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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도서]초한전쟁 관련 연구서적 <유방> 사타케 야스히코 지음

작성자관중|작성시간21.04.09|조회수210 목록 댓글 3

아주 오래전에 읽고 필기해둔 내용인데 생각난 김에 공유 드립니다.

책 내용을 끝까지 정리하진 않았네요.

나중에 시간 나면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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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이 출생한 곳. 수향인 패현 풍읍 중양리.

행정구역이 교차하여 무법지대로 전락하는 곳. (삼불관, 사불관)

초 문화의 가장 북쪽 가장자리. 그래서 유방 스스로를 초나라 사람으로 여김.

유방의 자는 계季 (끝 계). 본명은 알려진 바 없음.

사기의 주석은 고조의 본명을 '방'으로 주장하지만 이 주석은 오해임.

유방이 태어난 패현은 비한어 계통 언어권.

'방'은 '형님'을 뜻하는 남방지역 방언일 가능성.

 

이 시기에 현명하다고 일컬어질 때는 임협적 능력과 그 것에 바탕을 둔 통치력이 있음을 뜻함.

 

큰 형 유백의 처에 대한 앙갚음으로 유백의 아들에게 갱힐후를 책봉. (국 도둑놈 제후라는 뜻)

둘째형 유중은 변방의 험지에 봉함. 학대에 가까운 조치.

정황상 유백과 유중은 배다른 형. 유교는 친동생.

 

유방은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지 않는 뻔뻔함과 이를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게 한 붙임성이 있음.

임협 기질의 건달이었던 아버지를 존경.

아버지를 열렬히 사랑하고 아버지한테 감화를 받아 아버지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흉내를 내고픈 기질과 행동.

 

72개의 점. 신비한 숫자. 사람들이 혹할 정도로 호언장담을 잘 하는 유방의 성격.

몸으로 느끼는 형의 인간.

어질고 사랑으로 대하고 베푸는 것을 좋아한다는 평이 있는 반면에

극히 자기 중심적이고, 사람을 가볍게 대하고, 욕을 잘한다는 평이 일반적.

거만해서 예의가 없다.

본래 중국에서 욕을 한다는 행위는 목숨을 걸어야 되는 일이다.

욕을 한다는 행위는 죽음 이외 다른 길이 없거나, 그렇게 여긴 자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마지막 행위다.

죽는 한이 있어도 상대의 체면을 깎고 자기 체면을 지키는 행위가 욕이다. 욕 = 비일상적 행위.

중국인은 타인을 함정에 빠뜨릴 때 상대를 도발해 자기를 욕 하도록 유도한다.

"그 녀석은 나를 욕했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잘못을 한 순간에 지워버리는 마법의 말.

한편 욕이라는 행위는 임협의 무리의 특징이기도 하다.

뽐내기와 허영심

부모가 자식을 욕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욕은 임협적 집단의 우두머리로 하는 유방에게만 주어진 특권.

 

 

당시 많은 사람들, 특히 반진反秦 투쟁에 나선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주함.

항우의 조부 항연의 반진군이 패배. 항읍에서 동북방 280km 이주.

장량도 진시황 저격에 실패하고 망명해서 하비에 숨어.

 

법률 만능 지배체제의 법망에서 벗어난 임협의 인의사회.

여치의 부친 여공도 호협 출신.

6국의 수도에 대한 진나라의 제압과 파괴로 많은 유민이 사수계 초승달 모양의 수향 소택지대로 이주.

 

진의 통일지배의 근저에는 획일적인 법제 시스템이 존재하고, 법제의 근간에는 획일적인 토지제도가 존재.

관중 위수지역의 농촌은 획일적인 밭모양을 형성.

장강 유역의 벼농사 지역은 불규칙한 형태.

밭농사 = 획일적인 군대식 조직이 발달.

초 지역의 논농사 사회는 크고 작은 포도송이같은 동료사회.

 

논농사 취락 + 종횡의 수로 연결 → 넓은 사회관계와 인과관계. 자율성. 해방구.

 

 

후배지 = 항구의 배후에 있는 육지. 항구의 출하 및 입하 물자의 수급 관계 등에 밀접한 관계.

광역적 인간관계의 네트워크. 1차 산물의 집산지.

수로와 연결된 각지에 제철과 철기제조가 발달.

