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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폭탄의 역사

작성자관중|작성시간17.08.28|조회수1,004 목록 댓글 4






약자들의 공군

 

...차량폭탄이 갑자기 준전략적 무기가 된 것이다. 특정 상황에서는 마치 공군력과 상응하는 무시무시한 무기가 됐다. 도시내 주요 행정 거점과 본부를 한 번에 타격할 수 있는 동시에 도시 전체의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1983년 베이루트 주재 미국 대사관과 해병대 막사를 완전히 초토화시킨 트럭자살폭탄공격은 미 제6함대 전투기와 함정의 화력을 능가했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레이건 행정부는 굴욕적으로 레바논에서 모든 병력을 철수했다. 또한 '와인버거-파월 독트린(압도적인 전투력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미군 독트린)이 마련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시아파가 주로 거주하는 레바논 남부에서 발생한 다른 차량자살폭탄공격들도 군사적으로 크게 우위에 있는 이스라엘방위군을 레바논에서 퇴각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많은 신세대 차량폭탄테러범들은 1980년대 중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폭발물 제조와 파괴기술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당시 카불을 장악하고 있던 소련군에 테러를 감행하도록 양성된 이들의 훈련은 미 중앙정보국 CIA와 파키스탄 정보국 ISI가 제공한 특별코스를 통해 이뤄졌다. 훈련과 장비를 위한 재정지원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담당했다. 다른 테러리스트들은 특히 인도와 이란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이 후원하는 훈련캠프에서 차량폭탄테러 기술을 배웠다. 이들은 미국에 널리 퍼져있는 폭발물 제조 교본에서 필요한 조합공식을 도용했다.

 

1992년, 1993년, 1996년 런던에서 그리고 1993년 맨해튼 남부에서 발생한 차량폭탄공격으로 전 세계 재보험산업은 보험료를 크게 인상하는 동시에 구조조정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통계로만 본다면 서부 유럽에서 일어난 차량폭탄공격의 전체 건수는 중동에서 발생한 건수와 거의 비슷하다.

 

이라크에서 IED가 미군 장갑차에 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라고 한다면, 차량폭탄은 모스크와 시장에서 시아파 주민을 학살하고 종파 간 갈등의 악순환을 조장하는 최고의 무기였다.

 

차량폭탄은 놀랄만한 파괴력과 파급효과를 가진 스텔스 무기다. 트럭과 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공군의 주력 폭격기였던 B-24에 탑재되는 폭탄과 비슷한 양을 주요 목표물의 문 앞까지 운반할 수 있다. (1983년 10월 베이루트에서 미 해병대 막사를 파괴한 히즈불라의 트럭폭탄은 약 5,400kg의 고성능 폭탄을 싣고 있었다. 반면 장거리 폭격에 나서는 B-24는 약 2,200kg의 폭탄을 탑재한다.) 심지어 10입방피트의 적재용량을 가진 일반 SUV 자동차도 450kg의 폭탄을 운송할 수 있다.

 

차량폭탄은 극히 값싼 무기다. 훔친 차량, 500달러 정도의 비료, 불법 제조된 전자장치로 40~50명의 사람들의 목숨을 한 번에 앗아갈 수 있다. 약 10억 달러의 피해를 가져온 1993년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테러주동자인 유수프는 공격 준비에 있어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간 부분은 장거리 국제통화였다고 자랑하기까지 했다. 500kg의 요소가 주재료였던 폭탄제조에는 3,615달러의 비용이 들었고, 10피트 라이더 밴 차량을 하루 빌리는데 59달러를 지불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1995년 오클라호마에서 알프레드 무라 연방정부청사의 정면을 폭파시키면서 168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범 티모시 맥베이는 비료, 경주용 차량연료, 차량 임대 등에 5,000달러도 쓰지 않았다. 대조적으로 미군이 해외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반격을 가하는데 대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쿠르즈 미사일은 대당 가격이 100만 달러에 달한다.

