로의 이익만을 쫓아 독자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독일의 봉건제는 중앙정부에 흡수되지 못하고 완전히 분해되어버렸다.

 

 

 

(오토 대제 통치시기의 신성로마제국의 영역이다. 여러 독일 귀족들을 한대 묶은 제국은 오토1세 사후 강력한 군주의 부재로 강력했던 제국의 황제는 황권면에 있어서 약화일로를 걷게 된다)

 

제국의 여러 중소 귀족들은 제국 전역에 걸쳐서 자신들의 영지를 산개해 차지 하였는데, 그 당시 독일에서는 장자 세습제가 확립되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상황은 조금 더 심각한 상황을 연출시켰다. 영주에게 아들이 4명이 있을 경우, 영주는 자신의 4명의 아들에게 자신의 영지를 분할해서 주었으므로 한 영지에서 수명의 군주들이 나오게 됬던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도 문제였지만 제국적으로는 더 큰 갈등의 근본이 되었다. 제국의회를 개최할시 항상 투표권이 문제가 되었다. 예컨데 브라운슈바이크의 네 지역은 다 합쳐서 두표를 행사할수 있었으나 역시 네 지역으로 쪼개졌던 안할트의 군주들은 한표를 공유해야만 했다.

 

 

 

선출직 황제에게서 황권이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1356년에 카를4세가 반포한 금인칙서로 인해 교황의 간섭으로 부터 독립된 7선제후 선거권을 확립했으나 신성로마제국 전반에 걸쳐 제대로 된 황제권을 누른 황제는 오토 1세와,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카를5세 세 사람에 불과했다.

 

 

 

(1612년 신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선출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에 모인 선제후들이다. 이 선거에서 선출 황제로 등극한 사람은 마티아스 황제이고, 트리어, 마인츠, 쾰른, 작센, 브란덴부르크, 보헤미아, 팔츠 선제후가 참여하였다.)

 

 

 오토 대제 시절 제국이 건국된 이래로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 되기 까지 이 문제점을 바로잡고자 한 군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방분권의 성격이 강했던 독일 귀족들은 서로만의 이익을 쫓기 바빴다. 필시 제국은 스스로의 모순으로 인해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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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Europa Universa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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