 

철 제품의 제작과 유통의 중심이 되는 지점과 진나라 말기 영웅들의 출신지가 일치한다.

 

무제 시기 철관의 소재지는 교통로 따라 분포. 산동에 다소 집중.

농경을 지원하는 철기가 교통로, 특히 수로를 통해 널리 유통.

 

벌이가 될만한 이야기에 붙어 돌아가는 것이 인간관계와 정보망.

상공업 중심지를 남방으로 연결.

타향살이와 임협적 관계.

 

객가客家

후한 무렵부터 기후가 한랭화 시작.

북방 유목민의 남하. 화북 밭농사지대 백성이 남하.

화북의 경지와 취락 황폐화.

 

 

소택지대로의 주민이주는 두 유형이 있다. 첫째는 신천지를 찾아 이동해온 경우이고, 둘째는 진의 위나라 제압으로 유민이 남하해온 경우.

진나라 군대가 위나라의 수도 대량을 수공으로 초토화. → 교통과 상품유통 체계에 대혼란.

농사 짓는 풍읍 사람. 어업을 하는 소택지 사람. (고기잡이와 수적질 겸업)

 

본래 이민자들은 임협적 관계를 통해서 연고를 가지고 들어와 정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난민이 지나치게 늘어서 연고가 안통해 → 유민들이 독자 조직 형성해서 실력행사에 의한 정착. 토지분쟁 발생.

무질서한 약탈과 살상.

 

임협적 고리로 정착 과정에서 현아縣衙의 요직 장악.

인구 이동의 기착지부터 종착지까지 임협 조직 형성. 분쟁 해결과 항쟁. 외지와 연락.

 

전국사공자의 임협 기질.

맹상군이 천하의 임협을 불렀기 때문에 건달 6만여 가家가 설 지방에 몰려들어. 임협의 후예가 사는 도시.

유방이 신릉군을 사숙함.

사숙 = 스스로 그 사람의 인격이나 학문을 본받아 연마.

 

중국의 인과관계는 상대와 교제하는 것이 자기에게 의미있다고 서로 인정하는 것을 바탕으로 성립된다.

 

옛 6국 가운데 가장 반진적인 초나라.

 

왕의 명령을 명命

왕의 포고를 영令

황제의 명은 제制

황제의 영은 조詔

진나라는 성스러운 숫자를 6으로 선포.

 

과도한 토목공사가 반진봉기의 씨앗.

 

간선 = 줄기가 되는 주요한 선. 간선교통망의 안전확보.

 

누각樓閣은 중국 취락의 고립성과 연대성의 상징.

 

유방은 소하 등의 지역유지의 추천을 받아 정장 벼슬을 얻음.

 

흉년이나 재해에 대비해 곡식을 저장한 창고 수백개.

물류종착역 형양. 거대 창고 수백개.

수운으로 사용될 수 없는 황하 구역. 수운으로 운반되어 온 물자는 여기서부터 육로로 이용해야 함.

 

삼문협을 통과하기까지의 황하는 협곡이지 강이 아냐.

 

관중의 면적은 천하의 3분의 1; 인구는 10분의 3에 불과하지만

그 부는 천하의 10분의 6에 달한다.

 

임협세계는 부정형의 인간관계다.

덕이 있는 자는 나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다.

유방의 장인인 여공은 진나라 재상 여불위의 일족일 가능성이 있음. 즉 명문가.

여불위가 패망하자 여씨 성을 가진 많은 이들이 반진투쟁에 가담.

 

유방의 풍패집단은 망, 탕 소택지에 근거지 건설.

 

진시황의 치도 건설은 중앙의 지배를 말단에까지 관찰시키기 위한 수단.

 

대규모 물자 보급이 용이한 주요 해방지역.

 

자객을 포섭하는 세 가지 요소 예禮 의義 리利

임협정신의 기본요소

 

무례의 예.

유방에게 예라는 것은 종래와는 다른 그들 집단의 단결을 위한 새로운 질서의 표현.

 

진섭과 오광의 난.

큰 비 때문에 정해진 날짜 내에 행군 도착이 실패. 진나라 법률로 전원 참형 규정 → 반란의 기폭제

진섭과 오광은 죽은 초나라 공자 창평군을 옹립했던 초나라 장군 항연과 시황제의 장자 부소를 사칭함.

