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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로마의 1차 일리리아 전쟁(기원전 230-228): "세계정복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1)

작성자SHaw|작성시간13.11.05|조회수1,099 목록 댓글 5

 

 

  

 

 

 

"일리리아 왕국" 기원전 229년 초.

 

 

 


 
1차 일리리아 전쟁(기원전 230-228)은 로마 전쟁사에서 특별히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의미때문에 관심을 끄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전쟁이 바로 로마군의 첫번째 발칸 침공이었던 까닭이다. 이번 글에서는 우선 평가나 의미 모색에 앞서 1차 일리리아 전쟁의 발단과 진행 과정을 정리 소개할 것이다.

 

고대의 일리리아 남부와 에페이로스, 즉 오늘날의 알바니아 서해안 일대는 동서 폭 약 100km 내외의 오트란토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 남부의 메사피아와 마주보고 있었다. 아드리아해와 이오니아해를 잇는 항로가 양안을 따라 형성되었으며 해협을 횡단하는 것이 발칸과 이탈리아 사이의 최단경로이기도 했다.

 

로마 공화국은 기원전 260년대에 메사피아를 장악했고, 일대의 중심지였던(Flor.1.15) 브룬디시움은 기원전 244년에 라틴 식민시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중요한 항구로, 해협 건너의 부유한 그리스계 도시인 아폴로니아, 에피담노스와는 약 150km 가량 떨어져 있었다. 고대의 항해 속도로는 하루나 이틀 거리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해협 지대의 서쪽 절반은 이미 로마 공화국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1차 일리리아 전쟁의 결과 나머지 절반도 로마의 세력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 전쟁에서 로마와 교전한 나라는, 편의상 여기에서 '일리리아 왕국'이라고 부르기는 하겠지만 필시 실제로 일리리아에서 유일한 왕정은 아니었다. 다만 일대에서 당시 가장 위세를 떨쳤다고 보이는 세력으로, 그 실체는 아마도 '아르디아오이'족을 위시한 부족 연합이었던 것 같다. 중심지는 스코드라였을 것이다.(*) 그리스 세계에서 이들은 해적 행위로 악명이 높았는데,(Strab.7.5) 자기네 땅의 연안으로부터 훨씬 남쪽까지 내려와 펠로폰네소스 반도까지도 약탈하곤 했다고 한다.(Polyb.2.5)

 

이 일리리아 왕국이 로마와 마찰을 빚게 된 원인에 대한 설명은 크게 두 계열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바로 그 열정적인 해적질 도중 이탈리아 상선에 큰 피해를 입힌 일이 문제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고,(Polyb.2.8, DioCass.fr49.2, Flor.1.21) 다른 하나는 이사 섬 (위치 지도 참조)사람들이 일리리아 왕국의 세력 확장(혹은 지배)을 두려워한 나머지 로마에 복종하며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다.(Appian.Ill.7, DioCass.fr49.1, Zonar.8.19)

 

발단부로서만 고려한다면 둘 다 그럴듯하고, 사실 양립될 수도 있다.[cf. Walbank, p158-159] 예컨대 카시우스 디오는 두가지 모두가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후의 전개과정으로 들어가면, 이사의 구원 요청 에피소드는 다른 줄거리와 다소 잘 연결되지 않는 면이 있다. 이사는 아마 기원전 230년 가을쯤부터 일리리아왕국 군대로부터 공격을 받았던것 같은데, 정작 나중에 로마군은 이사 섬이 아니라 코르퀴라(케르퀴라) 섬으로 먼저 건너갔음에 분명하다.(Polyb.2.8,11, Appian.Ill.7, DioCass.fr49.6, Zonar,8.19) 또한 폴리비오스는 로마가 이사를 보호국으로 삼은 것은 나중에 일리리아군의 포위를 해제시켰을 때라고 했다. 이는 이사가 기원전 229년 여름 무렵까지도 아직 로마의 속국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부가 설명을 만들어 넣어서 이어붙이지 못할 것은 전혀 없지만, 이사 에피소드의 채택에는 경계가 필요할 것 같다.

