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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패망사]를 읽고

작성자관중|작성시간19.11.07|조회수519 목록 댓글 10


저자 : 존 톨런트

이번에 새로 출판된 책입니다. 교보문고에 놀러 갔다가 사서 읽어봤습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고 중일전쟁 발발까지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왜 이 난리법석이 벌어졌는지 곰곰히 생각하여 정리해본 글입니다. 책의 내용에 기초하여 개인적 생각의 정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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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군 폭주의 배후에는 극단적인 정치적 혼란과 청년 장교들의 빈곤 문제가 있었다.
서양이라면 청년은 노조 활동이나 정치 활동으로 불만을 배출할 수 있었다. 일본은 군대가 유일한 배출구였다. 인구폭발과 실업난,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농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대에서 가난한 집안의 영재가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군대의 장교로 임관하는 것 뿐이었다. 그곳에선 먹여주고 입혀주고 가르쳐주고 월급을 줬다. 그러나 일단 장교로 임관한 청년들은 더욱 더 빈곤 문제를 의식하게 됐다. 같이 임관한 동료들은 고향에서 보내오는 빈곤 호소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리곤 했다.

군대 안에서 청년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불만은 사상을 갖게 됐고 불만으로 응집한 청년들을 세상을 뒤집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들끓게 됐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관동군의 이시와라 간지나 이타가키 세이시로같은 급진파 장교들은 만주를 눈여겨 봤다. 중국 군벌들이 느슨하게 지배하던 만주를 빼앗아서 일본 산업의 원재료 공급처로 만들면 일본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만주만 먹으면 만사형통이라는 편의주의적 생각을 한 위관급 청년장교들을 주축으로 황도파가 결성됐고, 만주에 손을 대면 소련이 개입할텐데 그 소련을 막으려면 만주만으론 방어가 불가능하고 중국 북부가 필요하므로 확전되지 않을 수 없다고 본 영관급 이상의 장교들은 통제파가 되었다. 군 수뇌부의 장군들은 황도파와 통제파 사이에서 우왕좌왕했다.

일본이라는 체제는 이런 분열적 움직임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다. 매우 짧은 시간 안에 극단적 서구화와 자본주의 개혁을 추진하면서 한편으로는 봉건체제를 유지하려 했던 일본사회는 넘쳐나는 사회부적응자들로 거의 원심분리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제국의 지도자들이 군대의 불만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좋게좋게 무마하는 것 뿐이었다. 군인들이 공공연히 반란을 일으켜도 아주 작은 처벌로 봐주었다. 일본정부가 이런 식으로 무기력하게 뒷걸음질을 치자 일본인들은 군부만이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믿게 됐다. 민중의 지지에 힘입어 제국의 주도권은 정재계에서 군으로 넘어갔다. 용기백배한 청년장교들은 그저 생각이 이끄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일을 벌였다. '부패했다'고 낙인을 찍고 재계와 정계의 거물들을 암살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피살자보다 암살범에게 낭만주의적 애정을 품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암살범은 민중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으며 1~2년 안에 석방됐다.

청년장교들은 극단적인 짓을 벌이면서도 자신이 순수하고 결백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열광적으로 천황 만세를 부르짖었다. 무슨 짓을 벌이던, 설령 천황의 측근을 살해하는 짓을 한다해도 그것이 천황을 위한 일이었다고 주장하면 스스로도 당당해지고 여론도 무마되었다. 천황에 대한 충성은 모든 모순을 봉합하고 범죄를 덮어주는 마법과도 같았다.

이시와라 간지가 꾸민 31년의 만주사변은 대성공이었고 만주는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황도파 청년장교들의 연이은 암살 만행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감히 통제하지 못하고 꽁무니를 빼기 바빴다. 황도파는 득의양양하여 폭주했다. 36년에는 훗날 2.26 사태라고 불리게 될 반란까지 일으켰다. 거의 성공직전까지 갔던 반란은 이 모든 난리를 잠재울 유일한 권력자인 천황이 "이례적으로" 전면에 나서는 바람에 진압되었다.

