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이자 가장 유명한 파라오 중 한명으로 꼽을 수 있는 인물
클레오파트라 7세
그러한 그녀의 엄청난 명성에 비하여
그녀의 언니 파라오인 베레니케 4세의 삶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번 글에서는 바로 그녀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해
* 그녀와 클레오파트라 7세는 동복자매가 아닌 이복자매 사이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앞서
베레니케 4세의 아버지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풀자면
그는 '아울레테스'
즉 '피리부는 사람'으로 불리던 군주로서
정통성이 부족했던 파라오인데가
선대로부터 축적된 모순들과
강대한 로마의 거세지는 압력들 속에도
혼자 태평한 세월을 보냈던 인물로
'아울레테스'는 그것에 대한 야유의 호칭이었지
무거운 세금을 물려(물론 이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서 이 파라오만 하던 짓은 아니었지만...)
백성들의 신망을 잃었던
그는
남동생이 다스리고 있던 키프로스가
로마에 합병되는 것 또한 방치했는데
결국 참참못한 알렉산드리아 민중들에 의하여
쫓겨나 로마로 망명하는 신세가 됨
그리고 그의 맏딸
베레니케 4세가 19세의 나이로 즉위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단독으로 이집트를 다스렸던 것은 아니고
어머니인 클레오파트라 5세와 공동 통치를 행하였어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딸과 권력을 오래 공유하지 못하고
공동 통치자가 된 지 1년 만에 사망하였지(베레니케 4세에 의한 독살설도 존재)
하지만 그것이 베레니케 4세가 이집트의 단독 통치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중신들은
그녀가 결혼을 하여 남성 공동 통치자를 맞이하기를 원하였고
베레니케 4세는 그들의 강요에 의해
셀레우코스 가문의 셀레우코스 7세와 혼인하게 되었지만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던
베레니케 4세는 결혼한 지 일주일만에 새신랑을 살해하였지
그리고 그렇게 셀레우코스 7세를 살해한
베레니케 4세는
자신이 직접 선택하지 않은 배우자와 어떤 경우에도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포하였는데
그녀가 독신주의를 고집할 경우
후계자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는 여론으로 인해
결국 그녀는 폰투스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 때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아르켈라오스를 그녀의 남편으로 맞이함
* 하지만 아르켈라오스는 그녀의 남편이었을 뿐 공동 통치자가 되지 못했으므로 베레니케 4세의 목적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지
* 아르켈라오스는 폰투스의 왕자를 자처했지만, 그것에 대한 근거는 부족한 편으로 스트라보에 의하면 그는 폰투스로 망명한 로마인의 아들이었어
그렇다면 그녀의 통치는 어떠하였을까?
베레니케 4세는 권력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잔인해질 수 있던 인물로
파라오의 자리를 독점하기 위해 피를 흘리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녀의 큰 약점은
바로 지나친 사치스러움에 있었는데
베레니케 4세는
패션과 연회, 보석에 엄청난 관심을 기울였고
그녀의 사치로 인한 비용이
민생을 힘들게 하였다고 해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통치자들은 전반적으로 피지배층과 유리되어 있었는데, 베레니케 4세와 관련된 기록에도 그녀가 하층민들에 대해 굉장히 경멸적 시각을 가졌다는 기록이 존재함
* 하지만 그녀의 외모에 대해서는 '사랑스러웠다는' 기록이 존재
베레니케 4세의 파라오 지위는
공동 통치자로서 1년, 단독 통치자로서 2년 만에 끝나는데
바로 쫓겨났던 그녀의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에 의해서로
로마로 쫓겨간
그 피리부는 사나이는
자신의 권력을 되찾기 위한 일에는 부지런하여
뇌물과 술수를 동원해
자신의 복위를 위한 음모를 꾸몄는데
그의 실정을 보고하기 위해 온
이집트 사신단을 살해함은 물론 자신을 의심하던 몇몇 로마인까지 살해하는 모험을 할 정도로
복위에 대한 열망이 강하였어
그리고 그는 결국
로마가 셀레우코스 왕조를 멸망시키고 설치한 시리아 속주의 총독 아울루스 가비니우스의 지지를 얻어
그로부터 세 연대를 빌려
딸과 권좌를 둔 승부를 벌였는데
고도로 훈련된 로마 군대에 직면한 베레니케 4세는
남편 아르켈라오스를 출정시켜
그들을 막게 하였지만
역부족이었고
패배한 딸은 아버지의 명령으로 처형당하여
22세의 나이로 그 생을 마쳐야 했지
* 그녀의 남편 아르켈라오스는 전사
* 일설에 의하면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클레오파트라 7세를 포함한 그의 자녀들에게 처형당한 베레니케 4세의 목을 그릇에 담아 보여주었다고 해 ㄷㄷㄷ
* 이상으로 클레오파트라 7세의 언니 파라오 베레니케 4세의 짧은 삶에 대한 소개를 마칩니다.
*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아무것도 모르오 작성시간 21.11.10 잘봣습니다...이놈의 작자들의 분수를 넘는 사치는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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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스아스터 작성시간 21.11.10 클레오파르타7세는 당시 이집트 왕가에서 최고인 여왕이었죠. 가장 좋은 패여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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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heidegger 작성시간 21.11.10 끔찍하네요 고대 이집트에서의 정치권력 투쟁은 잔혹하네요 권력앞에 가족도 중요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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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심빈 작성시간 21.11.10 고대중세인들의 가족관이란게 오늘날 같은 천륜 같은 개념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재산공동체의 인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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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룡기2 작성시간 21.11.12 당시의 골육상쟁도 만만치 않았군요..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