 

경위는 달라도, 그 '무언가의 문제'가 결국 어떤 사건으로 귀착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대체로 비슷하다. 기원전 230년 가을쯤에 로마에서는 일리리아 왕국의 여왕 '테우타'(*정확히는, 테우타는 섭정이었고 정식 왕은 의붓 아들 핀네스였다. Appian.Ill.7)에게 사절단을 파견했다. 그러나 협상은 결렬되었고, 사절중 일부가 일리리아인들에게 살해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이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로마인들은 곧 육지와 바다에서 군대를 준비했고, 다음해에 두명의 집정관이 모두 바다를 건너 출정했던 것이다.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이때 로마군은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가 지휘하는 함대 200척과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의 지상군 2만 2천명이었다. 두 군대는 따로 출발했다. 공화국 함대의 주력함은 5단선(승선 인원 약 350명)이었는데, 이때도 마찬가지였다고 보면 기원전 229년에 출정한 일리리아 원정군은 지상군의 수송에 필요했을 선단까지 고려하면 근 10만명에 달했던 것이 된다. 이 거대한 규모는 기괴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일리리아 왕국은 당시 일리리아-에페이로스 해안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기는 했지만, 지중해적 기준에서 특별히 강대국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며 병력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전장에 한번에 내놓는 인원은 1만명을 많이 넘었을 것 같지 않다. 이런 세력을 토벌하는데 10만명은 너무 많지 않을까?

 

그러나 단순히 숫자가 크다고 해서 특별히 의심할 이유는 없을것 같다. 지휘관의 수가 관례와 들어맞지 않는다면 이상하겠지만, 이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우선 집정관군 하나가 2만 수천명인 것은 전혀 관례에서 어긋나지 않는다. 포에니 전쟁에서의 사례를 보면 집정관 한명이 맡는 함대는 보통 1백 수십척 정도였던것 같지만, 함대를 몰아주어 단독으로 200척을 지휘한 사례도 존재한다.(Polyb.1.59.8) 마지막으로, 설령 전함을 120척으로 조정하고 나머지 80척은 수송선이었다고 보아도 총 세력은 약 7만에 이르러 대단히 많기는 역시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전장에 투입하는 병력의 규모는 전략과 관계가 있다. 어떻든간에 로마군이 대군이었음이 인정된다면, 이는 필시 단기간에 확실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 계획된 것이다.[ref: Hammond] 테우타가 로마군의 침공을 대체 어떻게 방어하려 했는지는 잘 알 수 어렵다. 로마군이 바다를 건너올 즈음에, 일리리아 왕국의 군대는 분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는 이사를 공격하는 중이었음에 분명하다.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또 일부는 에피담노스를 포위하고 있었다.(Polyb.2.10.9) 그해 초에 코르퀴라섬을 점령한 후 그대로 주둔해 있던 부대도 있었다.(Polyb.2.10.8, Appian.Ill.7)

 

흡사 테우타는 자신의 왕국이 로마와 전쟁 상태라는 사실을 몰랐던게 아닌가 하는 인상마저 준다. 정말 그랬다고 한다면, 테우타는 기원전 230년에 자신을 찾아온 사절의 메시지를 '최후 통첩'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절이 살해당하기까지 했는데 무사히 넘어가리라 생각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후대 전승으로 다소 신빙성이 떨어지지만 카시우스 디오는 로마의 전쟁 선포 소식을 들은 테우타가 공포에 질렸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병력 분산을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로마군이 상륙할지도 모르는 지역을 미리 확실하게 확보해 두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건, 그 전략은 대실책이었음이 곧 드러나게 된다.

 

 

집정관 풀비우스의 함대가 코르퀴라섬에 출현하자, 일리리아군 주둔군 사령관인 '파로스의 데메트리오스'는 테우타를 배신하고 항복해 버렸으며, 코르퀴라는 로마의 보호국이 되었다. 이어서 함대는 아폴로니아로 가서 따로 출발한 지상군과 합류한 뒤, 북상하여 에피담노스를 포위하고 있던 일리리아군을 몰아냈다. 일리리아인의 위협을 받고 있던 두 나라도 역시 로마의 보호국이 되었다. 이제 로마군은 일리리아로 침입하여 일부 아르디아오이족을 복속시킨 후, 파르티니족과 아틴타니족의 항복을 받고, 이사를 공격하던 일리리아군을 몰아냈다.(Polyb.2.11.1-15) 파로스는 데메트리오스를 따라 복속했던것 같다.(Appian.Ill.7)

 

순식간에 왕국이 휩쓸리자 테우타는 소수의 부하들만을 데리고 리존(오늘날의 몬테네그로 리산)의 요새로 달아났고, 기원전 228년의 초봄에 결국 로마에 사절을 보내 화평 조약을 체결했다. 일리리아 왕국은 코르퀴라, 아폴로니아, 에피담노스, 파로스, 이사, 파르티니, 아틴타니를 포기하며, 로마에 배상금을 물어야 하고, 2척 이상의 갤리선을 가지고 리소스 남쪽으로 항해할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이리하여 패전의 결과 일리리아 왕국은 항해를 제한당하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같은 해안의 그리스계 도시들로부터 차단되는 한편 에페이로스로 통하는 육로상에 위치한 부족들을 잃어버려, 앞으로의 팽창 전쟁은 물론 해적 사업도 금지당한 셈이 되었다.

