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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일제 시베리아 침략사 3. 일제가 주장하는 2차례의 '니항사건'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작성자신룡기2|작성시간22.10.06|조회수169 목록 댓글 6

본 자료는 이러한 의견도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도 다를 수 있습니다.

시베리아 침략사는 북사할린섬 알렉산드라프스크 항구 무혈 함락을 기준으로 대략 종료토록 하겠습니다

 

참고자료:

(1) 대일본제국 참모본부 편(参謀本部 編), 『시베리아 출병사(西伯利出兵史 : 大正七年乃至十一年)』, (大正13年印刷の複製 限定版) 新時代社, 1972

(2) (일본육군장령 출신)菅原佐賀衛, 『시베리아출병요사(西伯利出兵要史)』, 偕行社, 1925

(3) シベリアお菊 <出上キク-日本軍の諜報活動への協力者>

(4) (니항일본인회 회장 시마다) 島田元太郎, 니항사변 회고록(尼港在住の実業家で日本軍への協力者)

(5) 石井真清 <諜報に従事した陸軍将校>

(6) (시베리아 침략을 추진한 일본의 거물) 田中義一 <当時参謀本部次長として出兵推進の中心人物>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7) セミヨノフ <日本軍が支援したコサック軍の頭目>

(8) 長山直厚 <反戦活動を行った社会主義中尉>

(9) 佐藤三千夫 <パルチザンに加わった日本人>

(10) 新保清 <赤軍に協力させられ、のち粛清された日本人>

(11) (니항사건에서 사망한 이시다 영사) 石田虎松 <尼港事件のときの尼港副領事>관련 기사

 

일제가 주장하는 2차례의 니항사건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某기념관 공식도서, 00백과, 위키백과, 나무위키 등이 복사해서 똑같이 주장을 하는 제1차 니항사건, 제2차 니항사건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며

왜 니항사건 다루는 학자중 2000년 이전에는 제대로 논의된 적조차 없었는가?

 

니항사건에 직접 참가한 부진-비치, 아우셈(О. Ауссем), 프라예르만(Фраерман Р.И.), 프치츤(Птицын С.), 그리고 관련 기록을 남긴 주코프스키-주크(Жуковский-Жук), 스말야크(Смоляк В.Г.), 박바리스, 김타치아나, 파포프, 파르슨, 리인섭 등은 러시아 민간인 학살극을 숨기기 위해 모두 조작을 했는가?

1920년 니항사건 무렵의 니항 지도

오늘날 니항 주민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트리피츤 부대에게 학살당했는데도 일본군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조작한 것인가 ?

 

독립운동가들의 대규모 민간인 학살극을 숨겼는가?

 

 

2000년 이전,

인정조차 된 적 없었던 ‘2차례의 니항사건’이라는 것을 알아보면,

1920년 당시 러시아, 미국, 중국, 한국 신문보도(조선총독부 기관지에는 2차례의 니항사건이 등장한다)나 독립운동가 기록에서 전혀 등장도 하지 않았으나 (※주로 니항사건에 관해서는 일본군이 기습했다가 전멸했고 독립군의 승리라고 보도되고 알려졌었다.)

 

일제시대에 대일본제국 참모본부가 편찬한(参謀本部 編), 『시베리아 출병사(西伯利出兵史 : 大正七年乃至十一年)과 일군 장성(菅原佐賀衛)출신이 작성한 『시베리아출병요사(西伯利出兵要史)』 내용을 복사하여,

소설가 박경리, 독립유공자 이지택, 최호림, 김낙현, 김창순 등에 의해 주창되기 시작하여 각종 백과사전에까지 기록되게 된 것이다.

 

일군(皇軍) 참모본부 작성 책자, 일군 장성(菅原佐賀衛)이 쓴 책자, 구트만(ГУТМАН А. Я.)의 책과 90% 이상 동일하고, 심지어 오탈자와 틀린 날짜까지 동일하게 복사한 것으로 보인다.

 

니항사건을 남한에서 꾸준히 언급한 사람은 독립유공자 이지택 정도며, 그의 주장은 일본에서 가끔 인용한다.