부소의 모친은 초나라 왕족 출신.

초나라 사람의 자랑과 원한을 상징하는 땅 기현에서 봉기.

국명은 장초長楚 (대초大楚라는 뜻)

 

황하 유역의 문화권과 장강 유역 초楚 문화권

진의 함양과 장초의 진

 

대초라고 칭했지만 건국선언은 아님.

 

진나라는 인부들에게 종군하면 해방시켜준다는 조건을 제시하고 진나라 군대로 편입시켜서 진섭과 오광의 반란군을 격파해나감. 장함 장군.

 

진섭과 오광의 실패 = 초 지방의 철저한 민중적 반진反秦 경향을 지속적으로 조직화 못해

반면에 항량과 항우 집단은 탁월한 군사/행정 능력에 의하여 초 지역의 민중의 전면적인 협력을 쟁취

당시 봉기한 군웅 가운데 항량과 항우 집단이 가장 속 깊고, 주도면밀하게 준비공작에 몰두

 

몰래 병법으로 빈객 및 자제를 조직하고 이로써 그 능력을 보았다.

결사대 90인 양성.

그 중 한 명은 화폐를 위조해 군자금을 모아

 

유방의 고향도 봉기.... 전체 패현 차원의 봉기태세. 거의 모든 젊은이가 참여.

지하정권의 예비내각.

중국의 비밀결사 지하단체는 언제나 일종의 예비내각을 구성한다. 우두머리는 황제이고 그의 부인은 황후, 그 밑으로 재상 및 장군 등의 직함이 달려...

유방의 조직도 마찬가지.

 

유방이 치우에게 제사를 지냄

치우는 묘족의 조상신.

중국 동북부의 묘족은 원래 양자강 이북에 거주하다가 후대에 남하.

치우신앙. 초 지방 민중에게 향토애의 상징.

 

명문가 출신으로 유방을 정계에 진출시킨 여치

 

진나라 사수군 토벌군이 오자 유방의 반란군은 내부 이탈자 방지를 위해 농성 장소를 변경.

규모가 크고 주민이 많은 패현 현성에서 작은 풍읍 읍성으로 이동.

사흘째 성 밖으로 나와 진나라 군대를 공격

 

볏짚은 소 말의 사료로 쓰였고, 연료로도 유용.

진나라 정부는 토지 면적에 따라 볏짚의 징수를 규정.

 

 

위나라 = 진섭이 세운 장초의 괴뢰 속국.

 

옹치가 위나라 투항. 옹치는 본래 위나라 사람.

 

새로운 세력이 초왕 옹립. 초왕 경구 세력. 유방군이 참여.

배반한 옹치가 점거한 풍읍의 탈환에 전력을 다해...

 

장량의 조언

초 지방은 그 일부에 할거정권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쟁쟁한 경쟁자들이 공을 다투는 상황)

실세가 없으면 명성이라도 잡아야 한다.

존립기반 강화.

 

유방군은 항량 세력에 투항.

 

초 회왕이 관중이 먼저 들어가는 제후를 관중의 왕으로 삼는다고 선언.

 

유방은 먼저 관중으로 들어가려다가 항우의 별동대인 사마앙군과 우발적으로 교전 후 패배.

진격로를 함곡관에서 무관으로 변경.

사마앙군이 함곡관으로 진공하는 것이 유방군의 무관 진공에 유리. 위기를 기회로

 

함곡관 동쪽은 모두 진나라를 배반하고 제후들에게 호응.

 

무관 공격은 전체 군단 내에서 최정예로 선발.

군수물자 관계나 농성, 방위 전투에 호응하는 공병부대를 최소화하고 가능한 신속 진군.

무관 돌파하고 요관 공략.

진 장수들이 투항했으나 그들의 부하들의 생각은 달라.

부하들이 반대하면 포위될 수 있어. 투항한 진 장수들의 방심을 이용해서 급습.

 

관중 입성.

해방군 행세.

소하는 진 왕실의 행정문서들을 챙김. 문서 시스템으로 말단의 민중 파악.

 

장함군. 진제국 최대 최강군.

 

관중 입성 후 유방의 실수.

