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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중세 봉건주의와 봉건 기사에 대한 미신들

작성자松永久秀|작성시간22.05.14|조회수335 목록 댓글 3

 

'봉건주의feudalism'는 한때 사학계와 대중 사학계 양쪽에서 중세 사회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아니면 적어도 그 중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군사사학자들에게 있어 대략 1000-1300년 사이의 기간인 중세 전성기는 '봉건 기사feudal knight'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오늘날 중세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용어를 마치 역병처럼 멀리한다.

만약 그들이 책이나 강의에서 이 용어를 사용한다면 보통 그것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봉건주의는 '암흑시대', '초야권', 그리고 바이킹의 뿔 달린 투구와 함께 끝없이 늘어선 중세시대에 대한 미신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역사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꽤 최근에 일어난 변화였다.

 

이 변화는 1974년 미국의 사학자 엘리자베스 A. R. 브라운의 논문 "The Tyranny of a Construct: Feudalism and Historians of Medieval Europe"이 미국 역사 협회(AHA) 학술지에 실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20년 후 수잔 레이놀즈의 책 "Fiefs and Vassals"이 출판되면서 실질적으로 완성되었다.

 

이 두 작품은 여러 중세사학자들이 품고 있던 의심을 구체화함으로써 중세사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그러나 다른 많은 미신들과 마찬가지로, '봉건주의'와 '봉건 기사'에 대한 미신들 속에는 일부나마 진실이 포함돼 있다.

 

 

……

 

 

2

 

 

레이놀즈에 따르면, 1970년대 이전 역사학자들이 저지른 실수는 10-11세기의 문서들에 등장하는 '봉토feudum'나 '은대지beneficium' 같은 단어들을 12세기 중반 이후에나 등장하는 토지법의 전문 용어들과 동일한 것으로 잘못 가정한 것이었다.

 

그녀는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사료를 독해함으로써 기록자가 그런 어휘들로 표현하고자 한 의도를 알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레이놀즈는 10-11세기 헌장들의 '봉토'와 '은대지'가 봉건적 봉사의 대가로 보유된 토지뿐 아니라 자유롭게 소유된 토지를 지칭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히려, 11세기에는 자유롭게 상속 가능한 사유지가 종속적 토지 보유권보다 더 중요했고, 수평적 계약이 역사학자들이 이전까지 강조해온 주군과 신하의 수직적 계약(즉 봉건주의)보다 더 중요했다.

 

따라서 레이놀즈는 11세기에도 공동체의 응집력과 왕권으로 대표되는 공권력이 유지되었다고 주장한다.

 

레이놀즈는 역사 교과서 속의 봉건주의는 10-11세기의 현실보다는 12세기말 이탈리아 북부의 전문 법학자들이 쓴 법률서나 헨리 스펠만 경과 같은 17세기 영국의 고서수집가들이 만든 분류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12세기말 롬바르디아 법률서 Libri Feudorum에서 '봉토feudum'는 봉신이 주군에게 의무적으로 행하는 봉사의 대가로 보유한 종속적 토지보유권을 의미하는 전문 용어로 정의되었다.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는 이를 통해 왕국의 모든 토지는 왕으로부터 봉신에게 분봉되거나 재분봉된 봉토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동시대의 프랑스 왕 루이 7세(재위 1137-80)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재위 1159-90)와 달리, 헨리는 자신의 선조들이 정복한 왕국을 통치한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잉글랜드는 정복왕 윌리엄이 노르만인 부하들에게 토지의 대부분을 재분배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더 '봉건적'이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헨리와 그의 후계자들이 법적인 이론을 정치적 현실로 바꿀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봉건 피라미드는 10-11세기 동안 자연스럽게 발전된 것이 아니라 12세기 후반에 왕권의 강요에 의해 잉글랜드에서(그리고 이후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구체화되었다.

 

현실의 봉건주의는 중심 권위의 붕괴의 결과라기보다는 중심 권위의 강화를 위한 도구에 더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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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알고있던 얘기가 너무많이 바뀌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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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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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2.05.14 현실의 봉건주의는 중심 권위의 강화를 위한 도구에 가깝군요
  • 작성자척소드맛스타 | 작성시간 22.05.14 여태 배워왔던건 분권형식에서 점차적으로 중심으로 권력이 옮겨왔다고 배웠던거 같은데
  • 작성자프리드리히대공 | 작성시간 22.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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