이지택의 주장 중에 맞는 것도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베낀 소설에 불과하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필자도 가끔 일본의 하라 테루유키(原暉之)나 존 J 스테판(John j stephan)이 인용하는

A.Y.구타만(혹은 ‘구트만’, ГУТМАН А. Я.)과 이오키 료조(五百木良三), 그리고 회고록을 남긴 시마다(島田元太郎, Симада(Мототаро) Петр Николаевич), 수만~수십만명의 학살을 주장하는 테플랴코프 등의 주장을 가끔 살펴보는데,

러시아 내전에 간섭한 일군 장성. 고지마 소지로(児島惣次郎)

 

그들의 주장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주로 여기저기 지원을 받아, 짜깁기후 복사 붙여넣기 해, 제목만 바꿔 줄기차게 출판되는 것으로, 한눈에도 그들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시나리오가 나타난다.)

 

 

파르티잔 운동에 따른 급격한 아무르, 시베리아, 연해주, 사할린, 캄차트카의 해방과 일제 침략군과 앞잡이들의 패퇴

일제의 주장에 따르면, 1920년 전반, 파르티잔 세력이 연해주 각지까지 급속히 장악해 가고, 일제를 제외한 다른 간섭국들이 모두 철군한 상태에서 일본이 주장하는 2차례의 니항사건이 발생했다.

 

 

근래 일본의 「하라 테루유키(原暉之)」가 주장하는 2차례의 니항사건(니콜라옙스크 사건, 니콜라예프스크 사건)

니항의 일본군 수비대가 파르티잔 군에 야습을 걸어 실패한 제1차 니항 사건(1920년 3월 12일경)과,

그 때 살아 남은 일본인 대부분이 파르티잔에 의해 살해되어 버린

제2차 니항사건(1920년 5월)이라는 두 개의 니항 사건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일본에서도 「하라테루 유키(原暉之)」의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검색하면 헛소리라는 것쯤은 일본에서도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이다. 다만 남한에서 주요 증거로 인용을 하니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니항 일본군 수비대장 이시카와 소좌는 일본에 불리해져가는 러시아내전을 뒤집기 위한 상급자의 명령으로 야습을 감행한 것인데, 모든 책임을 이시카와 소좌의 무모한 독단행동으로 뒤집어 씌우는 점도 분명 있다.

 

이 두차례의 니항 사건(Николаевский инцидент, 尼港事件, 廟街事件)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라고 일본이 주장하고 있는지 간단히 살펴본다.

 

 

1920년 3월, 일본군 니항 수비대와 앞잡이들이 야습한 「제1차 니항사건」

00기념관 공식도서 등이 사실이라고 인용하는 하라테루유키(原暉之)의 『시베리아 출병』을 간단히 살펴보자.

니항 일본군 수비대장 이시카와 소좌

 

일본에서 출판되는 「하라테루 유키」 등의 책을 대략 요약해 보면......

(......중략......)

니항의 일본군 수비대는 중립을 지키라는 사단장 훈령에 따르지 않고, 백파 군대와 함께 파르티잔 군과의 전투를 계속하였다.

 

아무르강은 11월 중순부터 다음해 5월 초쯤까지는 항행이 불가능하며, 그 사이 니콜라예프스크(니항)와의 연락은 썰매길, 유선 또는 무선 통신만 가능하였다.

 

야코프 트리피츤이 지휘하던 파르티잔 부대는 불과 수십여명이 극동의 도회 하바로프스크 인근에 위치한 아나스타시요프카 마을을 출발하였으나,

 

니항 인근에 도착한 1920년 1월 말쯤에는 투항한 백파군대 등을 포함하여 총 2,000여명의 파르티잔 부대가 되었다.

행진중 일본에 적대적인 시베리아 민족과 중국인, 조선인들도 가담하였다.

(......하라테루유키 주장 하략......)

 

고려인 박일리야의 파르티잔 부대 합류

트리피츤 부대가 접근하자,

니항 도심 인근 좌측에 위치한 마가 마을(파숄록 마가)에서 소학교 교사를 하였던 박일리야가 이끄는 약 200여명 고려인들도 이들에 합류하였다.

1921년경 박일리야 장군이 사할린 특립의용대를 조직하였던 아무르주 마자나바 군의 고쉬지역

일제 시베리아 침략사에 등장하는 마자나바군 고쉬전투 추모비

마가 마을

마가 마을

박일리야 장군이 교사를 하던 마가 마을

공개된 1910년경부터 ~ 1920년대 사할린주의 인구와 1914년 이후 니항 지역 백파군대의 병력수와 보유 소총수량 등을 종합해서 볼 때,

박일리야 휘하 고려인 200여명이 모두 소총이나 구식 단발총으로 무장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1920년 니항사건 혹은 2차대전 종전후 전쟁포로가 되었다가 니항 일대에서 사망한 일본인의 묘표

 

니항 일본군 수비대 대대장 이시카와(石川正雅) 소좌

니항 기습의 주역은 일본군 니항 수비대장이었던 대대장 이시카와(石川正雅) 소좌(소령)였다.

