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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최고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작성자fdsa| 작성시간12.06.14| 조회수42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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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fds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6.14 콘스탄티노플 경기장의 무희(舞姬)였다고 한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황후 에우페미아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에 황후가 죽은 후인 523년 정식으로 결혼하였다. 527년 남편과 함께 공동대관(共同戴冠), 여제(女帝)로서 통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니카반란(反亂)'을 당했을 때의 침착한 태도는 그녀의 권위를 확고한 것으로 만들었다. 남편이 원했던 로마제국의 서방부흥정책(西方復興政策)보다도 동방의 통일을 중시했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정치에 대한 간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있다. 남편에 앞서 암(癌)으로 죽었다.

    추가글
  • 작성자 Revolution 작성시간12.06.14 정작 비잔틴 전공자들은 유스티니아누스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고 봤는데 말입죠...
    가장 높게 평가받는 게 바실레이오스 2세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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