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좋은책 게시판

"역사에 과연 진실은 없는가?"

작성자강희대제[역블]|작성시간08.05.31|조회수184 목록 댓글 1

※ 하하;; 제목으로 한번 낚시를 해봤습니다. 아래에 썻던 글에서 다룬 책을 다읽고 독후감(서평?)을 좀 다듬어 봤습니다. 물론 책내용은 이 글의 제목에서 다루는 주제를 아주 소상히 다루고 있습니다.

 

 

1. 감상문을 시작하며..

리처드 에번스의 『역사학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은 말그대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철학적 담론(? 이걸 뭐라고 정의하는건 제 능력밖의 일인 것 같습니다.)의 한 흐름이 역사학을 공격하자, 저자가 역사학을 위해 '변호'하는 내용을 적어둔 책입니다. 여기서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역사학자들이 진실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헛되었다고 비판하고, 저자는 여기에 대해서 반론합니다. 책은 전체 300페이지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200페이지 정도 읽어본 결과 주된 내용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습니다. 다만, 저자는 이것을 목차별로 세분화 하여 체계적으로 반론하고 있습니다.




2. 목차별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책의 서장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인한 역사학계의 위기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과 학계의 자성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시작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제 1장 역사학의 역사]에서는 '랑케'로부터 ~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E.H 카'까지 서구 역사학계의 변화과정을, [제 2장 역사, 과학, 도덕] 에서는  역사학을 과학이나 도덕 혹은 문학과 비교하면서 무엇이 같고 다른지에 대해서 검토해보면서 역사에는 그 같은 학문에서 보이는 것과 비슷한(혹은 같은) 다양한 접근방법이 있다는 것을, [제 3장 역사가와 사실] 과 [제 4장 사료와 담론]은 역사에서 증거사료가 왜 중요하고 그것을 어떻게 읽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제5장 역사에서의 인과 관계]는 과거와 현재의 긴밀한 연관성을, 그리고 대망의 [제 6장 사회와 개인]에서는 제가 예전에 썼던 「굿바이 E.H카(오늘날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 now?)」의 감상문에서 다뤘던 내용을 다시금 다룹니다. 사회를 주도하는 소수의 엘리트 내지는 정치인을 연구하던 기존의 역사학이 요즈음에는 그외의 대중을 비롯한 소수자를 연구하기 시작하여 분야별로 세분화 되었다는 이야기에 더불어, 각 국가와 학계 그리고 각기 다른 학문끼리의 교류가 원활하게 되어 더욱 발전하고 변화되었다는 점을 다룹니다. [제 7장 지식과 권력]에서는 역사학이 정치권력과 결탁하는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여러가지 예제를 들어 아니라고 반론하는 부분이고, [제 8장 객관성과 그 한계]는 역사에서 절대적인 객관성은 어디까지이고 상대적인 견해차이는 어디까지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그간의 연구업적들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설명하고 난 뒤. 학자간에 견해의 차이에만 주목하는 '포스트 모던 이론가'들(여기서 더 심해지면 학자마다 말이 다르므로 결국 객관적 진실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무주의까지 간다고 합니다.)에 의한 주장의 한계와 그들의 주장이 역사학계의 연구진척에 도움이 주었음을 언급하면서, 저자는 이것(포스트 모더니즘?)을 계기로 앞으로 역사학은 어떻게 발전해야 하며,그 변화의 방향은(저자가 볼 때) 매우 긍정적이라는 점(앞으로의 역사학이 좀 더 많은 사실-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마무리 짓습니다. 



 
3. 제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부분들

 


(1) 과학에 대한 변론 간략히 요약.

(죄송하게도 출처를 까먹었습니다 ㅡㅡ;)
 

누군가  曰 "역사학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은 실험이라는 절차를 거치지만 역사는 관찰만 할 뿐이지 않느냐?"
,
저자 曰 "관찰만 한다고 해서 과학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과학에서 천문학의 존재는 어떻게 해명할텐가? 천문학은 과학이 아닌가?"
 

 

(2) 이건 반론은 아니고 제가 흥미있게 본 구절을 요약한겁니다.