 

차량폭탄공격은 매우 익명적이고 최소의 법의학적 증거를 남긴다. 이런 익명성 때문에 자신들의 신분을 감추려고 하는 미국의 CIA, 영국의 SAS, 구소련의 KGB, 이스라엘의 모사드, 시리아의 GSD, 레바논 군대의 '대외공작 및 분석부대', 이란의 파스다란, 파키스탄의 ISI 등도 차량폭탄공격을 주요 전술료 이용해 왔다. 이들 정보기관들은 차량폭탄 장치를 이용해 그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잔혹행위를 저질러 왔다. 모순적이지만 전통적으로 '약자들의 무기'인 차량폭탄은 강력한 정부와 초강대국들이 비밀스럽게 애용하는 가장 인기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차량폭탄을 가리키는 펜타곤의 공식용어는 VBIED (Vehicle Borne Improvised Explosive Device, 차량탑재 급조폭발물)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가진 유대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영국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자유 이스라엘을 위한 전사들(LEHI)' 속칭 스턴 갱을 결성하였다. 유대인 온건세력에게는 '파시스트' 그리고 영국 당국에게는 '테러리스트'로 분류될 정도로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극단적인 시온주의 운동단체였던 스턴 갱은 외교적 관례와 국제여론에 도덕적으로 그리고 전술적으로 구속받지 않았다. 스턴 갱은 또 종말론적인 절망과 유토피아적인 희망에 고무됐었다고도 할 수 있다. 시온주의 폭력을 연구해 온 한 역사학자는 'LEHI처럼 혁명적인 군사조직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역사의 한 끝자락에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하고, 반대파에 의해 경멸당하고, 정통파들에 의해 미움 받고, 길거리에서 쫓기고 총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이 이상한 소규모 단체는 절망적인 어두운 시기의 긴장 속에서 짧은 삶을 살았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초기 우익군사조직 이르군에서 탈퇴해 자체적인 활동을 하면서 많은 수의 폭파 전문가들을 데리고 나왔다. 이들 전문가들은 1937년에서 1938년 사이에 아랍인들의 시장, 영화관, 커피숍 등에 대한 악명 높았던 폭탄공격을 주도하면서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장본인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최초로 차량폭탄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처음에는 영국군에 대항하기 위해, 후에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공격하기 위한 전술로 차량폭탄을 사용했다.

경찰관으로 위장한 LEHI 대원들은 고성능 폭발물을 가득 채운 트럭 한 대를 하이파 북부구역 경찰본부 안에 주차했다. 잠시 후 한 경찰관이 불이 붙어 타고 있는 신관을 발견했지만, 이 경관은 혼비백산해 6층짜리 경찰서 건물 안으로 도망갔다. 그런데 이 건물은 폭발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결과적으로 이 차량폭탄 공격으로 4명이 사망하고 142명이 부상당했다.

한 미국인 특파원은 "도시 전체가 흔들렸고 몇 블록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도 유리와 건물 파편들이 가득 찼다. 경찰서 주변에 위치한 전화국과 우체국도 심한 손상을 입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차량폭탄 공격의 목표는 영국과 주류 시온주의 정치세력 간의 휴전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 테러 공격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총독 알란 커닝험 장군이 런던에서 열린 정부 회의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계엄령 실시를 막아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발생했다." 도시의 유대인과 아랍인 공동 거주 지역에 위치한 카르멜 산 기슭에 위치한 경찰서를 폭파시함으로써, LEHI는 영국 군대가 다시 거리에 배치되는 것을 원했다. 모든 시온주의 운동이 영국에 대해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LEHI의 목적은 현실로 이어졌다. 영국의 제1 보병사단이 하이파로 이동했다. 그 결과 "95,000명의 주민은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 처해졌다."

 

아랍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가옥을 파괴하고, 심각한 물질적 피해를 주고, 그들의 마음에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폭발물을 먼저 사용한 측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아랍인들도 짧은 시간 내에 적의 무기를 이용해 보복공격을 가했다. 아랍인들이 이러한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모든 종류의 폭발물을 폭발시키는데 익숙해지면서, 아랍인들도 유대인들을 응징하는 작전을 수행했다.

 

파타당과 함께 투쟁해왔고 아라파트의 보디가드로 활동했던 무그니야는 히즈불라의 작전 지휘관이자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세계 최고의 차량폭탄 공격 전문가였다. 미 행정부 안보보좌관 맥팔레인이 기독교도 및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자, 그는 시아파 버전의 진주만 공격을 계획했다. 게다가 타이밍 또한 1941년과 상당히 유사했다. 10월 23일 일요일 모두가 잠에 취해 있을 오전 6시, 한 운전기사가 핸들을 잡은 채 미친 듯이 웃어대며 메르세데스 덤프트럭 한 대를 빠르게 몰고 있었다. 트럭은 모래주머니로 담을 쌓은 해병대 초소를 돌파하고 위병소를 지났다. 그리고 국제공항 옆에 위치한 옛 PLO 본부를 점령하고 있던 미군 막사인 소위 '베이루트 힐튼' 1층에 정면충돌했다. 트럭은 자그만치 12,000파운드의 헥소겐(Hexogen) 고성능 폭약과 폭발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목적의 부탄 혹은 프로판을 적재하고 있었다. 헥소겐은 영국의 울위치(Woolwich) 군수공장의 연구실의 이름을 따 RDX(Research Department Explosive)로도 알려져 있다. 헥소겐은 이 연구실에서 처음으로 제조되었다. 이후 이것은 가장 널리 사용되는 플라스틱 폭발물이 되었다.

