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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도서]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작성자수박머리|작성시간20.06.28|조회수384 목록 댓글 6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중국사를 배웠던 우리의 머릿속에서 청나라는 무슨 의미일까요. 명-청으로 묶이는 인식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에겐 그저 명나라의 후신, 호복과 변발을 한 중국왕조 정도로 생각하거나, 서양 열강에 무너진 아시아의 병자를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소설 남한산성처럼 인조의 이마를 찧은 병자호란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겠죠.


저자는 또 하나의 중국 왕조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동아시아를 관리했던 세계제국으로서의 청을 조명합니다. 우선 전통적인 중국의 지리를 지금의 중국영토가 아닌 한족의 고유 영토, 진~명까지 이어진 생활권에 국한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청나라의 영토는 전통적 중국만이 아니라 만주지방, 내몽골과 외몽골, 티베트, 신장, 중앙아시아 부근까지 걸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청은 이런 여러 속주들을 관리하기 위해 각기 다른 통치체제를 구축해야 했고, 이 모습을 갖가지 유전자들이 섞여있는 키메라에 비유합니다. 한족화, 중화제국이라는 편견을 넘어 다이칭구룬, 대청제국이 어떻게 제국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는지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말이죠.


이 책은 6개 챕터로 이루어졌습니다. 금나라부터 시작해 청나라까지의 성장, 멸망까지 살아남았고 청의 중추가 된 팔기제도,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와의 외교 및 통치, 조선과의 관계로 알아보는 이원구조론의 반박 및 보론, 청 말기 시작된 한족의 약진과 근대 중국 만들기 등 흥미로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일 흥미롭게 여겼던 점은 중국에 동화되었다는 청에 대한 인식이 오랜 기간 허상이었음을 되짚어주는 부분이었습니다. 한족이 참여할 수 있던 청나라의 정치영역은 지리적으로는 옛 명나라와 베트남, 유구국 정도로 한정되었고 오로지 팔기만이 제국을 온전히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은 전통 중국의 영역에서 분리되어 몽골이나 티베트처럼 다른 번부로 다뤄졌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조선을 향한 창구는 한족이 아닌 팔기가 담당했다는 점 역시 재밌는 사실이었죠. 러시아와의 교섭, 중앙아시아 관리 등 "명나라의 유산"을 제외한 모든 것에서 한족은 접근을 거부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중화제국으로서의 청은 언제 나타나느냐. 그것은 19세기 청의 쇠약과 연관이 있습니다. 태평천국운동과 아편전쟁은 팔기의 통치정당성을 크게 훼손시켰고, 남부지방에서 일어난 신사층과 한족들이 중앙정계를 비집고 들어오면서 청은 급속도로 한화되어갔습니다. 결국 오래된 모순을 이기지 못하고 청은 무너졌지만, 지리적 유산은 고스란히 한족이 승계했습니다. 그리고 한족들은 그동안 이원적이고, 다변화된 통치체제였던 세계제국을 중국화 시키는데 착수합니다. 그 작업은 지금도 끝나지 않아 여전히 티베트, 신장, 대만과의 긴장 및 충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책입니다. 이민족 정부라는 막연한 개념에서 벗어나 왜 청나라가 한족의 것이 아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동시에 19세기 말부터 시작한 한족의 "중국 만들기" 역시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저자가 최대한 대중과 전문가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책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는 만큼 술술 읽히기도 합니다. 더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은 직접 확인하시길 권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현대 중국인들에게 청나라가 남긴 유산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 책 말미에 인용된 내용을 첨부합니다.


"끝으로 근래 중국 정부는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여 역대 정사의 계보를 잇는 [청사] 편찬 사업을 벌이고 있다. [청사] 편찬의 궁극적인 목적은 청 제국을 '중화제국'의 계보 속에 공식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것이다. 아래에 인용하는 어느 저명한 중국 학자의 말을 통해 청 제국의 역사가 오늘날 중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음미해 볼 것을 독자 여러분께 부탁한다."


"청나라가 통일을 완성한 이후, 제국주의가 중국을 침입하기 이전의 중국 판도를 가지고 역사 시기의 중국 범위로 삼을 수 있다. 이른바 역사 시기의 중국이란 이를 범위로 삼아야 한다. 수백 년이든 수천 년이든 이 범위 안에서 활동한 민족은 모두 중국 역사상의 민족이고, 이 범위 안에 건립한 정권은 모두 중국 역사사의 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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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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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수박머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6.28 정말 좋은 책들이 많죠. 하나씩 보고 있습니다
  • 작성자나아가는자 | 작성시간 20.06.28 구범진 선생님은 뛰어난 연구자죠. ㅇㅇ
  • 답댓글 작성자수박머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6.28 학계에서도 명성이 있으신 분이시군요
  • 작성자전쟁해군 | 작성시간 20.06.28 함읽어봐야겠다
  • 답댓글 작성자수박머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6.28 쉽게 읽히면서도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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