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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솔로몬, 실존인가 허구인가?

작성자Jitter| 작성시간13.08.08| 조회수2393|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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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Jitt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8.08 글 자체는 네이버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는 글입니다. 글쓴 분이 반 기독 입장이신듯 하여 문체가 좀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나, 석판에 대한 사실만 보시면 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시간13.08.08 "석판에 대한 사실만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비문이 발견됨에 따라서 (그 비문의 역사적 사실성은 둘째치고) 솔로몬이 통치하였다고 알려진 기원전 1000년(기원전 1025~ 기원전 931) 전후에 이스라엘 지방에 다윗으로 대표되는 왕조가문이 있었음"은" 증명되었다.>>
  • 작성자 Jitt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8.08 다윗과 솔로몬이 실증되었다고 하시는 분이 있어서 종교논쟁같은거 하고 싶진 않은데 여기 올렸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시간13.08.08 본문 내용은 다윗과 쉴로모의 왕국 자체가 실재했을 가능성을 대단히 높이 평가하며, 오히려 그것까지 부정하는 최소주의를 비판하는데 이 글 만진 반기독 빠돌이는 소위 말하는 최대주의를 비판한 것을 들어 침소봉대하고 있네요. 국내 반기독 빠돌이들은 어떻게 된게 최소주의를 비판하는 내용까지 죄다 우왕 역시 성경은 죄다 뻥이었어요 로 알아듣기 바쁜데, 참, 최대주의자 개독교도들하고 당최 뭐가 다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과연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무장공비 작성시간13.08.08 있긴 있는데(...)

    그게 과연 나라라고 불러주기 민망한 쪼그만 부족국가냐, 주변나라들이 조공을 바치고 길가는 강아지도 금덩어리를 물고다니는 황금시대냐... 뭐 그게 문제지요.

    진실은 그 중간쯤 어디라고 보지만요. 사실 히브리인들이 다윗이래 유다왕가에 의해 통합된이후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규모 치곤 의외로 그 일대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시간13.08.08 물론 다윗과 쉴로모의 왕국이 실제보단 별 것 없었음은 밑에 내가 언급한 시바 여왕 연구한 고고학자의 책에서도 언급되는 바라 별반 신기한 내용은 없지만, 적어도 이를 볼 때 다윗과 솔로몬 자체를 완전 허구 인물로 단정짓는 주장은 폐기에 가깝다는 것 또한 사실이 되겠습니다.

    중간에 반기독 빠돌이들의 흔한 거짓말 프레임, 즉 "기독교계에선 어차피 입증도 안 되는 걸 가지고 헛질하고 있으며 성경 기록 일부를 입증하는 발견은 죄다 기독교계의 억지일 뿐이다" 도 있는데 그닥 문맥하곤 잘 어울리지도 않네요.
  •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시간13.08.08 쯧쯧쯧...또 반기독 빠돌이들의 거짓말. 헤제키야하고 요아스 왕 시대가 나라 말아먹고 결국 멸망시키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앗시리아를 격퇴한 건 다름아닌 헤제키야 왕이고, 헤제키야의 능수능란한 외교 덕택에 이스라엘은 앗시리아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온존할 수 있엇습니다. 그리고 요시야 시대에 유다는 북쪽으로의 상당한 국토 회복까지 달성하죠. 요아스는 또한 동맹 파트너로 이집트보다는 신바빌로니아가 낫겠다는 옳은 판단을 해서, 이집트한테 먼저 전쟁까지 걸었었고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인터넷 자료 중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얼기설기.....참담합니다. 역시나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무장공비 작성시간13.08.08 뭐 객관적으로 놓고 봣을때 히스기야왕은 임진왜란에서 승리한 조선 모냥으로 잘 쳐줘야 본전이긴한데(....)

    하긴 그 무섭다는 나라분쇄기 아시리아의 공격을 버텨내긴 했으니까 조금 더 플러스가 가능할듯도
  • 답댓글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시간13.08.08 아뇨. 단순한 본전은 아닙니다. 세나케에르바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끝내 유대 왕국을 완전 정복하는 데는 실패했고, 조공 받아 먹는 수준에서 그칠 수 밖에는 없었죠. 아예 속주가 되어버린 이집트하고 비교해보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헤제키야를 굴복시키는 데 실패한 나머지 다른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앗시리아는 직접 지배 방식을 관철할 수가 없었습니다. 메나셰 왕 때도 이스라엘은 상당한 수준의 독립을 누렸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시간13.08.08 착각했네요. 하지만 요아스는 오히려 처음엔 잘 믿었다가 나중에는 야훼 신앙에서 엇나가 결국 참살되었다고 묘사되기에,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요아스는 아마 요시야가 유력해보입니다.
  •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시간13.08.08 사실 이렇게 몇 가지 FACT를 가지고 멋대로 자기가 모르는 내용까지 지어서 말하는 건, 자기 전공 분야가 아닌 분야까지 함부로 떠들어대는 이덕일, 바트 어만 류의 이상한 학자들 전매특허긴 합니다만 이글 쓴 친구 같은 경운 반기독 빠돌이적 믿음으로 아예 사실까지 곡해하고 있네요.

    아울러 지금 말하는 내용에 대한 출처, 제시합니다. 역사로서의 성서, 고대 이스라엘 역사, 유대인의 역사, 아이작 아시모프의 구약.

    ps. 무신론자 끝판 대왕인 아이작 아시모프도 그래 "보수 기독교계의 인사"입니까? 아이작 아시모프 선생이 자다가 벌떡 일어나겠네요.
  • 작성자 mr.snow 작성시간13.08.08 최소주의하고 최대주의가 뭔지는 아십니까?
  • 작성자 havoc(夏服ㅋ) 작성시간13.08.08 다윗 이전의 이스라엘은 아직도 청동기시대에 돌입하지 못한 상태였고, 그만큼 어느정도 수준의 왕국만 세워져도 이스라엘역사상 커다란 발전을 의미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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