 

일본군은 1월 11일경부터 니항 주변 지역에 출동해 파르티잔 군과 교전한다.

 

(※일제가 주장하는 니항사건의 날짜들은 거의 모두 짜깁기되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

억울하게 죽은 일본인도 분명 있었을텐 데, 짜깁기는 발각되면 결국 모두 조작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다.)

 

1920년 1월 24일경 파르티잔 군(일본의 용어로는 ‘過激派軍’)의 사절이 평화협상을 제의하였다.

일본군 수비대장은 파르티잔 군을 ‘무정부주의 강도단, 비적’ 으로 간주, 제의를 거부했다.

그 사자를 니항에 있던 백파 군대의 탐정국(探偵局)에 인도했다(사자는 결국 처형되었다).

 

이날 오후, 파르티잔의 장교가 일본군 보초선에 와서, 3일간의 휴전과 사자의 방환을 요구했지만, 일본군 장교는 이것을 거부하였다.

 

2월 2일경, 아무르주 주도 블라가베셴스크(일본명 ‘武市’)에 주둔중인 일본군 제14사단장으로부터, 일본군의 러시아내전 중립 방침에 대한 무선 훈령이 있었음에도, 니항 일본군 수비 대장은 전투 계속을 결정한다.

 

2월 6일 밤 쯤에, 일본군은 니항 인근의 츠니르라흐 요새와 해군 무선전신소를 포기하였다.

이로써 니항의 일본군은 서쪽 마가 마을, 동쪽 츠니르라흐 요새로부터 고립된다.

겨울철 얼음길을 치고 아무르강과 타타르 해협을 따라 개설되는 썰매길이 차단된 것이다.

 

1920년 2월 21일경, 파르티잔 군 사령관은 하바로프스크의 일본군 사령관에게, 시베리아에 간섭한 일본군 사령부의 외부에 대한 중립정책을 니항 주둔 일본군도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일본군 사단장은 재차 훈령하였고, 니항 일본군 수비대는 평화 교섭에 동의하였다.

2월 28일, 군사 행동을 정지한다.

 

니항의 백파 군대는 항복하거나 썰매를 활용해 탈출에 나섰으나, 북사할린섬의 알렉산드라프스크나 일제가 장악한 블라디보스토크 일대, 하바로프스크 일본군 주둔지, 사할린섬 남부의 유즈노사할린스크 지역으로 탈출에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1920년 2월 29일 니항을 해방시킨 파르티잔 들. 아무르강 얼음에 갇힌 배가 보인다.

​니항 사건, 니콜라예프스크 사건, 니콜라옙스크 사건, Николаевский инцидент, 일본어: 尼港事件, 중국어 : 廟街事件, Николаевск Инцидент 방송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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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신룡기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0.07 안녕하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아가는 자'님 덕택으로 이 카페에서 강퇴되지 않고 잘 쓰고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인터넷 등에 유사 내용을 수차례 게재하여, 관련 학계에서도 약간의 논란이 있었고
    결국 대부분 강퇴나 폐쇄? 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것입니다...

    작년까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논쟁을 좀 했습니다. ㅎㅎ

    그러나 관련 사건의 참여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근래 러시아측 일부 사이트의 자료가 제가 올린 자료를 베낀? 것도 있습니다...
    러시아 사이트에서 몇몇 논쟁을 좀 했습니다.ㅎㅎ

    올해 관련 사건에 대한 단행본을 자비 출판하려고 했으나, 게으름으로 실패하였고,

    내년 상반기 중에 책자 나오면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ㅎㅎㅎ

    정말 감사합니다.....

  • 작성자더벨라지오 | 작성시간 22.10.07 러시아 역사 해서 관심이 많으신가요
    역사관련 연재물이 요즈음은 예전만큼
    안 올라와서 아쉬움이 많았는데
    방대한 양과 내용이 엄청나군요
    감사히 잘 보도록 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신룡기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0.07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로 만주지역 현대사를 ... 조사했는데...
    쓰는 것은 시베리아를 쓰고 있습니다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2.10.08 일제가 주장하는 니항사건의 날짜들이 짜깁기되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군요
  • 답댓글 작성자신룡기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0.09 그냥 무시하고, 자기들 입맛대로 짜깁기 하는 것이지요. ㅎㅎ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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