리처드 에번스 & 이영석 역, <역사학을 위한 변론(In Deffence of History)>, 소나무, 1999, pp. 83 ~ 85

아놀드 토인비는 1934~1947년동안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라는 책을 써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 책에서 인류의 역사 중 6천 년간 다양한 문명의 발전과 쇠퇴에 대해 다루었고, 이러한 쇠퇴와 발전은 몇가지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역사의 진행을 과학과 같이 법칙에 따라 분류한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원인을 주장하기 위해 다양한 사례와 문명들을 예시로 들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는 곧 네덜란드의 근대사학자인 가일(Geyl)에 의해 비판받게 되었다. 가일은 토인비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자기 주장에 유리한 사실들만을 꼽아내어 역사를 편집했다고 비꼬았다. 요컨대 토인비가 세운 법칙과는 반대되는 아주 수많은 예외적인 사실들을 무시하고 자기가 설정한 법칙에 유리한 사실만을 나열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토인비는 '한 문명이 평화를 구가하면서 안일해지면(나태해지면 혹은 게을러지면) 그 문명은 성장을 멈추고 쇠락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잉글랜드가 1644년 뉴암스테르담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 찰스 2세의 내치에 의해 평화가 지속되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말았다.
 

 

(3) 이건 그냥 표현이 멋지길래 요약하지 않은체 그대로 퍼왔습니다. 특히 후반부가 말이죠. 마침 저자도 다른사람의 저작에서 이문장을 인용했다고 하더군요.

 

2차 출처 리처드 에번스, 앞의 책, pp.323-324
1차 출처 Cannadine, G. M. Trevelyan, pp. 75, 196

우리 모두는 결국 역사가 시적이므로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역사라는 운문은 대체로 배회하는 상상력이 아니라, 사실을 추구하고 그 사실에 매달리는 상상력으로 이루어진다. 역사가는 우리가 과거라고 부르는 저 신비의 땅에서 오래 전에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를 알려고 하는 그 자신의 호기심의 열정으로 "기쁨을 경멸하고 근면한 날들을 살아간다." 역사가는 저 불타오르는 열정 때문에 마법의 거울을 응시하여 거기서 매일 새로운 인물들을 보고, 또한 그의 온 생애를 만족스럽게 소진하며, 매일 아침 연인처럼 열심히 도서관과 문서고에 다가선다. 역사는 대단한 위력을 가진 정녕처럼 그를 사로잡는다. 그것이 시적이기 때문이다.

(이다음부터 표현이 멋집니다.)

죽은 이들은 시적이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들이 살던 곳에는 더 이상 그들이 없으며 오늘날 우리가 살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에 우리처럼 실재했고 우리느 내일 그들처럼 환영으로 변할 것이다.  (중략) 역사라는 운문은 준 불가사의한 사실에 깃들어 있다. 즉 언젠가 이 땅에, 지난날 낯익은 장소에서 우리와는 다른 남녀가 현재의 우리처럼 살고 그들 자신의 생각에 잠기면서 자신의 열정에 사로잡혔겠지만, 그러나 이제 그들 모두는 가버렸다. 한 세대가 다른 세대 속으로 사라지고 우리자신도 오래지 않아 없저리리라. 새벽녘 닭울음 소리와 함께 홀연듯 사라지는 유령처럼..

 



4. 마치며.

이책을 보면서 서구에서 이름 높은 역사가들(예컨대 랑케나 네이미어와 같은 사람들)이 왜 유명한지, 왜 대단한 것인지 알게됬습니다. 아참. 이책이 외국어를 번역한 것이라 그런지 몰라도 읽기에 껄그러운 점이 적잖게 있습니다. 뭐라고 해야되나? 분명히 한글로 된 문장임에도 한국어라는 느낌이 안든다고 해야되나? 여하튼 번역투가 심하고 어려운 학술용어를 무지하게 많이씁니다. 번역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원문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일부로 그랬다고 하는군요. 뭐 원문 그대로의 느낌이 좋은거야 좋겠지만, 저같은 사람들에게 책의 내용이 어려워지는것도 사실입니다. 그나마 저도 역사를 전공한다고 설쳐대지만, 이 책을 볼 때 생판 처음보는 학술용어가 나오면 그 구절은 글자만 읽어보고 건너뛰고 뒤에서 그 부분에 관해 부연설명하는 내용을 주로 보게되었습니다. 그냥 간략히 살펴본 샘이죠 ^^;; 이 게시글을 보시는 분들도 한번즈음은 '역사학'에 대해 의문이나 회의감이 밀려올때에 한번즈음식 읽어보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신격카이사르 | 작성시간 08.05.31 강렬한 떡밥...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