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서양사

전설의 경로- 한니발, 카르타고 노바에서 포강 유역까지.

작성자SHaw|작성시간12.08.30|조회수853 목록 댓글 1








기원전 218년 봄, 한니발은 가데스를 나와 카르타고 노바(오늘날의 카르타헤나)의 겨울 숙영지로 돌아갔다. 그곳에서부터 군대를 이끌고, 마침내 그는 두개의 거대한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쳐들어가는 놀라운 행군을 시작했다.


한니발은 후방을 비워둔채 무턱대고 진격하지 않았다. 그는 카르타고와 속령을 방어하기 위해 스페인과 발레아레스 등지에서 온 14,720명의 보병1,200명의 기병, 총 15,920명을 아프리카로 보냈고(Liv.21.21), 메타고니아(모로코 동부?)에서도 4,000명을 카르타고로 보냈다.(Polyb.3.33) 또한 하스드루발에게 11,850명의 아프리카 보병, 리구리아 출신의 보병 300명발레아레스 출신의 보병 500명, 리비아, 누미디아, 스페인 등 다양한 출신의 기병 2,550명을 합쳐 총 15,200명의 병력을 주어 스페인에 남게 했다.(Liv.21.22)

고대 역사가들은 한니발의 본대가 10만이 넘는 대군이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보병은 90,000명이나 되었고, 기병은 12,000명이었다는 것이다.(Liv.21.23, Polyb.3.35, Appian.Han4) 이런 이야기는 좀 믿기가 어렵다. 어쩌면 한니발이 아프리카와 스페인 등지에 남겨둔 군대까지 전부 합치면 그정도쯤 될지도 모르겠다. 앞서 나온 수치들을 전부 합치면 35,120명이 된다. 그렇다면 한니발은 대략 70,000명쯤을 데리고 카르타고 노바를 출발한 것인가?

에브로 강을 건너, 피레네 산맥까지 가는 동안에 한니발의 군대는 여러 현지 부족과 전투를 치렀다. 피레네 산맥을 넘기 전에 그는 한노에게 10,000명의 보병과 1,000명의 기병을 맡기고 같은 수의 병사들은, 아마도 인기를 유지하려고, 귀가시켰다.(Polyb.3.35)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이 단계에서 한니발에게는 50,000명의 보병과 9,000명의 기병이 남아 있었으나, 이제 그 군대는 매우 위험한 지역을 지나고 있었고, 산맥을 넘고 수일에 걸쳐 론(로다누스)강을 건넜을 때에는 보병 38,000명과 기병 8,000명 정도로 병력이 줄어들어 있었다고 한다.(Polyb.3.60)

픽션만큼이나 극적인 엇갈림이 이때 일어났다. 한니발의 군대가 론강을 건너려고 하고 있던 때에, 老스키피오의 함대가 마살리아(오늘날의 마르세유)에 도착했던 것이다.(Polyb.3.41) 이곳에서 집정관은 한니발의 군대가 피레네를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아직 근처까지 오지는 못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찰을 보낸 기병이 뜻밖의 소식을 가져왔고, 그는 급히 전군을 이끌고 한니발군을 저지하러 갔다. 그러나 한니발의 도하 지점은,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바다로부터 4일간 행군하는 거리"(Polyb.3.42)에 있었다. 老스키피오의 군대가 겨우 도하 지점에 당도한 것은 한니발과 그 군대가 강을 건넌지 3일이 지난 뒤였다.(Polyb.3.49) 이제야 마침내 한니발의 목적이 로마인들에게 드러났다. 로마와 싸우려는 자가 론강을 지나 그 안쪽으로 들어갔다면, 그것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에 쳐들어가겠다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론강을 건넌 뒤 4일간 진군을 계속하여, 한니발과 그 군대는 "섬(insula)"이라고 불리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은 알프스에서 내려온 여러 물줄기들에 마치 섬처럼 에워싸인 땅이었다. 여기에서부터 폴리비오스와 리비우스가 제시하는 경로가 엇갈려, 한니발이 대체 어느 루트로 알프스를 넘었는가 하는 논쟁이 발생한다.





론강 하구와 이탈리아 사이의 지형을 언뜻 보면, 론강의 두 지류, 뒤랑스 강과 이제르 강이 알프스 산맥의 깊은곳에서 흘러내려오며 계곡지대를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계곡들은 감히 알프스를 넘어가려는 자가 고대로부터 가장 먼저 고려할만한 통로였을 것이다. 리비우스의 글에는 한니발군이 드루엔티스 강을 건너 알프스까지 갔다는 대목이 나온다.(Liv.21.31, 32) 드루엔티스가 뒤랑스임을 인정한다면, 이는 알프스를 통과한 길이 남쪽 계곡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폴리비오스는 한니발이 "섬"에서부터 알프스를 오르기까지 강을 따라 10일간 800스타디아를 행군했다고 주장했다.(Polyb.3.50) 이 '강'이란 필시 론강으로, 잠시 후에 설명하게 되겠지만 800스타디아는 약 142km이다. 그렇다면 한니발의 군대는 아마도 이제르강쪽의 북쪽 계곡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두 기록에는 모두 모호한 점이 있으며, 각각을 남쪽과 북쪽의 계곡지대에 대응시키는 것도 어쩐지 그럴것 같다는 말이지 꼭 확실하지는 않다. 부대가 나뉘어 두 루트를 모두 넘었다는 주장까지 있다.[후프, p301참조]

어떻든간에, 한니발군이 알프스를 통과하는데는 15일이 걸렸다고 전해진다.(Polyb.3.56) 그러나 실제로는 며칠 더 걸렸을 수도 있다. 카르타고 노바로부터 시작해서 포강 유역 평원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다 합쳐서 5개월이었다고 한다.



