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서양사

[고대 중동]훈, 백훈(에프탈), 아바르-흉노, 하자르-연연, 튀르크-돌궐 관계 요약

작성자마법의활|작성시간23.07.21|조회수330 목록 댓글 4

1. 기원전 2세기 초중반 즈음

서한 한무제에게 흉노가 큰 타격을 입은 후, 기원전 1세기 중반에

서한에게 복속하는 문제를 놓고 흉노가 내분을 일으켜 기원전 56년에 동서로 갈라지게 됨.

이때 서한 선제에게 복속하기로 한 선우가 동흉노 호한야 선우,

호한야 선우를 나약하다 여겨 질지 선우를 자칭하고 독립해나간 자가 호한야 선우의 형 호도오사.

질지의 서흉노는 동흉노를 격파하여 큰 타격을 주고 영역을 동으로 확장한 다음

서진하여 아랄해를 포함하여 파르티아 동부 변경에까지 이르는 거대한 서흉노 제국을 건설.

 

이 떄가 기원전 51년 경.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이 끝난 해. 카르헤 전투에서 파르티아가 승리한 지 2년 뒤) 서흉노가 파르티아 정벌을 준비하기 시작.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09533&cid=62103&categoryId=62103

그러나 선제 재위기 서한 & 동흉노가 연합군을 구성하여 이 시기부터 집요하게 서흉노를 두들겨대기 시작.

파르티아 침공은 꿈도 못 꾸고 기원전 36년까지 서한 & 동흉노 연합군과 대결하지만

 

결국 기원전 36년에 탈라스 강변에서 서한 & 동흉노 연합군에게 서흉노 질지 선우가 참패.

 

서한 & 동흉노 연합군이 질지 선우를 포함한 서흉노 지도층 1518인 전원을 살해.

기원전 36년, 살아남은 서흉노 잔당이 서쪽으로 도주하여 오늘날 카자흐스탄 남부에 자리잡음.

기원후 155년 이후 어느 시기에 2-1 부류를 받아들여 더욱 세력이 커짐.

기원후 4세기 초중반 경 또 다른 흉노 부류인 우아르 훈족에게 밀려 동진하게 됨.

 

2-1. 한편 서한과 연합군을 형성하여 서흉노를 멸망시키고 원수를 갚은

동흉노는 동한 시대에 다시 남흉노와 북흉노로 분할되는데, 그중 북흉노는 기원후 147~156년 선비족 단석괴에게 복속됨.

단석괴에게 복속되길 거부한 부류가 또 다시 서진하여 1 부류에게 합류함.

2-2. 남흉노는 이후 잦은 반란을 겪다가 216년 경 동한(사실은 위나라 조조)에게 다시 일격을 당함.

 

남흉노 선우위 폐지. 남흉노는 다섯 부족으로 나뉘어 동한(사실은 위나라)의 직할 통치를 받게 됨. 그러나 이후 남흉노는 오호십육국 시대에 전조로 가장 먼저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 4세기 초중반 경부터 꾸준히 동진하던 1+ 2-1 부류. 즉 옛 서흉노

및 북흉노의 후예인 부족들이 중간에서 만나는 이란계, 튀르크계 부족들과 꾸준히 혼혈됨.

 

그러다 볼가강 근처에서 한 부류는 서진하여 동유럽으로 가고,

또 다른 부류는 남진하여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쪽으로 감.

------> 볼가강에서 서진한 부류는 4세기 중반 즈음 동유럽에 나타나 고트족,

사르마티아족, 이란계 알라니족

등등을 쳐부수고 주로 게르만 부족들로 휘하가 구성된 연합을 형성함.

언어, 문화, 습속은 오히려 상당 부분 고트화했으나 중심 족속은 어디까지나 옛 서흉노 부류. 누구냐고요? 다름아닌 아틸라의 훈족입니다.

