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서양사

파르티잔 대장 트리피츤 (13) 아나스타시요프카 마을 회의 (Анастасьевская конференция)

작성자신룡기2|작성시간22.05.26|조회수63 목록 댓글 2

아나스타시요프카 마을 회의 (Анастасьевская конференция)

 

아나스타시요프카 마을은 오늘날 극동의 대도회 하바로프스크(Хабаровск)와 북동쪽에 위치한 캄소몰스크-나-아무레(Комсомольск-на-Амуре)사이의 고속도로를 따라 위치하고 있으며 하바로프스크에서 약 40km 떨어져 있습니다.

오늘날,

아나스타시요프카 마을의 어떤 것도 1919년 11월 2일에 아무르 지역에서 백군에 대한 볼셰비키 군대의 승리를 궁극적으로 결정짓는 회의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지 않습니다.

 

역사 문헌에서는 이 회의를 "파르티잔 파견부대, 혁명적 농민 및 지하조직 대표의 제2차 연합 회의(Вторая объединенная конференция представителей партизанских отрядов, революционного крестьянства и подпольных организаций)"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회의에서 이루어진 결정들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언급하지 않고,

역사 문헌에 제공된 내용만 언급합니다.

 

그것은 소비에트 혁명 승리를 위한 파르티잔 운동의 새로운 단계였으며, 정치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매우 중요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파르티잔 파견대, 혁명적 농민 및 지하 조직 대표의 공동 회의"라고 부르는 것에만 주로 주목하여 언급할 것입니다.

 

이 회의의 참가자이자 훗날 극동공화국 농업부 장관이 된 비소노프(И.С. Бессонов)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비소노프

 

“아나스타시에프 회의는 순전히 파르티잔들의 모임이었습니다.

농민들의 특별한 대표자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 아무르 지역에는 그러한 농민 조직이 없었기 때문에 대표자와 도시 지하조직이 없었습니다.

하바로프스크 지하 조직의 일원인 레비제바는 조직이 파괴될 때 가까스로 탈출했기 때문에 참석할 수 있었다.

회의에서 선출된 혁명 사령부는 순전히 파르티잔들이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처음으로 "아무르 하류지역 비극"의 두 주인공인 트리피츤(Яков Иванович Тряпицын)과 레비제바(Нина Михайловна Лебедева)가 만났습니다.

 

레비제바 Нина Михайловна Лебедева

트리피츤

트리피츤은 크루브리코바(Кругликово) 기차역 근처에 기반을 둔 소규모 파르티잔 부대의 사령관으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니나 레비제바는 누구를 대표하지 않았지만 파괴된 하바로프스크 지하조직의 일원으로 알려졌습니다.

 

역사 문헌들에서 그들의 인생 정보는 매우 모순적입니다.

나(작가 스말야크)는 그들의 삶의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수년을 보냈고, 내가 제시하는 전기가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http://debri-dv.com/m/article/16219/nizhneamurskaya_golgofa_variant_biografii

 

야코프 이바노비치 트리피츤(Яков Иванович Тряпицын, 1897~1920)

한국에 "뜨랴피친, 트랴피친, 트리아피친" 등의 일본식 발음으로 알려지기도 한 '트리피츤'은

 

1897년 4월 모스크바 근처에 위치한 블라디미르 주(州, 아브라스트, област) 무롬(Муром) 지역 시바스쪠이카(Севостейка) 마을의 부유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트리피츤이 태어난 블라디미르 주의 위치

그는 4년제 농촌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낮은 학력이 결코 아니었다.

1915년까지 그는 농업에 종사했다.

같은 해에 그는 마르도르프쉬크(Мордовщик) 조선소에서 내부 운송을 위한 기관차 공장의 기계 보조원으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중인 1916년에 그는 군입대를 자원했다.

그는 피쪠르부르크(Петербурге)에 있는 케크스골음(Кексгольмского полка) 연대의 례이프-그바르지이(лейб-гвардии)에서 복무했다.

트리피츤은 제 1차 세계대전의 전투에 참여하였고,

개인적인 용감함으로 기오르기예프 훈장(Георгиевским крестом)을 받았다.

 

혁명이 발생하자, 트리피츤은 연대의 일원으로 겨울 궁전(Зимнего дворца) 공격에 참여했다.

 

1918년 봄, 트리피츤은 군대를 전역 후, 여동생이 살고 있는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수송업에서 일했다.

 

그리고, 일본군이 침략해 오자, 트리피츤은 무기가 들어 있는 일본군 마차를 노획하는 데 참여한 후, 수찬지방에서 볼셰비키 파르티잔에 합류하였다.

 

연해주의 파르티잔 간부 세르게이 라조(С. Лазо)와 갈등이 생겼고, 트리피츤은 갈등으로 인해 그라졔코바(Гродеково) 근처에 있는 파르티잔 부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연해주의 파르티잔 세르게이 라조(С. Лазо)

 

한 전투에서 파르티잔들은 일본군에게 패배하였고,

트리피츤은 1919년 7월 몇 명의 파르티잔들과 하바로프스크로 떠났다.

 

그는 카르포프스카야(Корфовская) 기차역 일대에서 소수의 파르티잔 부대를 지휘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2.05.26 트리피츤 일대기가 흥미롭네요
  • 답댓글 작성자신룡기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5.27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