초 회왕에게 보고를 하고 명분을 갖춰야 하는데

서약의 형식성은 망각되고, 관중에 침공하여 진나라를 타도한 유방의 실적만 겉으로 나와

그런데 오히려 실적으로 따지면 최대 공로자는 항우가 정당.

 

명분을 취한 항우가 쳐들어오자 어쩔 수 없이 항복.

항복은 정치적 죽음. 잘못되면 극형.

 

x축과 y축으로 구성되는 독특한 항복의식.

y축은 북쪽으로 갈수록 군왕의 자리이고 남쪽으로 갈 수록 신첩의 자리. (지배축)

x축은 서쪽으로 갈 수록 중화의 자리이고 동쪽으로 갈 수록 이적의 자리. (교도축)

 

천자는 남면한다.(남쪽을 바라본다 = 즉 자신은 북쪽에 앉아서 남쪽을 바라본다.)

 

유방이 사죄 의식 도중에 도망쳐?

실제로는 의식이 끝까지 행해져.

 

항우는 '관중'을 재해석하여 함곡관과 무관의 사이에 있는 땅인 파촉의 왕으로 유방을 봉함.

한 번 파촉으로 들어가면 돌아올 수 없어.

파촉만 영유시 정보는 모두 일단 진나라 지방을 통과한 뒤에 비로소 파촉의 땅에 도달 → 천하의 대세로부터 완전히 분리됨을 의미. 독 안에 든 쥐.

유방측은 항백에게 뇌물을 줘서 한중의 땅을 추가로 얻어냄.

한중 추가시 유방이 입관했던 경로를 밟아서 중원으로 다시 나갈 수 있음.

 

중국의 서북방이 정치 군사적으로 동남방을 압도.

북조는 일군만민하고, 남조는 밑으로부터의 집단적 동료적 결합의 강화, 연쇄체계 통해 지배 수립. (임협)

 

항우는 함양을 버리고 팽성으로 귀환.

진나라 병사를 죽게 내버려두고 왕에 임명된 세 사람. 옹왕 장함, 새왕 사마흔, 적왕 동예.

진나라 백성은 냉담.

민심이 유방 쪽으로 단숨에 기울어.

항우는 의제로 격상된 회왕응ㄹ 다시 대왕 지위로 격하. 남초의 대왕.

남초의 세 왕과 관계가 미묘. 남초의 세 왕이 회왕을 살해.

 

회왕을 의제로 격상. 권력 탈취를 위한 제1보.

 

 

홍문의 연회 이후

항우가 제 지방을 삼분한 것은 정세 판단이 안이했다.

 

감시꾼으로 붙은 항백과 3만명의 초나라 군대.

관중 탈환시 항백에게 옹왕의 지위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회유.

 

남정에 이르도록 장수들 수십 명이 도주.

한신은 병사들의 망향심을 이용해 동방정벌군을 출정하라고 진언.

병졸이 한중에 자리 잡게 되고 만다면 끝장.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 = 사회적 의의가 있는 죽음

 

유방은 초나라 사람이면서 진나라 병사들을 이끌고 초나라 침략. 56만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 팽성 침공. 초나라 사람들의 증오심을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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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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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마카롱 | 작성시간 21.04.09 초나라가 묘족이 세운 나라이다보니 유방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기야 하죠.


    유방이 천하를 얻은 이유를 살펴보자면은 역시나 소하의 존재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정복이후의 통치에 대해서 소하는 너무도 잘 알고 프로세스를 정석대로 하였죠
  • 답댓글 작성자관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4.11 소하가 물론 훌륭하긴 한데, 장량과 한신도 훌륭했고, 결정적으로 이들을 기용했던 유방 자체가 왕자(王者)의 자질이 탁월했어요.
    그리고 항우의 엄청난 정치적 삽질들도 있었고...
    초한대전은 어느 대단한 캐릭터 1~2명으로 승부가 결정될 만큼 간단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반전에 반전이 거듭됐고 치열한 공방전과 결정적 실수들이 오고 갔어요.
    두 권투 선수가 12라운드 꽉 채워서 치고 받는 대혈투를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어제 다시 한 번 책을 읽어봤는데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어요. 오늘날의 세계대전급 총력전이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마카롱 | 작성시간 21.04.11 관중 다시 생각해보니깐.. 한신 장량 유방 풍월 등등등 사건면에서도 변수가 많았죠.

    님의 말씀이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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