황도파는 만주를 침략한 주역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중국 본토 침략에는 부정적이었다. 통제파는 만주침략을 부정적으로 봤지만 일단 만주국 건설이 기정사실화되자 역설적으로 중국본토 침략을 강행했다. 황도파와 통제파는 언뜻 보기에 모순덩어리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자국 이기주의 관점에 매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그들은 매한가지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황도파는 타국침략을 오족협화 따위의 이상주의로 윤색하고 싶어했을 뿐이고, 통제파는 철저히 실리적 관점에서 대소련(대공산주의) 전략을 만들고자 했을 뿐이다. 황도파는 만주만 차지하면 소련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중국 침공에 힘을 '낭비'하는 걸 반대했다. 반면에 통제파는 만약 만주를 먹는다면 소련은 반드시 전쟁을 걸어올 것이므로 만주침략에 반대했으며, 일단 만주를 차지한다면 소련과 싸우기 위해 반드시 중국 북부지방을 차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확실히 위관급이 주류였던 황도파보다 영관급 이상이 주류였던 통제파가 좀 더 현실적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만주가 소련의 침공을 막기엔 지리적으로 불리하다는 게 훗날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황도파가 1936년에 226사건으로 숙청되자 중국 본토 침공을 억제하던 힘의 균형도 사라졌다. 이제 거리낄 것이 없어진 통제파는 그 이듬해인 1937년에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이 모든 난리는 어째서 벌어진 것일까? 우리는 지금껏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중국을 침략했다고 배워왔다. 그런데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복기해보면 어딘가 좀 이상해진다. 그 '일본'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단어인가? 일본의 중앙정부는 필사적으로 만주사변을 막으려고 노력했고 군부를 통제하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정재계 주요인사들이 암살당하는 참극까지 벌어졌다. 만주사변도 중일전쟁도 일본의 공식적인 지도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군부 급진세력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결행된 것이다. 이건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안정적이라고 자부하던 중앙정부가 있었고 반란세력마저 절대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천황이 그 중앙정부의 꼭대기에 앉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군부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 마치 "무정부 상태"처럼 무단행동이 잇달아 일어나서 일본 전체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끌고 들어갔다. 의회와 내각은 브레이크도 변변히 걸지 못하고 일단 사태가 벌어지면 "쩝... 어쩔 수 없지" 하는 식으로 전쟁에 협조하는 태세로 돌아섰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왜 일본은 "통제력을 상실했을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일본 정치 체제에 치명적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급격한 개혁을 추진하면서 서구의 의회 민주정을 수입했다. 그들은 서양인처럼 의회를 만들고 총리를 세우고 내각을 꾸렸다. 이것은 서구의 발전된 정치체제였으므로 이를 그대로 모방하여 탈아입구하길 기도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한편으론 천황제도를 유지하고 싶었다. 마침 서구세계에도 입헌군주정이란 모델이 있으므로 일본인들은 그 체제를 "흉내내서" 그들만의 일본제국을 만들었다.

일본인들은 서구 정치체제의 역사를 무시하고 겉모습만 따서 국가체제를 모방했다. 일본인들은 그렇게 공식적인 국가기구를 설치하면 거기서 권력이 자연스럽게 나올 것으로 보았다. 모든 일본인이 충성을 바치는 천황까지 입헌군주제 헌법의 틀 안으로 끌고 들어와 정권과 일체화했으므로 중앙정부의 견고함은 당연해 보였다. 일본제국 헌법 제1조는 이 제국의 주권이 천황에게 귀속된다고 선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반란'이 일어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가에 반란을 일으키는 건 곧 '신'인 천황에게 반란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므로, 일본인이 그런 짓을 저지른다는 건 논리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웠다. 일본제국의 건국자들이 생각해볼 때 이 제국은 논리적으로 완전무결한 것이었다.

일본제국의 건국자들은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그들은 서구의 정치체제를 "흉내"내면서 그들이 왜 그런 정치체제가 되었는지,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연구를 하지 않았다. 왕과 의회가 공존하니까 입헌군주제가 적절한 모델이라고 생각한 것은 일본인 특유의 유치함마저 엿보인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서구세계의 피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왕이 어째서 권력을 잃고 의회란 것이 어쩌다 생긴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주권Sovereignty이란 단어의 형성과정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일본인은 지극히 일본스런 이해로 주권을 이해해버렸고, 그래서 모든 권력을 천황에게 몰아주었다.

