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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이슬람]오스만 제국의 비정규 기병대, 아킨지

작성자워라|작성시간22.01.12|조회수261 목록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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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킨지 또는 아킨지(Akinji, akindji)는 오스만 제국의 비정규 경기병, 정찰 사단(deli) 및 진격군이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오스만 정부로부터 월급을 받지 못했고, 대신 오스만 제국의 국경 지역에서 적국을 상대로 약탈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갔다.  

 

전쟁에서 그들의 주요 역할은 최전선에서 진군하는 부대로 행동하고 게릴라 전술을 사용하여 행군하는 적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혼란과 충격의 상태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아킨지 부대는 기본적으로 화살로 적을 공격하는 궁수들이었다. 그들은 적으로부터 근접 공격을 받으면 뒤로 화살을 쏘면서 후퇴하였다. 그들은 가벼운 무장을 하고 있고 그들의 말은 힘이 아닌 속도를 위해 길러졌기 때문에 재빠른 기동성을 이용하여 싸웠다. 아킨지군은 도검, 창, 방패, 전투도끼 등을 휴대하였고 유사시에는 이를 이용하여 적들과 근접전을 벌였다. 

 

그들의 이동성 때문에 아킨지 부대는 또한 정찰을 위해 사용되었고 오스만 군대의 주력 부대가 진격하기 전에 지역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전위 부대로 사용되었다. 그들은 비정규 민병대였기 때문에 평화조약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평시에는 변두리 마을을 습격하고 적의 수비대, 요새, 국경초소를 공격하며 끊임없이 적을 괴롭히고 상대국 방어의 약점을 견제할 수 있었다. 그들은 또한 적의 보급과 수송을 차단하기 위해 교역로를 공격하였다.

 

아킨지 부대는 주로 최초의 오스만 통치자인 오스만 1세를 따랐던 전사 집단인 가지(ghazi 이슬람교 신앙을 위해 싸우는 전사들로 이슬람교 버전의 십자군)의 후손인 투르크멘 부족 전사들로 구성되었다. 또한 행운과 모험을 찾는 민간인들도 아킨지 부대에 참가하였다.

 

아킨지 부대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빨리 확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킨지 부대는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훌륭하게 작동했지만 16세기 이후에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16-17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의 속국인 크림 칸국의 유목민 타타르족과 노가이족 기병대도 오스만 제국의 아킨지 역할을 했다. 오스만 제국의 유럽 진출이 멈춘 후, 아킨지 전사는 불필요하게 되었고 약탈과 전리품으로 돌아가는 전시 경제가 중단되자 이 아킨지 부대는 서서히 사라졌다. 오스만 제국의 현대화 이후, 공식적으로 인정된 마지막 몇 안 되는 아킨지 씨족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아킨지 제도의 마지막 잔재는 19세기 후반까지 발칸 지방에서 바시보주크(비정규) 전사로 존재했다.

 

유사한 유형의 오스만 기병 군단을 구별하는 용어가 완전히 명확하지는 않지만, 1595년 10월 기우르기우Giurgiu 전투에서 도나우 강으로 후퇴하면서 죽었던 아킨지 부대는 점차 새로운 비정규 군단인 델리(deli)와 바시바 조우크(bashi-bozouk)으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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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2.01.12 오스만 제국이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아킨지 부대를 잘 활용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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