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기원전 207년 메타우루스 전투
갈리아 트란살피나를 지나며 세력을 불린 하스드루발의 군대는 기원전 207년 봄에 알프스를 넘었다. 대략 여름의 초입에 그들은 아게르 갈리쿠스로 들어와 세나 근교에서 한동안 로마군과 대치했으나, 그 자리에서 벗어나 이동하던 중 메타우루스 강가에서 적에게 따라잡혀 일전을 벌인 끝에 궤멸되고 말았다.(*)
현전하는 폴리비오스의 글 가운데는 이 전투에서 양측의 군세를 적시한 부분이 없으나, 전사자 정보는 남아 있다. 즉, 카르타고군에서 10,000명 가량이 사망했고 로마군 전사자는 2,000명이었다는 것이다. 포로는 뚜렷이 노예로 판매되었는데, 그 결과 300탈렌트 이상이 로마 국고에 납입되었다고 한다.(**Polyb.11.3.2-3)
후대 저자들은 상당히 다른 수치 자료를 제시했다. 리비우스는 카르타고군 전사자를 56,000명,(cf>Oros.4.18.14: 58,000명) 포로를 5,400명으로 두었고 로마군 사망자는 8,000명이었다고 썼다.(Liv.27.49.6-8) 전체 병력 정보는 없다. 아피아노스는 이탈리아 반도로 들어온 하스드루발의 군대가 보병 48,000명에 기병 8,000명, 코끼리 15마리였으며 전투 결과 죽음을 당한 자와 포로로 잡힌 자의 수가 칸나이에서 로마군의 경우(아피아노스의 글 속에서는 50,000명과 "다수". Appian:Hann.25)와 대강 비슷했다고 주장했다.(Appian:Hann.52-53)
위의 데이터 가운데 후대 저자들의 기록은 다음처럼 전황에 비추어 볼 때 대체로 신빙성이 낮다.
세나의 대치부터 메타우루스 강변의 전투에 이르기까지 이 해의 아게르 갈리쿠스 전역에 참가한 로마군은 크게 집정관 M.리비우스 살리나토르의 군대(군단 2개)와 법무관 L.포르키우스 리키누스의 갈리아 방면군(군단 2개), 집정관 C.클라우디우스가 데려온 증원 부대로 구성되어 있었다.(Liv.27.36.12,46.1) 셋 가운데 살리나토르의 집정관군은 이 전역의 주력으로, 배정받은 전력은 25,000명 상당이었을 것이다. 포르키우스는 봄에 원로원에 보낸 보고에서 자신의 군대가 "약하다(invalidus)"고 표현했다.(Liv.27.39.2) 갈리아 방면에서는 기원전 215년 봄 이래 주요 전투가 벌어진 단서가 없다. 아마도 그곳의 군대는 현상 유지만을 위한 주둔 부대로, 병력은 5,000-15,000명으로 잡으면 될 것 같다.(5,000명 주둔의 사례는 Liv.31.8.7[갈리아]. c.15,000명 주둔의 사례는 Liv.23.31.4[시칠리아].) 네로의 증원은 출발 시점의 7,000명(Liv.27.43.10)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 군대를 합친 세력은 37,000-47,000명이 된다.(※cf>De Sanctis iii-2 p571-572)
한편 하스드루발은 세나에서 살리나토르와 포르키우스의 군대를 상대로는 반 마일(~750m) 거리에서 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적군의 증원을 확인하고는 물러나기 시작했다.(Liv.27.46.4,47.1,8) 네로는 한니발의 본대를 마주한 위험한 상황에서 정예 병사를 증원군으로 분리시켰고, 원로원에 자신의 계획을 알리며 나르니아로 병력을 보내도록 함께 권고했다.(Liv.27.43.8,10) 이같은 정황은 하스드루발이 살리나토르, 포르키우스의 연합군과 비슷한 병력을 보유했고, 네로는 자신의 부대가 가세하면 로마군이 결정적인 우세를 점하여 빠르게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보았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따라서 아피아노스의 56,000명이나, 리비우스가 제시한 전과에서 전제된 더욱 큰 값은 카르타고군의 병력 규모로 인정하기 어렵다.(cf>Kromayer iii-1 p493, De Sanctis iii-2 p572)
메타우루스 강변의 전투 상황에서 카르타고군은 좌익의 켈트인 부대, 중앙의 리구리아인 부대, 우익의 스페인 부대로 나누어져 있었다.(Liv.27.48.5-7. cf>Polyb.11.1.2-10) 여기에서 스페인 부대는 필시 하스드루발과 함께 스페인에서 온 사람들을 가리킨다. Liv.27.39.2에서 포르키우스는 리구리아로 군대를 보내지 않으면 8,000명의 무장한 리구리아인이 하스드루발과 합류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 해 로마군의 리구리아 침공은 확인되지 않으므로, 이 8,000명이 바로 메타우루스에서 출현한 카르타고군 중앙의 출처였다고 생각하면 타당할 것이다. 규모에 있어서도 어색한 점이나 모순되는 정황은 없어 보인다. 카르타고군 중앙과 우익은 로마군 좌익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결국 측면과 배후를 함께 공격당했고, 폴리비오스에 의하면, "대부분"이 쓰러졌다.(Liv.27.48.10-14, Polyb.11.1.4,7-11)
카르타고군 좌익은 언덕 위에 배치된 채 전투에 거의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cf>Liv.27.48.12, Polyb.11.1.5) 리비우스에 의하면 중앙과 우익이 무너진 후 이들 역시 공격을 받아 이렇다할 저항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당하거나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폴리비오스는 켈트인이 "많이" 죽었다고 썼다.(※※Liv.27.48.17. cf>Polyb.11.3.1-2)
