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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중세 이슬람][긴 글 주의] 중세 무슬림의 고대 이집트 이해에 관한 이슬람 세계사 유튜버의 평

작성자가터벨트 백작|작성시간23.07.12|조회수255 목록 댓글 3

https://youtu.be/C1feeDHShWc



이슬람 세계사 유튜버 알무깟디마(Al Muqaddimah)가 최근에 이슬람 세계의 고대 이집트 인식에 관한 영상을 게시하여 공유합니다. 영어를 이해하신다면 감상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먼저 이집트를 정복한 초기 아랍 무슬림들의 고대 이집트에 대한 지식은 꾸르안에 기록된 유수프(요셉), 무사(모세) 등 선지자들의 기록에 한정되어 있었고, 이들은 이후 콥트 기독인들과 그리스인들을 통해서 해당 공백을 보충해 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일례로 9세기에 압바시야의 맘루크 출신으로 이집트를 통치한 아흐마드 이븐 툴룬은 궁정에 콥트인 학자들을 초빙해 고대 이집트에 관한 질문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슬람 세계에서 통사를 정립하려는 노력이 이어지면서 아불 하산 알마스우디, 무함마드 알마끄리지 등의 중세 무슬림 역사가들은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주로 대홍수 이전의 역사로 기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혹은 “수리드”)를 선지자 이드리스(에녹)과 연결시켜 그를 피라미드를 짓고 무수한 지식을 남긴 인물로 기록하는 한편(선지자 후드의 예언을 무시하고 멸망했다는 “이람의 기둥”의 왕인 샷다드 이븐 아드가 피라미드를 건설했다고 전하는 기록도 존재함), 피라미드에 콥트인들 내지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 아리스토텔레스가 묻혔다고 보는 등 이슬람 전승과 고전 지중해 세계의 지적 전통을 결합하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들은 클레오파트라 7세를 철인 군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중세 무슬림 지식인들은 고대 이집트를 세속적인 과학이 태동한 지방으로 존숭했으며, 옛날부터 이어져 오는 지혜를 터득하기 위한 일환에서 고대 이집트를 탐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대 이집트어를 독해하려는 (불완전한) 시도가 이어지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압바시야의 칼리파 알마으문이 이집트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을 나간 도중에 피라미드를 방문해 거기에 쓰인 문구 해독을 명령했다는 전승이 전해져 오는 한편 카이로 맘루크 술탄국 시대에는 고대 이집트에서 군주를 상징하는 기호들을 자신들의 문장으로 차용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주제로 제가 이전에 쓴 글이 있으니 이를 참조하시면 좋습니다. 이에 대해서 알무깟디마는 이들 무슬림 학자들은 근현대에 비해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부족했을 뿐이며, “원시이집트학자(proto-egyptologist)”라고 불릴 만하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고대 이집트의 문화재들은 아이유비야의 살라훗딘(살라딘)이 카이로 요새 보강을 위해 몇몇 피라미드를 해체하려다가 중도에 포기했다거나, (신라를 포함한 유라시아 지도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 지리학자인 알이드리시가 카르나크 신전을 답사했을 때 주민들이 신전 벽돌을 집을 짓기 위한 자재로 쓰고 있었다고 기록하는 등 시대의 풍파를 면하지는 못했습니다. 툴루니야(앞서 언급한 아흐마드 이븐 툴룬이 창건한 지방 왕조)와 파티미야 시대에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고대 이집트의 보물들을 발굴해 국가 재정을 충당하는 데에 사용했으며, 민간 차원에서 보물을 발굴하려는 열풍이 일기도 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 시기에도 고대 이집트 유물에는 저주가 걸려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밖에도 미라는 약재로 사용되곤 했으며, 유럽으로 수출되기까지 했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피라미드는 상술한 이슬람 종교·지적 전승과의 연관성 등으로 중세 무슬림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 있는 명소였으며, 파티미야 시대에는 대피라미드의 위에 불을 붙이는 축제가 매년 진행됐습니다. 또한 민간인들 사이에서 고대 이집트의 신전은 무슬림, 기독인 등등이 모여서 병을 없애거나 아이를 갖도록 기원하는 등등 민간 의례를 행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기자의 스핑크스에 모여 제물을 바치고 매년 정기적으로 조정에 임관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고대 시대의 기호들은 부적으로 재활용됐습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민속 이슬람의 한 양태이지만, 정통주의 종단에서는 이를 부정적으로 보았고 알마끄리지는 그 과정에서 샤이크 무함마드 사임 앗다흐르가 스핑크스의 코를 훼손했다고 기록합니다.



필자는 영상의 말미에서 이집트에서 근현대 민족주의의 출현 이전까지 고대 이집트에 대한 연계 의식이 단절된 배경을 언어적·종교적인 괴리라고 설명하며, 이란이 이슬람화되기 이전에도 일신론적인 종교적 전통을 지닌 한편 이슬람을 수용한 이후에도 페르시아어 문학을 지속적으로 발달시킨 점과 대조합니다. 그러면서도 중세 무슬림 지식인들은 고대 이집트를 이해하고자 나름대로 열정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들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으로 그는 영상을 마무리합니다.



3줄 정리

중세 무슬림 지식인들은 고대 이집트를 이슬람 및 고전 그리스 전승과 결합해 지식의 기원으로 인식했다.
중세 무슬림 지식인들은 상기한 인식에 따라 고대 이집트를 상당히 적극적으로 탐구했다.
고대 이집트의 문화유산은 중세 무슬림들 사이에서 방치된 것도 있지만, 이들의 삶과 적지 않은 수준으로 융화되었다.

https://chimhaha.net/best/251673?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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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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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나아가는자 | 작성시간 23.07.12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너클 | 작성시간 23.07.12 이것조차도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이 있었다니
  • 작성자돋네칙인 | 작성시간 23.07.17 나름~햇겟지만 결국은 이슬람주의가 강해지면 아무래도...
    물론 현대와서는 관광업으로 인한 금융치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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