미 국방부 공식 보고서는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FBI 법의학 연구소는 이 폭탄을 폭발물 전문가들이 관측한 것 중 가장 큰 재래식 폭발이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 조사위원회도 그 테러용 트럭이 미군 다국적군(USMNF) 방어선을 침투하지 않고 건물로부터 300피트 떨어진 차도에서 폭발했더라도 해병대대 상륙팀(BLT) 본부 건물이 입었던 심각한 타격과 인명피해는 발생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찌되었든 그 트럭은 건물 입구를 지나 안에서 폭발했고, 이 트럭에 실린 폭탄은 70%에 해당하는 내부의 인원을 즉사시킬 정도로 강력한 폭발력을 가졌다. 그것은 또 폭발 물리학에 대한 모든 교과서를 다시 써야할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처음엔 쉽게 믿지 않았던 국방부 조사위원회의 전문가들도 그 폭발로 인해 과거 미 대사관도 그랬던 것처럼 거대한 해병대 막사가 문자 그대로 땅위로 치솟았었다는 당혹스런 결론에 도달했다.

트럭이 폭발했을 때, 과거 39피트 세로 29.6피트 그리고 8.8피트의 직사각형과 비슷한 구덩이가 발생했다. 구덩이의 남쪽 끝부분은 건물의 로비 안쪽으로 13피트나 들어와 있었다. 또한 거대한 구덩이를 만든 폭발은 두께가 7인치나 되고 직경 1.75인치의 철근으로 보강된 각층의 바닥을 파괴했다. 로비에서부터 지붕으로 덮힌 안뜰이 있는 건물구조로 인해 폭발의 효과는 더욱 강력해졌다. 이는 폭발력이 건물 안으로만 전달되어 폭발의 물리적 방향이 한곳으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템퍼링 효과(tampering effect)'라고 한다. 이는 건물 바닥이 터져 나와 상층부까지 다 무너져 내리게 만든다. 폭발의 힘은 처음에는 건물의 기초를 부수고 이어 직경 1.75인치의 철근으로 보강된 15피트의 기둥 벽을 밀어 올려 건물 전체를 위로 들썩이게 했다. 그리고 이내 건물은 가장 약한 부분 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미국 관리들은 동 베이루트 기독교지역 교외에 위치한 요새화된 대사관 별관이 차량폭탄공격에도 끄떡없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안심하고 있었다. 마론파 기독교 용병들까지 경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84년 9월 20일, 미제 대형 스테이션왜건의 운전자는 대사관을 둘러싸고 있던 '용의 이빨' 콘크리트 방호벽을 마치 카레이서처럼 피하며 질주했다. 경비병들마저 놀랄 정도였다. 또 다시 치명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음이 10마일 이상 떨어져 있는 서 베이루트 해안거리까지 들렸다. 이 폭발로 16명이 목숨을 잃었고 69명이 다쳤다. 이곳을 방문 중이던 영국 대사 데이비드 미어스도 부상자중 한 명이었다. 공격 발생 24시간 내에 CIA는 베카 계곡의 바알벡 인근 셰이크 압둘라의 막사를 촬영한 깜짝 놀랄 정찰사진을 백악관에 제공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히즈불라를 훈련시킨 곳이자 납치된 다양한 국적의 서양 인질들이 감금되어 있는 곳으로 추측되는 곳이었다. 그 사진에는 또 미국 대사관 별관 방호벽을 정확하게 모방한 실물크기의 훈련시설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애물을 통과하며 생긴 바퀴자국도 있었다. 자살폭탄차량 운전자는 이 미로를 통과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히즈불라와 이란인들은 차량폭탄기술을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무력외교는 레바논에서 차량폭탄테러로 인해 철저히 무너졌다. 이로 인해 레이건 행정부 그리고 무엇보다 윌리엄 케이시 CIA 국장은 히즈불라에 대한 보복에 목말라 있었다.

