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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러시아판 폼페이'라는 니항사건 (니콜라예프스크 사건) 관련 백파군대 도서 출판

작성자신룡기2|작성시간23.09.20|조회수133 목록 댓글 0

※자유시 참변이 이슈가 되기에 재업로드 합니다.

 

2022년도에 출판된 니항사건(니콜라예프스크 사건) 관련  백파측 책 제목 :

 

1920년 니콜라예프스크-나-아무르의 비극 : "러시아판 폼페이" 학살극

판매금액 : €19,99

1920년 러시아 극동의 도시 니콜라예프스크-나-아무레(Nikolaevsk-on-Amur)의 죽음을 기념하며 2022년 출판된 이 책에는 러시아 내전기 일본으로 탈출했던 저널리스트 아나톨리 야코블레비치 구트만(일본, 미국의 각종 도서가 역사적 사실로 인용하는 '니항의 파괴'의 저자. 러시아 이름: Гутман, Анатолий Яковлевич. 영어 이름 : Anatoly Yakovlevich Gutman. 1889-1950)의 다큐멘터리 연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밀야노프(К.А. Емельянов)의 <지옥의 사람들>, M.V. Sotnikova, 아우셈 등의 주장들,

지역 언론의 보도, 러시아 국가 사회정치사 기록 보관소(RGASPI)에 보존된 서신, 니항사건 참가자 심문 프로토콜 등을 포함합니다.

2022년 재편집되어 출판된 이 책은

볼셰비키 공산당에 의해 아무르강 하류의 번영하고 인구가 많았던 도시(니항 : 니콜라예프스크)가 파괴되었던

인류 역사에 없었던 비극에 대한 증언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편집자가 주장하기로는 '러시아판 폼페이' : 인류 역사에 없었던 학살극)

비극이 극동의 후속 운명에 미치는 영향은 과소 평가되고 있으며, 이 "적색 테러" 에피소드에 대한 기억은 사회의 역사적 의식에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나톨리 야코블레비치 구트만이 쓴 <니콜라예스프크 학살(영어 번역본 제목은 '니콜라예프스크의 파괴'>이라는 니항사건과 관련된 자세한 연대기뿐만 아니라

생존자들의 귀중한 증언도 포함하고 있지만 러시아어로는 1924년 이후로 다시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2022년 이 책이 통합되어 출판된 것은 잊혀진 비극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합니다.

이 책은 전문 역사학자, 학생, 대학원생은 물론 러시아의 과거, 혁명의 역사, 러시아 내전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The tragedy of Nikolaevsk-on-Amur in 1920: the death of the "Russian Pompeii"

The collection dedicated to the death of the Far Eastern city of Nikolaevsk-on-Amur in 1920 included a documentary study by the journalist A.Ya. Gutman (1889–1950), memoirs of M.V. Sotnikova and K.A. Emelyanov, testimonies from the regional press, as well as correspondence preserved in the Russian State Archive of Socio-Political History (RGASPI), protocols of interrogations of participants in the events, etc. The published materials acquaint the reader with the unprecedented history of the destruction of a prosperous and populous city in the lower reaches of the Amur by the Red partisans. The impact of the tragedy on the subsequent fate of the Far East is underestimated, the memory of this episode of the "Red Terror" is practically absent in the historical consciousness of society. Book A.Ya. Gutman, containing not only a detailed chronicle of the "Nikolaev massacre", but also valuable testimonies of survivors, has not been republished since 1924. Its publication in modern Russia is an important contribution to the restoration of the memory of a forgotten tragedy. The book is intended for specialist historians, students and graduate students, as well as for all those interested in the past of Russia, the history of the revolution and the Civil War.

https://kniga.lv/en/shop/tragedija-nikolaevska-na-amure-1920-g-gibel-russkoj-pompei/

러시아 적백 내전 백파측 주장을 통합한 책
러시아 적백 내전 백파측 주장을 통합한 책

※ 책 내용에 대한 첨부 의견

한국의 각종 공식 도서에서 구트만(러시아 이름: Гутман, Анатолий Яковлевич. 영어 이름 : Anatoly Yakovlevich Gutman. 1889-1950)의 책을 인용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그들은 구트만의 책에서 한국 독립군이 처단한 친일파는 1~2명 정도이며, 조선인 박병길이 일본인과 일했고, 안드레예브가 요즘 한국 방송에도 자주 나오는 1921년 자유시 참변에 관련되었고, 일제로 도주한 사실을 철저히 숨긴다.

※자유시 참변과 안드레예브 : (안드레예브 주장의 특이점)

요즘 한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1921년 자유시 참변 무렵

자유시 포병 부대장을 한 안드레예브는 구트만 등의 러시아계 친일백파 및 일본의 주장과는 달리 니항에서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했으며,

안드레예브는 일본에서 살지 않고 중국 상해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자손들은 오늘날 미국에 있다고 한다.