서구의 입헌군주국은 왕이 권력을 잃고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얻어가는 과도기의 체제다. 입헌군주국의 주권은 왕에게 있지만 권력은 부르주아지 사회에서 나왔다. 왕은 소유만 할 뿐 통치의 책임과 권한은 부르주아 권력자들이 구성한 의회에 있다.

반면에 일본의 정치권력은 천황으로부터 나왔다. 의회를 구성한 것은 정재계의 인사들이었지만 그들의 권력은 천황으로부터 잠시 일임된 것으로 여겨졌다. 겉모습은 서구와 똑같은 의회민주정이었지만 권력의 근원이 달랐던 것이다. 이렇게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천황은 정작 스스로 권력을 휘두르지 않았다. 천황이 직접 정치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것은 오랜 막부 체제로 인하여 가히 '전통'이 되었다. 이런 전통이 이제 막 새로 건국된 일본제국 천황의 어깨를 짓눌렀다. 천황의 스승이자 국가 원로인 사이온지는 천황 히로히토에게 직접 정치력을 행사하지 말고 의회에 맡기라고 훈계를 하곤 했다. 사실 전통이 아니더라도 일본의 천황은 권력을 휘둘러본 경험이 없어 힘을 어떻게 행사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히로히토는 개인적으도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골방에 틀어박혀서 생물학 연구를 하는 게 취미인 인물이었다.

이렇게 모든 권력을 천황에게 몰아주고도 정작 천황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모두가 꺼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권력은 제대로 행사되지 않았다. '무권력의 제국'에서 의회와 내각은 소꿉장난처럼 서구의 의회민주정을 흉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경제가 좋을 때는 이런 모순에도 불구하고 민주정이 제법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29년에 세계대공황이 터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경제가 정말로 심각한 수준으로 전락하자 민중과 군대에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의회와 내각은 뭔가 영향력을 발휘해서 상황을 통제해야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들의 영향력은 민중이 아니라 천황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민중은 어디서도 자신들의 뜻을 대변해줄 권력자를 찾지 못했다. 오직 군대의 젊은 장교들만이 민중의 빈곤 문제에 호응했다.

군대가 반란의 기미를 보이자 중앙정부는 어떻게든 이들을 통제하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권력을 쥔 천황이 직접 통제력을 발휘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앙정부는 사실상 마비되었다. 반란이 일어나도 고위층 중 누구 하나 책임지고 사태를 수습하는 이가 없었다. 의회와 내각이 모두 우왕좌왕했다. 결국 보다 못한 천황이 마지못해 직접 목소리를 냄으로써 2.26사태는 간신히 진압되었다. 하지만 이 일을 기점으로 의회와 내각의 힘은 완전히 추락해버렸고, 군부는 정국을 완전히 장악하여 일본 전체를 거대한 전쟁 속으로 몰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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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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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관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11.07 안 읽은 책인데, 함 봐야겠네요.
  • 작성자그녀가가잖아-_- | 작성시간 19.11.07 허버트 빅스가 지은 히로히토 평전을 보면 히로히토는 일본덴노 즉위 이후, '덴노에 대한 형식적인 보고와 재가'로 알려진 막후 정치방식에서 적극적으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특히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 있어 히로히토는 군 작전상황에 대한 자세한 보고를 받았으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작전계획안은 미흡부분을 지적하고 재가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전쟁을 지휘하는 총사령관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중일전쟁에서의 중국군에 대한 독가스 사용은 반드시 덴노의 재가가 필요한 중대사안이었으며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의 과달카날 소모전 참사는 사실상 미군으로부터의 과달카날 탈환에 집착했던 히로히토의 작품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관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11.07 그렇군요. 사실이라면 헌법체제는 붕괴된 상태에서 천황이 개인숭배에 힘입어 개인적 영향력 행사에 들어간 게 아닐까 싶네요.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19.11.07 저는 교보가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봤거든요 좀 더 보시면 저자의 노골적인 친일편향적 서술이 몇군데 들어올 겁니다 저자 처가 일본인으로 알고 있네요
  • 답댓글 작성자관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11.07 걸러서 읽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거 1300페이지 넘는 건데...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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