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 13세기 후반 비잔티움 황궁 경비대
초기 팔라이올로구스 시기의 비잔티움 부대는 이전 세기의 잃어버린 장엄함의 일부를 회복해오고 있었던 것 같다.
장비는 기본적으로는 동시대 유럽 기사와 같지만 이들의 무구는 동부의 영향력도 나타낸다. 그는 샤펠드페(Chapel-De-Fer)를 썼으며, 두터운 누비를 댄 갬비슨 위에는 넓은 메일을 겹쳐 입었다.
방패는 이탈리아와 십자군 국가에서 보이는 것과 비슷하지만, 별개의 메일 벙어리장갑은 이탈리아에서 받아들인 것이긴 해도, 날 굽은 사브르는 확실히 투르크형이다.
(출처: 우크라이나 페스흐키-Peshki-에서 나온 1,100~1,250년 투구 , 13세기 비잔티움의 성시집, 유고슬라비아의 클리멘타 교회의 1,295년 경 비잔티움 벽화, 불가리아의 소피아에 있는 보야나 교회에서 나온 1,259년 경 불가리아 벽화, 1,275 ~1,290년 아크레의 병기고 성경)
B2: 비잔티움의 13세기 후반 궁사인‘무르타티’
팔라이올로구스조 군대에서 궁사의 중요성은 문헌 자료로 확인되지만, 예술 자료에서 사실적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수많은 전사가, 서유럽에서 나타는 코트 오브 플레이트와 비견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몸체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비잔티움의 삽화에서 더욱 흔해지고 있었던 일체로 된 챙이 달린 높은 투구를 이 갑옷에 추가로 착용했고, 그의 궁시 장비는 당연히 이웃 투르크와 몽골의 그것을 반영한다.
(출처: 12~13기 우크라이나 키따예브에서 나온 러멜러 혹은 스케일 동체 갑옷, 세르비아의 라스 성에서 나온 12~13세기 화살촉, 14세기 초반 비잔티움 책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역사에 실린 삽화, 유고슬라비아의 소포자니 수도원에 있는 1,265년경 비잔티움의 벽화)
B3: 13세기 중반 세르비아 중보병
세르비아를 비롯한 서발칸 지역은 이미 13세기에 동발칸과 달라지고 있었다. 동부 지역이 점점 강해지는 투르크와 몽골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반면, 세르비아는 많은 용병이 모집되었던 이탈리아 및 남독일에 더욱 가까웠다.
그가 전형적인 발칸의 둥근 장식 철퇴를 소지했고 메일 호버크 위에 소매 없는 메일 저킨을 입었음은 부정의 여지가 없다. 그의 두터운 누비 코이프는 이전부터 있었던,아마 발칸 전쟁에서 궁시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나타내는 듯하는, 발칸 지역의 목 부분을 보호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출처: 부다페스트 국립 박물관의 13세기 투구, 비스쿠피자와 라스 성에서 나온 철퇴 및 청동퇴, 유고슬라비아 밀레세보 수도원의 1,230~1,237년의 세르비아 벽화, 소피아의 보야나 교회에 있는 1,259년 경의 불가리아 벽화, 아테네에 있는 13세기 성 게오르기우스의 성화)
B4: 13세기 후반 프랑크령 그리스의 기사
그리스의 십자군 국가들의 무구는 비잔티움의 영향이 상당히 보이며 이는 그가 입은 굳힌 가죽 정강이받이에서 특히 분명해진다. 그의 문장-Coat of Arms-은 가문이 시리아의 십자군 국가에서 유래했음도 나타낸다.
(라틴 제국 황제들의 인장, 13세기 후반 키프로스의 파마구스타에 있는, 아야 소피아의 루시그난 가문의 묘소 석판, 키프로스에 있는 1,300년 경 성 니콜라스의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