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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고대 로마]동로마 제국은 어째서 로마 제국인가? (한국인 일각의 자의적인 로마성 규정 비판)

작성자마법의활|작성시간23.06.10|조회수371 목록 댓글 5

 제가 거의 20년전부터 떠들던 얘긴데, 인제 와서 또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여튼 참 징한 놈들인데요.......

 

 나무위키에 어떤 서로마, 신롬빠가 싸질러 놓았던 글을 큰 맘 먹고 수정한 내용인데, 여기다 전제합니다. 

뭔 테세우스의 배니 뭐니 헛소리하는 내용도 있는데 그 부분은 말미에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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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비잔틴 제국이 엄밀히는 로마 제국이란 사실만 두고 비잔틴 제국만 편파적으로 옹호하거나, 그것 자체로 비잔틴 제국이 위대하다고 보면서 후기 로마 제국이 독자적으로 이룬 성과엔 관심없는 견해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특정 시대의 로마, 혹은 특정 시기까지 로마만 로마 제국이라는 자의적인 생각으로 비잔틴 제국을 로마 제국과 무관하다고 보는 관념이 옳아지는 건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수사학적이고 문학적인 수사를 실제 역사학적 용어와 혼동해서 벌어지는 오류에 불과하다. 이슬람, 슬라브권에서 동로마를 로마라고 불렀던 건 단순히 비잔틴 제국이 로마 제국이란 칭호를 자칭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고대 로마 제국이 축소와 변화, 진화를 반복하면서 이어진 연속선상의 그 나라였기 때문이고, 로마란 호칭 자체에서 뭘 얻을 것 없는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개체였기 때문이기에 큰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례를 들어 동로마는 로마 제국 맞다라고 하는 건 순환 논증이 아니다. 게다가 이런 견해라면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고려도 그저 고려란 국호를 자칭했을 뿐이기에 고구려와는 상관 없는 것인가? 고려의 고구려 계승성 주장은 당대 주변국 인정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인가? 당대 주변국 인정이 이와 상관없다고 여전히 답한다면 그는 이미 학문적으로 별 가치가 없다고 판명난 동북공정식 논리를 반성 없이 복붙하고 있는 것이다.(주1)

 

(주1: 똑같이 고려란 국호를 자칭했는데도, 국력이 꽤 만만찮았는데도, 당과 신라에게서 고구려 계승성을 정면 부정당하여 고(구)려란 명칭은 국호로 거의 쓰지도 못한 발해의 사례가 또 다른 큰 실례로 남아 있다. 명분 주장이 영토나 언어 계승만으로 되는 게 아니며, 당연히 당대 국력만으로도 안 된다.)

애초에 그리스어를 쓰고 말고로 로마성을 따지는 주장이 엉터리임도 다시 돌이켜봐야 한다.

 

동로마에서 쓰던 그리스어는 고대 시절 제국에서도 라틴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일 정도의 위상이 있었고 거기다 이미 라틴 문화 자체도 기원전 3세기부터 헬라화가 진행되고 그 반대급부로 헬라 문화도 라틴 문화의 영향을 받는 등의 로마화가 이루어지면서 문화의 분간이 무의미해지고 있었다. 애시당초 동로마는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정식 국호는 로마 제국이었고 동로마니 비잔티움 제국이니 하는 용어는 제국 멸망후 시대 분간을 위해 만든 용어임을 잊어선 안 된다.

그러니 겨우 11세기부터 희미하게 드러나다가 13세기에 완연해지는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 민족국가화 현상을 두고, '7세기 이후 비잔티움 제국은 예전의 로마가 아니다'라고 인식하는 이유는 전제부터 틀리고 주장의 앞뒤도 맞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일각에서 전제로 삼는 '로마성'이란 것 자체가 허무함을 돌이켜봐야 한다. 상술했듯 연속성을 지적하면 기원전 5세기~기원후 6세기 로마는 모두 고전 로마의 핵심 요소(라틴인, 라틴어, 라틴 문화, 라틴 생활양식)를 공유했다고 하는데,

우선 이런 것들을 당대 고대 로마인들이 핵심 요소라고 정의한 바 없음부터 명심해야 함이 중요하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쳐도, 저것들을 통시적으로 관통할 수 있는 라틴인, 라틴어, 라틴 문화, 라틴적 생활양식이란 게 있는가? 없다.