안드레예브는 일본으로 갔다가 나중에는 오스트레일리아로 쪽으로 망명하게 되는 사할린섬의 거부 페트로프스키(Петровский, Филипп Емельянович)와 경력이 유사하다는 주장도 있다

북 사할린섬의 거부 페트로프스키의 자녀중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 망명한 후, 2차 세계대전에 영국군(호주군, 미국군의 동맹국)으로 참전했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포로 생활을 했다는 점 등이 있기 때문에 요즘 러시아에서는 페트로프스키의 평가가 나쁘지 않다.

※시마다와 박병길

시마다 모토타로(島田元太郎, Петр Николаевич Симада Мототаро, 일본인. 사할린주와 사할린섬, 평안도, 경남 진해 등지에서 상업, 광산업, 성매매업 : 위안소 유곽 공창, 석유개발업 등 종사. 1870년경 일본 나가사키현 출생 ~ 1945년경 조선 평양에서 사망)

는 니항의 일본인 거류민회 회장으로 일본인들의 니항 진출을 주도한 사람이다.

이 무렵 시베리아, 몽골에서 활동한 일본인 밀정이 4,000명 정도라는 소리도 있지만, 일본 정부에서 중국 만주 진출에도 국력을 쏟아 붓던 시기였기에

시베리아에만 정식 월급을 주는 일본인 밀정이 수천명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시마다는 그 중에서도 최고위 직책에 있었던 사람이며, 일본의 시베리아와 북사할린섬 진출에 앞장선 사람이다.

니항(니콜라예프스크) 조선인 민회의 주무였던 독립유공자 박병길과도 잘 아는 사이였다.

조선과 경남 진해, 평양 등지에서 시마다가 동원한 창기(위안부) 수가 현재 파악되지 않고 있다.

1919년 6월경 시마다가 조선 경남 진해의 일본군 장성 각하에게 보낸 엽서

1918년 일제의 시베리아 침략이후 건설된 니항의 일본군 병영건물, 유곽(위안소), 일본인 집단 거주지 사진

1920년 발생한 니항사건과 일본군의 북위 50도 이상 북사할린섬에서의 철수로 재산을 잃고,

조선 평양쪽에 와서 광산업과 성매매업을 했는데

1920년 니항사건 당시 동원했던 조선인 여성 가라유키상이 몇명 정도였는지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또 1920년 이전 사할린섬 남부와 일제의 시베리아 출병시기에 사할린섬 남부와 북부, 사할린주에 동원된 조선인 노예 노동자에 대한 연구도 희박하다.

시마다가 주도해 세운 니항사건 순난자비 중 하나에 나타난 사망자 명단

 

이 니항사건 일본인 사망자 명단에 일본인 여성 가라유키상이 다수 있다.

 

관련글 : https://cafe.daum.net/shogun/2DR/5264

1918년 9월경 니항을 점령하고 행군하는 일본해군 육전대와 마차를 탄 일본해군 장교

일본인 여성과 조선인 여성들을 동원해 가라유키상 성매매 위안소를 운영했던 시마다 모토타로의 상회 인근으로 보여진다.

1919년경 니항에서 화폐까지 발행했던 니항 일본인 거류민회 회장 시마다 모토타로가 경영했던

시마다 상회와 일본군의 니항점령 이후 건립된 일본군 병영 건물

 

일본군의 반자이 기습공격 실패후 집단자살로 불타버린 니항 일본영사관

1920년 니항사건 당시 이시다 토라마츠 영사대리 부영사는 처자식을 먼저 죽이고 방화하였고 영사관에 머무르던 일본 거류민 상당수도 광기어린 집단자살을 감행했다고 한다.

니항의 일본인 거류민중 집단 자살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은 일본에 생환해서도 자살을 강요받고 사회에서 냉대 받았다고 한다.​

사할린 섬 및 사할린주 일대의 일본인들. 남성의 상당수가 군사훈련을 받은 의용 자경단원 등이었다.

사할린섬 남부의 일본인

1920년 니항사건 무렵 사할린주 일대

1920년 니항사건 당시 파괴된 도심.

일부 몰지각한 친일학자의 주장과 달리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나 감옥 자체가 없었다. 1500여명을 수감해 3일동안 3천여명 이상을 살해할 만한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할린섬 일대의 일본인. 일본인 남성의 상당수는 자경단원 등으로 군사교육을 받은 자들이다.

사할린 섬 일대의 일본인 여성 가라유키상 추정 사진.

가라유키상 여성 상당수는 군사훈련을 받고 일제의 시베리아 침략에 동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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