 

 

로마 민회의 공식적인 전쟁 선포를 기원전 230년 가을 쯤으로 볼 때, 화의가 체결된것이 기원전 228년의 봄이므로 전쟁은 약 1년 반동안 진행된 셈이지만, 대부분의 전투는 기원전 229년의 여름과 가을에 걸쳐 일어났음이 분명하다. 그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로마의 전략은 대단히 신속하고 적절한 것이었다.[§Hammond] 일리리아 왕국은 당시 마케도니아 왕국과 동맹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에페이로스와 아카르나니아 역시 강제적으로 자신들의 편에 가담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군이 코르퀴라부터 시작해서 북쪽으로 치고 올라왔기 때문에 이 세 동맹국과의 연결이 모조리 끊어지고 말았다.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최소한 마케도니아는 어떻게든 응원군을 보내려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테우타가 얼마 더 버티지 못하고 항복해 버리는 바람에 실현될 수 없었다.

 

별로 길지 않은 전쟁 기간이었지만 일리리아 왕국은 특기할만한 저항을 별로 보여주지 못한채 계속해서 물러나, 거의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했다는 인상을 준다. 누트리아라는 도시에서 많은 로마 병사는 물론 천부장에 재무관까지 전사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으로 어느 정도 피해인지는 알 수 없다. 기원전 228년 6월 21일에, 그나이우스 풀비우스는 해전 승리의 공적으로 개선식을 거행했다. 이것을 보면 바다에서도 무슨 싸움이 일어나기는 했던것 같지만, 역시 상세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패전의 결과 축소된 일리리아 왕국

 

 

 

*Zonar.8.19: 테우타의 남편 아그론을 '아르디아오이족과 일리리아인들의 왕"이라고 부름. 관련 논의는 F. W. Walbank, 『A historical commentary on Polybius』(1970) p153-154 참조.

 

**폴리비오스는 아그론 왕이 기원전 231년에 거둔 전쟁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에서 너무 즐기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고 썼으며 기원전 230년의 전쟁 시즌에는 이미 테우타가 권력을 승계한 상태였다고 보았다. 그러나 아피아노스는 로마 사절이 도착했을 때도 아직 아그론이 살아있었던 것으로 처리했다. 살해당한 로마 사절은 보통 '코룬카니우스'로 전해지나, Plin.HN.34.24에서는 "P.유니우스"라는 한 사람을 더 지적했다. 그 살인에 대한 일리리아 왕실의 책임은, 아주 조금 미묘하다. 대부분의 저자들이 테우타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돌리는 가운데, 아피아노스는 범행을 누가 사주했는지 모호하게 처리했다. 카시우스 디오는 나중에 테우타가 로마 사절의 죽음을 "강도가 저지른 짓"이라면서 변명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Polyb.2.11.1의 '아울루스'는 오기다.

 

※※Polyb.2.12.3, Appian.Ill.7. 아피아노스는 아폴로니아와 파르티니를 누락시켰으나, Polyb.2.11.8, 11로 보아 이들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 본문의 조건에 더하여, DioCass.fr49.7은 테우타가 섭정직에서 물러났음을 암시한다.

 

§N. G. L. Hammond, 「Illyris, Rome and Macedon in 229-205 B.C.」 JRS58(1968) 

 

§§DioCass.fr49.7에서 언급한 지상전도 마찬가지. 한편 Polyb.2.11.14에서 로마군은 농촌에서 약탈한 물품을 실은 일리리아 배 20척을 나포했다고 전했는데, 이는 필시 Zonar.8.19에서 "펠로폰네소스로부터 재물을 싣고 돌아오던 배들" 이라고 한 대상과 같은 것이나, 정말 그렇게 멀리서 해적질을 하고 돌아오던 중이었는지는 의심스럽다. Walbank, p16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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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코쟁이25 | 작성시간 13.11.05 동방의 제국들이 속방들 닥닥 긁어 겨우 내놓는 10만 대군을 소국 하나 패는데 동원하는 반도의 위엄
  • 답댓글 작성자프리드리히대공 | 작성시간 13.11.06 ㄷㄷㄷ 한니발은 이런 물량 쩌는 나라와 맞짱을 떴으니...;;
  • 작성자creios | 작성시간 13.11.06 정말 엄청난 물량이네요. 거기다 군대의 질도 높으니, 이런 로마 공화국하고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 지난 번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것 만으로 엄청난 인적 자원을 손에 넣은 것"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 작성자명일 | 작성시간 13.11.06 알바니아 패는데 10만을 동원해? 스켄더벡이 있는거도 아니고
  • 작성자바실리우스 2세 | 작성시간 13.11.14 역시 로마 공화국의 물량이란...프로토스 + 저그 가 따로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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