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좋은책 게시판

대화

작성자케벨로스|작성시간12.12.13|조회수146 목록 댓글 0

 

 

 

 

 

책 소개

 

 

야만의 시대에 우리의 길을 비춰준 ‘사상의 은사’ 리영희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으로서 책임져야 하는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우리시대의 한 대표자


 

리영희는 1999년 말 [연세대학원신문]이 교수와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와 저작’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학자 가운데 으뜸으로 꼽혔다. 또 두 권의 평전이 살아 있는 동안 헌정되는 흔치 않은 영예를 얻기도 했다. 한편 그는 아홉 번이나 연행되어 다섯 번 구치소에 갔고, 세 번이나 재판을 받아 무려 1,012일에 이르는 세월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언론계에서 두 차례, 대학에서 두 차례 쫓겨났다. 이 책은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는 극단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리영희가 자신의 육성으로 전하는 지식인의 삶과 사상에 관한 기록이다.

이 땅에서 ‘지식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이 책은 이 땅에서 ‘지식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일인지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스스로 “60% 저널리스트, 40% 아카데미션”이라고 말하는 리영희의 글이 학자들에 의해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로 꼽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치며 삶을 통째로 뒤흔들었던 까닭은 대단한 이론이나 새로운 담론을 제시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한국 현대사의 온갖 질곡 앞에서 진실을 있는 그대로 글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글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할 이것, 온전한 진실을 써내려간다는 이 기본적이고도 충실한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는 이 의무를 회피하지 않고 맞서는 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여기고 온몸으로 실천했던 것이다.
1970~80년대가 지나고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민주화를 거둔 1990년대 이후 리영희는 “내가 할 역할은 다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책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식인으로서의 역할과 고통 앞에서 그가 보여준 정신의 크기는 왜 우리가 여전히 리영희를 읽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현대사의 생생한 증언


그의 지식인으로서 활동 시기는 한국 현대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 책에는 해방 후 미군정기 남한사회의 혼탁상에서 6*25전쟁의 비극과 한국군의 실상, 4.19와 5.16,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최근 국내외 정세에까지 개인사의 기록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소중한 증언으로 기억될 내용들이 가득하다. 푸에블로호 사건에서 1999년 서해교전까지 그의 엄정하고 예리한 분석은 여전히 무딘 우리의 역사인식을 벼린다.
6.25전쟁 당시 한국군에게는 장교복조차 없어 미군이 입던 장교복을 지급받았으나 자신은 끝까지 입지 않고 작업복만으로 군복무를 마친 일화를 두고 한국군의 정체성을 논하는 부분(/ p.173), 박정희의 검은 안경을 통해 분석한 박정희 인물론, 박정희와 노무현이 미국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를 비교하는 대목(/ p.280) 등에서 자신의 경험을 날것으로 쉽게 일반화하지 않고 철저한 반성 속에서 녹여낸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 국면을 따라 풀어 놓는 그의 체험과 이야기는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이다.

 


인간 리영희를 만나다


솔직함은 리영희 선생의 글이 가진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이 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일보]에서 해직당한 뒤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양계장이나 택시 운전사와 같은 육체노동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으나 결국 다시 인텔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건을 회상하며, “인텔리가 그 편안한 직업과 사회문화적 권위를 팽개치고 사회의 천시를 받는 육체노동자가 되려는 생각이 얼마나 관념적인가”라고 실토하는 부분에서 어떠한 가식과 투사의 이미지도 찾을 수 없다(/ p.409).


개인적 행복의 추구와 사회적 책임 사이의 갈등이 화해할 수 없었던 시대, 그에게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겪었던 고뇌가 없었을 리 없다. 이 책에는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부딪혀야 했던 갈등과 번민, 고통의 순간이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안온한 대학생활을 마다하고 노동운동의 현장으로 뛰어든 딸 미정의 뒷모습에 던지는 안타까운 시선에서는 자신을 닮은 딸을 향한 말하지 못한 사랑이 절절히 배어 있다(/ p.306).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돌아가신 어머니의 상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형무소에서 나온 밥과 사과 한 알을 놓고 제사를 지내는 장면(/ p.488), 재판을 앞두고 아내에게 보낸 편지(/ p.673)에서 ‘야만의 시대’에 한 인간이 감당해야 했던 고뇌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한 편의 드라마처럼 탄생한 책


리영희 선생은 고희를 맞이한 2000년 말 뇌출혈로 쓰러졌다. 뇌중추신경에 큰 손상을 입어 오른쪽 손과 다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이 곧 사회적 참여요 실천인 지식인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리영희 선생 본인도 '지적 활동과 글쓰는 일'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고백한다. 오른손의 마비로 저술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구술을 녹취해 원고지 2,700매 분량의 자서전을 만드는 일은 그의 초인적인 인내와 끈기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리영희 선생의 기억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되살려내는 일은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 선생이 맡았다. 기획과 원고 구성에 대한 협의가 끝나고, 대담을 완성한 후 녹취한 구술을 풀어내 다듬고 보완해 초벌 원고를 만드는 데에만 2년이 걸렸다. 리영희의 전작을 비롯해 한국 근현대사의 모든 자료들을 연구해 대담을 준비한 임헌영 선생의 혼고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질문 하나하나에 대해 수십 번씩 자료와 육필 원고, 사진 등을 찾아내 확인하고, 수십 년 전의 붕우들에게 때마다 연락을 취해 인명 하나까지 거짓 없이 전달하려 한 노학자의 모습은 존경을 넘어 벅찬 감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힘겹게 준비된 초벌원고에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꼭 부여잡고 한자 한자 교정을 보아 완성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대화]는 그 자체로 한 편의 휴먼 드라마이다.

 

[대화]는 리영희와 임헌영의 대화이지만, 리영희 선생은 독자들에게 또 다른 대화를 제안한다. “이제는 거의 지나가버린 그 시대를 인간적 고통과 분노, 상처투성이의 온몸으로 부딪쳐 살아온 기성세대나, 앞 세대들이 심고 가꾼 열매를 권리처럼 여기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맛보고 있는 지금의 행복한 세대의 독자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고민하고 자신이 그 상황에 직면했거나 처했다면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가치판단을 하고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해보기를. 그럼으로써 이 자서전의 당사자와 대담자가 책 속에서 진행한 것과 같은 자기비판적 대화의 기회로 삼기를.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나와의 비판적 대화도 가질 수 있기를.”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