폴리비오스는 한니발이 지나갔음직한 경로를 따라 거리를 계산했다.(3.39)

카르타고 노바에서 에브로 강까지 2,600 스타디아.
에브로강에서 엠포리온까지 1,600 스타디아.
엠포리온에서 론강 도하 지점까지 1,600 스타디아.
론강에서 알프스 기슭까지 1,400 스타디아.
알스프에서 포강 유역 평원에 이르기까지 1,200 스타디아.

합계 8,400 스타디아.

폴리비오스가 사용한 스타디온은 몇 m정도 되는 거리인가? 그는 로마 가도에 1마일마다 설치된 마일스톤을 "8스타디아마다"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 8스타디아는 아마도 소수점 아래를 반올림한 것이다. 스트라보는 폴리비오스가 8과1/3스타디아를 1로마 마일로 계산했다는 점을 지적했다.(Strabo.7.7) 즉, 폴리비오스의 1 스타디온은 1로마 마일(1,479m)의 25분의 3이며, 이는 약 177.5m에 해당한다.

다음은 시험삼아 카르타헤나에서 에브로강변의 토르토사까지 해안을 따라 경로를 그어본 것이다. 합은 458.4km이며 이는 약 2,580 스타디아이다.




한니발이 꼭 이런 길로 지나갔다고 볼수는 없다. 그러나 폴리비오스 추산이 아무렇게나 나오지는 않았다는 인상은 이러한 비교로부터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폴리비오스가 지적한 10일간의 800스타디아 행군은 하루당 80스타디아~14.2km씩의 진행에 해당한다. 이는 계산상의 평균으로 삼기에 쉬운 값이나, "섬"에서 본격적으로 알프스에 이르기까지의 길 사정이 전체 행군 가운데서도 평범한 것으로 취급 가능한지는 알기 어렵다. 5개월의 기간이라는 것은 아마도 역시 반올림해서 5개월이라는 말로, 그 최소를 135일로 잡는다면 8,400스타디아~1491km를 하루에 약 11km씩 주파한 것이며, 최대인 165일은 하루 평균을 9km로 떨어뜨린다. 5개월 가운데는 적대적인 부족들과 싸우는데 걸린 시간, 론강에서 배를 모으느라 걸린 시간 등이 포함되어야 하며, 아마 중간 휴식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시간적으로 그 사건들이 각각 언제에 해당하는지 알려주는 단서로, 리비우스와 폴리비오스는 한니발군이 알프스의 산정부에 다다랐을 즈음 "플레이아데스가 지는 때"가 되었으며 눈이 내렸다고 썼다. "플레이아데스가 지는 때"란 아마도 일출과 함께 플레이아데스가 지는 시기를 말하는 것으로, 대략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 위치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는(즉, '겨울이 되었다') 말의 수식일 수도 있으며, 알프스에서 그것은 대략 9월 말-10월 초로 볼 수 있다.[Lazenby, p33. Walbank, p390. 플레이아데스의 더 많은 문화적인 의미를 보고 싶은 분은 Kyselka(93)]

적당한 중간을 잡아 10월 하순경에 한니발이 알프스에서 내려왔다고 본다면, 카르타고 노바에서 출발한 것은 그로부터 약 5개월 전이므로 대략 5월 초에서 6월 초 사이가 된다. 하루 평균 행군 거리가 10km라면 여기에서 에브로강까지는 46일이 소모된다. 스페인에서는 행군 속도가 좀 더 빨랐을 법 하므로, 그 시간을 1달 남짓으로 잡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곳에서 론강까지 가는 3,200스타디아는 더 곡절이 많았고, 2달 가량을 할당해야 할 것 같다. 이제 남은 2달은 론강을 건너고, 알프스까지 가서 산맥을 넘는데 소모한 것이 된다. 아마 전체 경로 중 가장 힘든 구간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매우 엉성하나마 다음과 같은 시간표가 얻어진다.


5~6월중: 한니발과 군대, 카르타고 노바에서 출발.
6~7월중: 에브로강에 도착.
8~9월중: 론강 도착.
10~11월중: 알프스를 넘어 갈리아 키살피나에 도착.


론강을 건넜을때 한니발의 병력이 보병 38,000, 기병 8,000이었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소개했지만, 이제 한니발 자신의 주장을 믿는다면 포강 유역 평원에 도달했을 때는 보병 20,000명, 기병 6,000명만이 남아 있었다.(Polyb.3.56) 리비우스가 인용한 킨키우스 알리멘투스(기원전 210년의 법무관과 동일인물일 것이다. 그는 한니발군에 포로로 잡힌 일이 있었다고 한다.)의 주장에 의하면, 한니발군은 론강을 건넌 이후로 36,000명을 잃었는데 이 정보 역시 한니발 자신의 말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다.

론강에서부터 36,000명을 잃은 것은 커녕, 그 시점에 한니발 휘하에 다 합쳐서 36,000명이 존재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老스키피오의 군대가 가까이에 왔을때, 한니발에게 그정도로 병력이 많았다면 왜 론강변의 어딘가에서 일전을 벌여 섬멸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미 알프스에 눈이 내리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행군 과정에서 실제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정도로 어림해야 할지는 알 수 없다. 아울러 이로 인해 피레네와 론강에서 59,000명이니 46,000명이니 하는 병력의 규모도 역시 잘 믿을 수 없게 된다.






[조석, 2009.11.3]







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외, 박종대역,『임페리움』말글빛냄(2005)
Will Kyselka, 「On the Rising of the Pleiades」, 『The Hawaiian Journal of History』vol.29(1993)
조석, 「마음의 소리」361화(2009.11.3)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havoc(夏服ㅋ) | 작성시간 12.08.31 마지막 출처언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