마침내 1985년 케이시가 사우디와 함께 히즈불라의 지도자, 셰이크 무함마드 후세인 파들랄라를 제거하기 위해 차량폭탄테러를 감행할 계획에 착수했다. 셰이크 파들랄라는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미 해병대 막사에 대한 테러공격뿐만 아니라 미국인 인질사건과도 연루되어 있으며 미국과 사우디가 지목한 배후인물 중 한명이었다. 케이시는 테러리스트들이 차량폭탄과 같은 그들의 무기를 사용하는 것만큼 강력하게, 아니 더 강력하게 이 큰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하지만 CIA는 차량폭탄공격을 수행할만한 자체 능력이 상당히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케이시는 레바논 현지 전문가들에게 차량폭탄 공격을 맡기게 되었다. 이들은 전직 영국 특수부대(SAS) 장교의 지휘 하에 있었다. 주미 사우디 대사인 반다르 왕자는 이 장교를 적임자로 추천한 것은 물론 차량폭탄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300만 달러를 CIA의 스위스 은행계좌에 예치했다.

1985년 5월 화창한 어느 오후, 케이시의 고용원들은 닷선(Datsun) 픽업트럭의 짐칸에 750파운드의 고성능 폭약을 싣고 그 위를 야채 박스들로 위장했다. 그리고 베이루트 남부 시아파 밀집 거주지인 비르 알-아비드 지역의 모스크 인근에 있던 셰이크 파들랄라의 집 건너편에 트럭을 주차했다. 목격자들을 인터뷰했던 저널리스트 노라 부스타니는 당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당시 이맘 리아드 사원에서 금요 합동예배를 마치고 쏟아져 나오던 차도르를 한 250여 명의 소녀와 여성들이 폭발의 중심에 있었다. 최소 40명은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상당수의 사람들이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폭탄의 엄청난 위력 때문에 인근 아파트 4동의 전면이 사라졌다. 또 600피트 떨어져 있던 다른 거리의 아파트 20동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방안 침대에 누워있던 영아들은 폭탄공격으로 인해 불에 타 죽었고, 아파트 인근 여성 속옷가게에서 혼수를 구입하고 있던 신부도 폭탄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모스크에서 집으로 걸어가고 있던 아이들 세 명의 몸이 폭발로 날아갔다. 이중 아홉 살 된 소녀는 그녀의 머리에 제거할 수 없는 무수한 파편이 박혀 영구적으로 불구가 되었다." 이 날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는 모두 80명으로 기록되었다. 256명도 중상을 입은 것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하지만 이날 공격의 주요 목표였던 무함마드 후세인 파들랄라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채 유유히 걸어 나왔다.

CIA의 다양한 속임수와 의회에서의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히즈불라는 폭탄의 출처에 대해 한치의 의혹도 없이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즉각적으로 폭발현장에 "MADE IN THE USA"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3개월 뒤 히즈불라는 베이루트 공항에서 납치한 TWA 847기의 출입문에서 다음과 같이 외치며 미 해군병사의 시신을 밖으로 내던졌다. "우리는 비르 알-아비드 대학살을 잊지 않고 있다." 그해 가을 히즈불라는 레바논의 비밀군사조직인 대외공작 및 분석 부대(Foreign Work and Analysis Unit) 대원 11명을 체포해 처형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들은 처형되기 전에 파들랄라에 대한 공격과 미스터리한 단체인 '외세로부터의 레바논해방전선'이 과거 책임을 주장한 많은 차량폭탄공격도 본인들이 수행했다고 자백했었다. 이들은 또 팔랑헤당의 통제 하에 있는 레바논군 정보부가 이스라엘의 모사드 그리고 미국의 CIA와 협력해 대테러작전을 수행했다고 시인했다.

 

파들랄라 암살공격 실패와 파급효과는 보통 사람들을 크게 낙담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윌리엄 케이시는 달랐다. 그는 레이건 행정부의 대외정책 목표를 더욱더 강화시키는데 있어 도시테러리즘을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저널리스트 스티븐콜에 따르면, 케이시 CIA 국장은 소련연방에 대해 종교적 광신주의를 동원해야 한다는 일관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1930년대 대학 재학 시절 스페인의 프랑코 총통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였던 케이시는 소련 정부와 그 동맹세력을 쳐부수는 데 "정치적 이슬람과 가톨릭교회를 태생적 동맹관계에 있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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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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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월터 | 작성시간 17.08.29 난 또 현대차 얘기인줄알앗네
  • 작성자프리드리히대공 | 작성시간 17.08.29 프랑코 지지자에다 차량폭탄테러 역이용이라니... 케이시는 막장스런 인물이군요
  • 작성자지옥괭이 | 작성시간 17.09.17 로날드 레이건 정부의 성향이나 남미에서 벌인 일들을 생각하면 cia가 폭탄테러 하는 게 전혀 안 어색하네요
  • 작성자우라 | 작성시간 21.06.15 약자들의 공군...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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