------> 볼가강에서 훈족의 조상인 부류와 헤어진 부류는 훗날 '악 훈'

(일명 백훈)으로도 불리는 에프탈족이 되어 350년경 사산조 페르시아의 동북 변경에 등장함. 꽤 오래도록 사산조를 괴롭혔지만 서튀르크와 사산조

사이에 끼어 고생하다가 끝내 사산조 호스로 1세에게 멸망당함. 

3. 헤라클리우스의 그 동로마를 고전시키고 사산조와 연합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했으며, 일리리쿰 야전군을 궤멸시키고 일리리아 일대를 차지한 아바르.

 

3-1. 한때 아바르가 바로 유연이라는 언급도 있었으나, 이는 북위에게 계속 고전을 면치 못하던

유연 중 서진하여 유럽에 등장한 일파를 유럽쪽 역사가들 일부가 오해한 것.

 

유연이 망하기 무려 수백년 전부터 유럽측 기록에서 아바르가 등장하고 있음.

5세기 중엽 비잔틴 사학자 프리스쿠스가 서시베리아에 있는 아바르족에 대해 언급

1세기 그리스 사학자 스트라보도 아바르족에 대해 언급함.

 

다만 유연 중 서진한 부류가 3-2 훈족 잔당과 연합한 건 사실로 보임.

DNA 검사로 아바르와 유연의 근연성이 입증되고, 물론 고분만 보면 튀르크,몽골, 슬라브, 이란 등등 다 나오지만 여하튼 DNA의 임팩트는 무시할 수 없기 때문. 이 부류에 대해선 유연이 458~459 북위에게 패망한 이후 카스피해, 아랄해로 도착한 유연 잔당이 있는데 역시 유럽 사가들에게 아바르로 불렸음.

3-2. 우리에게 익숙한 '아바르'는 게르만족들의 대대적인 반란 및 동로마측의 토벌로 북쪽으로 쫓겨간 훈족 잔당이 다시 세력을 모으면서, 북위에게 계속 패배한 나머지 서진한 유연 부족 등과 연합해 나타난 부류임.

4. 특이하게도 유대교로 개종한 걸로 유명한 하자르는 사바르족의 직계 후예임.

사바르족은 5~6세기 경 서시베리아와 카프카스 북부에 나타난 튀르크계임.

사바르족이 생각보다 임팩트는 션찮지만, 오늘날 러시아에 가까운 곳에서 살았음.

사바르에게서 '시베리아'란 이름이 나옴. 사바르가 에프탈도 쳐부순 바 있는 호스로 1세에게 큰 타격을 입어 무너지지만, 하자르로 부활.

다만 사바르 잔존 두 부족인 세멘데르, 벨렌제르 부족이 훗날 아바르로 재탄생하지만, 이 두 부족을 지배하게 되는 튀르크 아시나 가문의 통솔로 아바르를 건국하게 됨.

때문에 튀르크적 요소는 더욱 강화됨.

하자르는 8세기 이슬람 대팽창 때 튀르크 제종족들이 그랬듯 이슬람 제국에게 크게 지고 이슬람교를 강요당하지만 곧 굳세를 회복. 이후 세력을 떨치지만 불가리아 제1제국을 그로기 상태로 몰고간 러시아 노르만 세력에게 망함.

 

5. 셀주크 튀르크와 오스만 제국을 세운 튀르크는 굳이 말하면 서돌궐의 직계 후예임.

오늘날 튀르키예 역사가들은 흉노든 유연이든 스키타이든 죄다 튀르크라카는데 이건 좀 국뽕성 주장이고. (.....)

다만 부정의 여지가 없는 오늘날 튀르크의 직계 조상은 당 태종이 정벌했던 그 서돌궐 제국임.

5-1. 서돌궐과 동돌궐로 분할된 후,

5-1. 동돌궐이 먼저 망해서 당 태종 때 직할 영토로 편재되었고

 

5-2. 서돌궐은 서쪽으로 뻗어나가 사산조와 함께 에프탈을 쳐부수고

그 영역을 차지한 후 한동안 잘나가서 그 사산조 페르시아를 여러 차례 엿먹임.