 

애초에 '라틴인'이란 용어 자체가 로마인과는 뭔가 다른 2등 시민 내지는 의무가 더 많은 사람들이란 용어로 기원전 3세기까지 쓰였고 바로 그런 이유로 동맹시 전쟁이 일어나서 라틴시민권 자체를 로마시민권으로 일원화하며 라틴인 자체를 없애는 걸로 로마 국가의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라틴인'이 있어야 로마 제국이다? 어불성설이다.

 

이번에는 라틴어를 보자. 라틴어는 꾸준히 발전하면서 오히려 그리스어적 요소를 통해 고급화되어 학문 용어로도 쓰일 수 있게 되었고, 다름아닌 동로마 지역 그리스어도 꾸준한 라틴적 요소로 고대 그리스어와는 어휘도 발음도 단어들 뜻도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기원전 5세기~기원후 6세기 로마의 라틴어가 다 똑같았다?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번에는 라틴 생활방식을 보자. '라틴 생활방식'. 그런거 없다. 그런게 있었다면 로마의 생활방식 자체가 이미 꾸준히 긴 과정을 거쳐 선진 '그리스화'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기원전 5세기 공화정 로마와 기원후 2세기 오현제 시절 로마의 생활방식 또한 그야말로 완전히 별천지 수준으로 달라져 있었다.

대표적인 게 가부장권 유명무실화와 정절에 대한 사고방식, 여권신장, 공중목욕탕 문화 등이었다. 공화정 말기 때만 해도 아버지가 자식에 대해 거의 생사여탈권에 준하는 권리가 있었지만, 기원후 2세기 즈음 로마는 그런건 상상도 못할 세상이었고 오히려 부모 말을 듣지 않고 재산을 탕진하는 자녀에 대한 부친들의 하소연이 만연한 시대가 되어 있었다.

 

공화정기 로마 여성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지만 제정 전성기 때 로마 여성은 남성이 하는 건 직업면에선 못하는 게 아무 것도 없었고 자기 이름 내걸고 사업해서 대부호가 되어 바람을 피워도 남편이 모르는 척 해야만 했던 기혼 여성도 있었으며, 공화정 말기 때만 해도 원로원 의원이 아내한테 입맞춤 했다고 원로원 의원 자격까지 박탈당할 지경이었지만 제정 전성기 때 그런건 역사책에서나 나오는 이해못할 일화가 되어 있었다. 그 시기에는 부부의 애정 표현이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시대가 되어 있었고, 정식 부인에게 진정으로 사랑받는 남편들이 여러 자료에서 등장하는 데 이 또한 전반적인 정식 부부 관계 자체가 상당히 차갑기 그지 없었던 공화정 말기 기준으로 봐선 상전벽해의 변화였다. 특히 적어도 제정기에는 노예를 함부로 다루는 행태가 교양 없는 인간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가 된 것 또한 특기할 일인데, 적어도 이는 스파르타쿠스 반란 이전 및 키케로의 여러 저술 활동 이전엔 전혀 없던 개념이었다.

 

이 모든 게 바로 로마의 점진적인 '그리스화' 및 '선진화'로 인해 일어난 일로, 그리스 또한 상당 부분 많은 면에서 로마화되고 있었던 바로 그것(주2)과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는 현상이었다. 그러니 현대 한국인 일각에서 떠올리는 로마성을 규정하는 통시적 라틴적 생활양식, 그런건 없는 것이다.