이제 카르타고측 사망자 10,000이 거의 전부 중앙+우익에서 나왔고 "대부분"은 아슬아슬한 절반을 의미한다고 가정한다면, 중앙+우익은 약 20,000명이었던 것이 된다. 이것은 극단적인 경우에 대한 계산값이지만, 카르타고군 기병의 다수는 배후에 위치하여 "중앙"이나 "우익"에 들어가지 않았을 가능성(그러나, 로마군의 경우 cf>Liv.27.48.10)을 고려하여 상한으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한다. 하한 설정은 더 까다롭다. 폴리비오스의 글에는 리구리아 병사들에 대한 언급이 없고, 리비우스가 설명한 중앙+우익을 합쳐서 한 덩어리처럼 다룬 것이 보인다.(cf>Polyb.11.1.2-3,7) 그 까닭이 중앙+우익에서 우익이 다수 성분이었기 때문이라면 16,000명 정도에서 선을 그을 수 있다. 그러나 리구리아계 성분의 누락은 단순히 폴리비오스의 오류였을 수도 있으므로, 이 값의 근거는 앞의 다른 것들보다도 약하다. 켈트 병사의 수 역시 짐작이 어렵지만 전군의 1/3-1/2 범위를 크게 넘지 않는 규모였을 것이다. 이상에서 유도되는 카르타고군의 병력은 24,000-40,000명이다.(§cf>De Sanctis iii-2 p572, Kromayer iii-1 p492-493, Lazenby p190) 확실하다고 말할 만한 결과는 전혀 아니나, 전반적으로 아게르 갈리쿠스 전역의 진행 과정과 부합하므로 최소한의 검증은 통과한다고 할 수 있겠다.
*기원전 207년 아게르 갈리쿠스 전역의 해설과 사료상의 의문점 정리는 Lazenby p182-188 (cf>Walbank ii p267-270). 하스드루발 바르카의 장렬한 최후에 부친 폴리비오스의 조사는 Polyb.11.2. 오비디우스 파스티와 하스드루발 자살설에 얽힌 문제는 De Sanctis iii-2 p574-575, Walbank ii p270-271.
**폴리비오스는 "카르타고인과 켈트인 사망자"가 10,000명이라고 기술했다. 메타우루스 전투 부분에서 폴리비오스는 카르타고군 중앙+우익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카르타고인"(Polyb.11.1.7)과 "스페인인"(Polyb.11.1.9-10), "스페인인과 카르타고인"(Polyb.11.1.8)을 다소 무분별하게 혼용했다. 전투 결과에서 언급한 "카르타고인"도 이러한 용법이라고 생각된다. 전체 사망자 가운데서 카르타고 출신들만을 골라내어 켈트인과 합쳐 통계를 낸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헬레니즘기의 인신 거래 사례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가격은 Gabrielsen p393. Kromayer는 기원전 194년 아카이아 연방의 로마인 노예 해방시 쓰인 1인당 500드라크마이(cf>Liv.34.50.10)를 시세로 보고, 메타우루스에서 잡힌 포로들은 그보다 상당히 낮은 가격에 팔렸다는 가정 하에 300(+)탈렌트는 약 10,000명, 혹은 그 이상의 매매 대금에 해당하리라고 추측했다. cf>Kromayer iii-1 p492. 이것은 그럴듯한 계산이다. 그러나 다른 수치, 예컨대 리비우스-오로시우스의 5,400명(~인당 330드라크마이[+])에 비해 더 타당한 점을 찾을 수는 없다.
※De Sanctis는 살리나토르의 집정관군을 20,000-25,000명, 포르키우스의 병력을 10,000-12,000명으로 놓았다. 문맥상 포르키우스 리키누스가 언급한 "약함"은 리구리아인 부대의 합류를 저지하기에 힘이 부친다는 의미이다. 기원전 207년 로마군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논의는 http://shaw.egloos.com/3861407
※※폴리비오스는 카르타고군 좌익의 파멸을 특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폴리비오스는 로마군이 승리 이후 카르타고군 진지를 공격했다고 썼고, 리비우스는 전투 시작 전 하스드루발이 강가의 언덕에 진지를 구축하려 했다고 언급했다.(Polyb.11.3.1/Liv.27.48.2) 또한 폴리비오스가 진지에서 일어난 일로 기술한, 잠을 자다가 죽임을 당한 켈트 병사들 이야기를 리비우스는 좌익의 파멸에 붙여 소개했다.(Polyb.11.3.1/Liv.27.48.15-16) 뉘앙스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적으로 같은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De Sanctis는 30,000-35,000명. Kromayer는 30,000명. Lazenby는 20,000-30,000명.
J. F. Lazenby, 『Hannibal's War』(1978).
J. Kromayer and G. Veith, 『Antike Schlachtfelder』iii-1 (1912).
V. Gabrielsen, 「Piracy and the slave-trade」, 『A companion to the Hellenistic world』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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