 

그러나 휘하 유목 부족들의 반란에 계속 시달리고 서방 영역을 잃으며

계속 동쪽으로 쪼그라들다 당나라에게 망함.

5-1. 한편 당나라가 7세기 중후반 당고종 즈음 토번 및 삼국통일 전쟁 등으로

출혈을 겪고 약해지자 옛 동돌궐 지역이 일명 후돌궐 제국으로 부활함.

5-2. 이 시기에 옛 서돌궐 지역에서는 '아홉 성' 부족이 난립하고 있었고

'오우즈'라고도 불렸는데  이들이 바로 셀주크, 오스만 튀르키예를 비롯한 카라한, 가즈니조 등을

건국하게 되는 이들의 직계 조상임.

7세기 후반에 후돌궐이 세력을 뻗쳐 자꾸 옛 서돌궐 지역까지 진출하여 갑질해대자, 후돌궐에게 복속하기 싫었던 옛 서돌궐 부족들 중 일부가 서진을 택함.

이 서진한 부류들이 이슬람 대팽창기에 707년에 이슬람 제국에게 패배당하고 713년에 처음 이슬람을 강압적으로 전파받았지만 이때는 거부.

 

 그러나 8세기 중반부터 슬슬 이슬람화되더니 9~10세기에 이슬람화 완료.

이후 이들은 셀주크 제국, 카라한조, 가즈니조, 페쩨네그, 우즈 족 등의 조상이 됨.

뭐 지들끼리 열심히 치고박았던 것 같지만.....

 한편 불가르 튀르크 일파는 서돌궐 잔당의 본격적 서진 이전에 서쪽으로 간

튀르크족 일파 후예임.

총평: 어째 중국 제국에게 깨진 애들이 서진해서 공포의 대상이 되고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는 패턴.

 

서흉노가 작살나서 서진하여 훈, 백훈족이 된 계기를 제공한 게 선제의 서한 & 동흉노 연합군.

 

북위에게 계속 밀리던 유연 중 일부가 안되겠다 싶어서 서진한 게 아바르. (아바르족 핵심은 훈족 잔당이지만 상당 부분은 서진한 유연임)

 

 동서 돌궐 모두 공히 당 태종에게 사이좋게 깨졌고, 각기 복속된 경위가 달라서 서로 뜨악해졌다가

부활한 동돌궐의 갑질을 견뎌내다 못해 서진한 서돌궐 잔당이 훗날 카라한조, 가즈니조, 셀주크, 오스만 등등을

건설하게 된다. 

 근데 이미 튀르크(=돌궐)든 흉노(=훈)든 중앙아시아를 지나는 과정에서 이란계 부족들과 상당 부분 혼혈되어버린 상태라, 각기 유럽 게르만족 및 동로마인들과 섞이기 전에 이미 많이 황백 혼혈화된 걸로 추정됨. ;;

 데미르님의 의견>>>> 토하라, 월지인들 동진으로 더 일찍 되었을 개연성이 큼.

월지-쿠샨 계 지배자 명칭인 야브구가 튀르크 제국에서 부왕 혹은 부통치자 작위가 된 게 아주 일찍부터임.

한편 사산조 데흐거넌 호칭이 튀르크의 타르칸 호칭으로 전화되었을 가능성도 있음.

근거: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3년도 출판, 세계각국사 제16권 터키사 (이희수 저) 독서 후 요약.

일종의 요약 독후감본으로 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만주족 | 작성시간 23.07.21 하자르가 유연의 일파였다는 부분에서 갑자기 소름이 ㅎㄷㄷ
  • 답댓글 작성자만주족 | 작성시간 23.07.21 아틸라 이름 나올때도 소름 ㅎㄷㄷ
  • 답댓글 작성자마법의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7.21 상대적으로 그닥 큰 난리를 안 피우고 문명국들에게 협조적이었던 편입니다. 헤라클리우스에게 원병을 제공하기도 했죠. 물론 공짜는 아니었지만(.....)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3.07.22 돌궐과 흉노의 서진에 중국의 영향이 있었군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