 

주2: 대표적인 게 여성 나체 묘사. 남성 묘사를 과하게 숭상했던 원래의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런건 로마인들같이 문화가 떨어지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으로 보았다. 어쩔 수 없을 때나 하는 것이지 로마인들처럼 즐겨서 하는 일로는 보지 않았기에 그리스인들은 남성 나체 묘사에만 열을 올렸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의 풍속과 습속 자체가 상당히 로마화되면서 이런 관습은 기억 저편으로 없어지게 된다.

 


또한 공화정기 로마인들이 제정기 로마인들을 봤다면 대경실색할 만한 게 둘이나 더 있었다. 기원전 1세기 ~ 기원후 2세기 로마의 특징 중 하나가 한 해에 휴일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인데, 이 또한 공화정기 로마인들이 봤다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일이었다.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실질강건의 상징적 요소들이 죄다 없어져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공화정 로마 귀족층이 숭상하던 실질강건 요소가 하나 더 있었으니, 그건 다름아닌 그리스어적 교양이었다. 적어도 로마인들은 마리우스와 술라 시대에 어느 용기있던 지식인이 라틴어로 문법 수업을 해보기 전까진, 문법학 수업마저 그리스로만 하는 게 철칙이었다. 고대 로마 전통에 목매고 갈수록 당대 로마인들이 그리스화되어가던 걸 질타하던 대카토가 개탄하던 것이, 조상들의 전통을 어기고 감히 문법 수업을 그리스어가 아닌 라틴어로 진행하는 최근 몇몇 문법 선생들의 개념없는 짓들이었다. 한술더떠 아예 수사학 수업은 적어도 네로 황제의 시기까진 라틴어로 시도하는 행위 자체가 없었을 지경이었다. 무조건 그리스어로만 해야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로마 전통을 이어가는 교양인의 행동으로 보았다.

 

이래도 라틴어 사용이 특정할 '로마적 요소'고, 그리스어 사용이 '비로마적 요소'인가? 대단히 근거 없는 주장이다.

혹자는 기원전 4세기~기원후 4세기 핵심 지배층이 라틴인이며 라틴어를 쓰고 라틴식 건물에서 라틴식 씨족제도를 갖추고 사는 것은 동일했다고 하지만 이 또한 설득력이 매우 부족한 언설이다. '라틴식 생활방식', '라틴식 건물'. 그런 게 로마성을 규정하지도 않거니와, 설령 있다고 해도 말이 되지 않는 사례가 있다. 공화정기 로마인들이 오현제 시절 로마인들을 봤다면 넋이 나가버릴 정도로 어이 없는 또 다른 문화요소 세번째가 바로, 오늘날에 대중에겐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걸로 되어 있는 공중목욕탕 문화였다. 공화정기 로마인들은 남에게 알몸 보이는 걸 상당히 수치스럽게 생각했었고, 때문에 대부분은 집에서 목욕했었다. 때문에 카토 같은 사람들은 공중목욕탕에는 아예 발걸음도 하지 않으려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미 공중목욕탕은 오현제 로마 이전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시대부터 대중화되어가고 있었다.

또한 상술했듯 '라틴인'이란 개념 자체가 동맹시 전쟁 전후 해서는 상당히 차별적인 대우를 내포하는 뜻이었던 차치하더라도,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핵심 지배층'은 연속성은 물론 있었으나 계속 바뀌고 있었다. 동맹시 전쟁 이후 '로마인' 범주에서 배제당했던 수많은 과거의 '라틴인'이 로마 핵심 지배층에 진입하기 시작했고 다름아닌 아우구스투스의 원소속 가문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게다가 마리우스와 술라,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와 안토니우스의 시대를 거치면서 장년 지배층이 꾸준히 몰살당하는 탓에 계속해서 젊은이들이 권력 중추에 등장하는 현상이 끊이지 않았으며, 당연 그러면서도 빈 자리는 과거 라틴인들의 후손들이 채우게 된다.

