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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스크랩] [중세 유럽]비잔티움의 해적

작성자fdsa|작성시간12.06.28|조회수298 목록 댓글 1


몰락한 제국에서의 약탈


비잔티움 제국은 지중해 동부의 항로를 약 1000년 동안 유지했다. 제국이 쇠퇴하면서 그 바다는 무자비한 해적들의 사냥터가 되고, 그들은 약 200년 동안 지중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서기 330년,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는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이전하여 그 곳을 콘스탄티노폴리스라 이름을 바꾸고 비잔티움 제국을 세웠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 동로마 혹은 비잔티움 제국은 이슬람 세력의 번영과 유럽이 암흑 시대로 전락함에도 불구하고 1000년 동안 지중해 질서의 보루로 남았다. 비잔티움의 전함은 제국의 해상 무역을 보호하면서 동부 지중해를 초계하는 한편, 해군은 이슬람 세력의 확장을 막으려고 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2세기 말부터 제국은 위축했고, 국력은 겨우 헬라스와 현대의 터키에 미칠 뿐이었다. 전설적인 부를 자랑했지만 끊임 없는 정치적 혼란으로 비잔티움의 군사력은 약화되어 갔다. 서유럽의 십자군과 충돌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그리하여 1204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다른 세력에게 점령, 약탈되었다.

 

비잔티움 해군의 붕괴는 재난을 가져 온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제국은 오랫동안 이탈리아 뱃사람을 군인으로 모집했다. 12세기 말부터 베네치아와 다른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과의 갈등은 이들 뱃사람들의 체포로 이어졌다. 이것이 그 후 10년 동안 비잔티움의 쇠퇴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해적 행위로 되돌아 갔다. 비잔티움이 수도를 다시 통제했지만 해군력은 결코 회복되지 않았고, 해적 행위는 이제 에게 해의 풍토병이 되었다.

 

이 해적들은 비잔티움 당국의 마지막 성채에서 멀리 떨어진 기지를 이용했다. 그들은 아나이아(현재 터키 남서부의 쿠사다시) 혹은 헬라스 남부의 메넴바시아와 같은 항구가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크레타와 에게 해의 작은 섬들을 좋아했다. 브린디시의 이탈리아 기사 마르가리토네는 아드리아 해 남부의 이오니아 섬들도 해적들의 은신처로 생각하고 통치했다. 베네치아 정부는 1203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는 길에 해적 기지를 습격했다. 쫓겨난 해적들은 곧 되돌아 왔고, 이들 이탈리아와 헬라스의 해적들은 코르푸, 잔테, 이타카, 케팔로니아 섬을 14세기 말에 베네치아에 병합될 때까지 기지로 이용했다.

 


해적에서 로도스의 군주로


비잔티움 제국이 붕괴하면서 13세기 말에 해적들의 진정한 전성기가 찾아왔다. 제국 내에 혁명이 일어나서 1259년, 지방 총독이 새로운 황제로 등극했다. 1260년대 초, 미카일 8세 황제는 이탈리아의 봉건 영주들이 점령했던 헬라스의 대부분과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했다. 이들 귀족들은 해적들을 환영하고 그들을 잉여 수입원으로 여겼지만, 비잔티움 황제는 해적들을 정치적 도구로 삼았다.

 

황제는 해적들의 두목들을 고용하여 비잔티움 해군을 재건하고, 이들 코르세어가 에게 해에서 이탈리아 선박을 공격하도록 장려했다. 대부분의 해적들은 이탈리아 출신이고, 이탈리아 역사가인 토르셀로의 14세기 초 기록에 따르면, 에게 해의 해적들은 원래 제노바와 베네치아 출신들이었다.

 

이탈리아인을 시켜 이탈리아인을 제압하는 전형적인 비잔티움의 수법은 결국 엉뚱한 결과를 가져 왔다. 1278년에 베네치아가 배상을 요구할 때 더 많은 해적들의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기록은 토르셀로의 주장을 입증했다. 미카엘 발보, 마누엘 데 마리노, 바르톨로메오 포스콜로라는 이름은 이탈리아 북부 출신임을 드러냈다. 황제를 섬기던 해적인 조반니 데 로 카보는 해군 사령관으로 두각을 나타내어 1278년에 로도스의 군주가 된다. 하지만 에게 해의 해적들 전부가 이탈리아 출신은 아니었다. 불가리노, 다나이아, 조르주 데 말바시아, 조르주 마크리케리스와 같은 헬라스 혹은 발칸의 해적들이 그 지역에서 활동했다.

 

로도스와 오스만 튀르크의 점증하는 해군력은 14세기에 그 지역의 무법 상태를 억제했다. 비잔티움 해군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주위의 바다를 통제하기 어려웠지만, 튀르크의 전함들은 에게 해와 지중해 동부를 지배하여 중세 이탈리아 해적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예외라면 카탈루냐 해적으로 알려진 집단인데, 이들은 아테네 주변에 기지를 두고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룩한 에스파냐 용병들이다.

 

그들은 결국 이슬람 코르세어에 동화되었다. 튀르크 해적들은 비잔티움과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항해를 공격했지만, 오스만 튀르크를 위해 싸우면서 동시에 약탈도 자행했다. 그것은 훗날 바르바리 해적들이 반복했던 혼합적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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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fds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6.28 추천도서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멸망이후의 지중해세계를추천드립니다, 뭐 걍 볼만은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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