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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에 대하여

작성자관중|작성시간19.10.04|조회수384 목록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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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진술은 그것이 참이라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지 않으며, 거짓말이라면 응당히 그러해야 할, 그것이 참이 아니라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지도 않다. 그것은 바로 진리에 대한 관심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 즉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개소리의 본질이라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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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를 하는 것은 일종의 허세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소리는 거짓말을 한다기보다는 분명히 허세 부리기에 가깝다. 그러나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허세 부리기에 가깝다는 사실이 개소리의 본성에 대해 함축하는 바는 무엇인가? 여기서 허세와 거짓말을 구분하는 중요한 차이는 정확히 무엇일까?

거짓말하기와 허세 부리기는 둘 다 부정확한 전달 또는 기만의 양상이다. 그런데 거짓말의 독특한 본성에서 가장 중심적인 개념은 허위성이라는 개념이다. 본질적으로 거짓말쟁이는 참이 아닌 것을 계획적으로 퍼뜨리는 사람이다. 허세 부리기도 전형적으로 뭔가 허위적인 것을 전달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빤한 거짓말과는 달리, 허세 부리기는 좀 더 특수하게는 거짓이 아니라 속임수의 문제다. 이것은 허세 부리기가 개소리에 가깝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왜냐하면 개소리의 본질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이 가짜라는 데 있다. 진짜가 아니라는 것은 어떤 다른 면에서 단점일 필요도 없다. 결국 그것은 틀림없이 정확한 복제품일 수도 있으니까. 위조품에서 잘못된 점은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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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는 것은 날카로운 초점을 가진 행위다. 그것은 특별한 거짓을 믿음의 집합 혹은 믿음의 체계 속의 특정한 지점에 삽입하여 진리가 그 지점을 차지하는 결과를 피하기 위해 설계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그가 진리라고 여기는 것이 부과하는 객관적 제약에 따라야만 하며, 이것은 일정 수준의 숙련도를 필요로 한다. 거짓말쟁이는 불가피하게 진릿값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거짓말이란 것을 지어내기 위해서 거짓말쟁이는 무엇이 진실인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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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는 꼭 허위일 필요가 없으므로, 그것은 부정확하게 진술하는 내용에 있어 거짓말과 다르다. 개소리쟁이는 사실 또는 그가 사실이라고 간주하는 것에 대해 우리를 기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심지어 기만할 의도가 없을 수도 있다. 그가 반드시 우리를 기만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그의 기획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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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같은 게임 속에서 반대편으로 활동한다. 그들 각각은 자신들이 이해하는 사실에 반응한다. 비록 한쪽의 반응은 진리의 권위에 따르고, 다른 쪽의 반응은 진리의 권위에 저항하며 그 요구에 맞추기를 거부하지만 말이다. 개소리쟁이는 이러한 요구를 모두 무시한다. 그는 거짓말쟁이와 달리 진리의 권위를 부정하지도, 그것에 맞서지도 않는다. 개소리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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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거짓임이 들통나면 커다란 비난이 쏟아지지만, 개소리에 대해서는 그저 어깨만 으쓱하고 지나칠 뿐이다. 거짓말이 실패하면 수치스럽지만, 개소리는 실패하더라도 관용된다. 개소리에 대해서 정색하고 달려들면 웃자고 하는 소리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역공을 받는다. 사람들은 개소리가 실패의 책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을 깨닫고는 개소리의 무책임을 누리기 위해 말에서 진리치를 희석한다. 개소리로 돌파할 수 있는 곳에서는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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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과 개소리의 경계선상에 놓인 말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면서 누가누가 더 개소리를 잘 만들어내는지, 누가 더 뛰어난 개소리 예술가bullshit artist인지 장기자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에서 말하는 프레임론과 마케팅에서 말하는 포지셔닝론 모두 개소리의 기술에 관한 이론이다. 모두가 말의 진릿값에는 관심 없고 자신들의 숨은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언어조작에 전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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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대한 굳은 신념이 개소리하기를 피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되지 못하듯이, 진정성이 있다는 것 역시 개소리하기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기에 충분한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 물론 대부분의 개소리쟁이들은 진정성 없이 '개소리를 해서 상황을 헤쳐 나가려는' 태도를 보이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소리를 하는 사람이 모두 진정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프랭크퍼트의 진단에 따르면, 누군가의 지식과 발언 내용 사이의 괴리는 개소리를 발생시키기 마련이다. 민주 시민으로서 우리나라의 중대 사안 모두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가져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가진 사람은, 진정성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자기위안으로 삼고 자신이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이러저러한 발언을 하고 또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사람은 십중팔구 개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프랭크 퍼트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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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사이좋은원수 | 작성시간 19.10.04 ??? : 개소리 집어쳐
  • 작성자Red eye | 작성시간 19.10.04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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