 

이후 제정기가 되면 로마 시민권을 취득한 그리스인, 갈리아인, 에스파니아인 등등이 역시 로마화되어 꾸준히 유입되는데, 그런데도 라틴인이 계속 동일했다? 그리고 그 시기 로마인들은 계속해서 그리스어를 상용했으며, 라틴식 씨족제도는 벌써 원수정 초기 때부터 유명무실해져가고 있었다. 그러니 라틴어를 쓰는 라틴식 씨족제도에 속한 라틴인이 계속 중추에 있었다고 하는 개념 또한 허상에 불과하다. 설령 그런 게 있었다 쳐도, 그런 개념을 당대 로마인들이 승인한 바 없었으니 이 또한 현대 한국인 중 일각에서 하는 역사학과 무관한 얘기에 불과하다.

7세기 이후 동로마가 그전 로마와는 성격이 어느 정도 달라졌다는 건, 그때 이후 동로마가 지중해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패권을 지니지 못했고 이슬람 제국이 급부상해 지중해 패권을 행사했고 이후 지중해 문화의 헤게모니를 이끌어나가게 되었기에 달라졌다는 것이지, 7세기 이후 로마가 그전과 정체성이 달라져서가 아니고, 로마성이 없어서도 아니다. 시간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멀어진다는 '원래의 로마적 토대'란 것 따위가 애초에 없음도 상술했듯 유념할 사항이다.

 

물론 국가는 당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영역에서 계속 점진적으로 발전해나가니, 기원후 13~15세기 로마의 특징을 추출해보면 대중에게 유명한 기원후 1~2세기 로마와는 아무 공통점이 없는 게 당연하다. 세월이 천 년이나 차이가 나는데 같은 데가 있으면 그걸 호모 사피엔스의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리 따지면 당장 기원후 1~2세기 로마도 기원전 5~4세기 로마와 군사문화, 인종구성, 정치 체제, 경제, 인문문화 등 별 공통점은 없다. 그런 식으로 계속 가면 진짜 로마는 기원전 8세기에 로물루스가 건국한 그 로마만 남겠지만 이런 주장은 상식 있는 이라면 아무도 하지 않는다. 비잔틴 제국이란 국가가 자체로 아주 강력한 역동성에 의해서 발전한 큰 역량을 보인 것과, 비잔틴 제국이 로마 제국이기도 하다는 FACT는 서로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재료가 달라졌지만 이 배는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이다"라는 관점이라면, "원래의 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면 이건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다"라는 관점도 충분히 나올만한 대답이라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안토니누스 시대 로마 또한 포에니 전쟁 직후 로마와 같은 점이 거의 없으니, 역시 테세우스의 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식이면 포에니 전쟁 직후 로마도 로물루스의 그 로마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국가는 변화하는 현실에 따라 적응과 변천, 통합과 흡수를 반복하는 실체지, 누군가의 자의적 관념에서 어떤 특정 몇몇 요소나 특정 시기로 고정되어 늘 그 환경 그 조건에 맞춰 상연되는 테마파크가 아니다.

 

그냥 로마란 나라는 비잔틴이란 별칭으로 불릴 수 있든없든 1453년에 망한 게 FAT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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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3.06.10 잘 보고 갑니다 마지막 문장이 핵심 이네요
  • 작성자온라인 | 작성시간 23.06.18 잘보고갑니다
  • 작성자yuso | 작성시간 23.07.03 동로마는 다른거 생각할 필요도 없지요 그냥 서부지역 상실한것뿐 이지요.
    고려와도 비교할수가 없는게 만한 다음 다시 세워진것도 아니고..
  • 답댓글 작성자마법의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7.04 그리스어 쓰니 로마 아니라카는데 할 말이 없지요. 대가리에 떠올리는 할리우드 로마 이미지 아니면 로마 아니라고 하는데에는 더 이상 무쓸모입니다.

    여적까지 시오노 나나미 찬양하는 얼간이가 이 까페에도 있는데.....이해해야지요.
  • 작성자돋네칙인 | 작성시간 23.07.17 동로마(비잔티움)의 로마를 부정하는 케이스는 케밥이거나 소세지 혹은 교황청이군요 www
    멀리갈 거 없이 쿠킹식으로 생각해도 비잔티움은 로마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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