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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초한전쟁에 대한 생각 정리

작성자관중|작성시간21.04.11|조회수182 목록 댓글 0

어제 <유방>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조금 읽어보려고 했는데 끝까지 다 봐버렸네요.. 그만큼 흥미로웠습니다.

 

초한대전에 대한 개인적 생각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삼국지와는 결이 다르다

삼국지가 군웅들의 야망에 의한 내전과 국지전들, 그리고 한 황실 중흥이라는 이념이 조금 곁들어진 느낌이라면

초한지는 2차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국가들의 총력전, 그리고 진 제국이 가져온 새로운 통일제국의 이념과 과거의 육국 귀족 이념이 충돌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 전쟁의 느낌입니다.

 

단순히 군웅들이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서로 다투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이념적인 전쟁이었으며, 통일 이전의 육국 지방민들간의 증오심과 대립심이 작동했습니다.

시황제에 의해 물리적으로 통일은 이루었지만 각 지방 향토민들의 정체성은 통합하지 못했고, 이게 진 제국의 빠른 붕괴와 얽히면서 핵폭발을 일으킨 것...

 

2. 이념의 대결

전국시대 진나라를 제외한 조/위/한/초/제/연 6국의 귀족층은 진 제국이 가져온 통일체제에 강렬한 반발심을 가졌고, 이들 왕실과 귀족층은 과거의 분국 체제로 돌아가길 원하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항우가 진 제국을 멸망시키고도 제국의 수도 함양을 버리고 팽성으로 돌아간 것, 황제를 칭하지 않고 초의 대왕이 된 것, 과거의 육국 체제를 다시 회복시킨 것은 이런 이념적 반발심 혹은 구체제에 대한 노스텔지어가 강하게 작동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3. 항우의 정치적 오판

유방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물론 3걸인 장량, 소하, 한신의 뛰어남도 있지만, 사실 그보다는 항우의 결정적 오판들이 더 크게 작용했습니다.

     ○ 유방을 파촉으로 쫓아내고도 거기에 굳이 한중땅을 얹어줌으로써 중원진출의 교두보를 넘겨줬다는 점...

     ○ 유방이 다시 기어나오지 못하게 막는 지역인 진나라를 3분할해서 각개격파를 당할 여지를 만든 점..

     ○ 진나라와 제나라 모두 3분할해놓고 그 지방에 정치기반이 없는 인물들을 왕으로 봉했다는 점... (조나라는 2분할?)

     ○ 너무 많은 인사 실패... 이들이 다 유방편으로 넘어가거나 자중지란에 빠지게 됨..

 

항우가 진나라와 제나라를 그렇게 해놓은 이유는 나름 이해는 감...

과거의 육국 체제로 돌리기는 하되, 초나라가 우위에 서도록 기존의 강자들을 쪼개놓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게 이도저도 아닌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 임명한 왕들이 지역정치기반이 없어서 그 지역을 장악하지 못함..

그 결과 진나라와 제나라 모두 항우에게 적대적인 인물들에게 쉽게 정복당함...

진나라는 유방이 쉽게 정복하게 되고

제나라는 항우의 불구대천 원수인 전영이 항우가 봉한 왕들을 모두 죽이거나 내쫓고 제나라를 차지하는 데 성공...

 

조나라에는 유방과 친분이 있던 인물인 장이를 왕으로 임명하는 실수를 범하고, 그 장이와 원수지간인 진여도 같이 조나라의 세력가로 남겨둠.. 진여는 장이를 왕으로 임명한 항우에게 반감을 품고 전영, 경포와 동맹 맺어서 초나라에 대항하는 대환장 사태가 벌어짐..

 

항우의 당초 생각 = 다시 옛날처럼 7국 체제로 돌리되, 초나라 우위로 만들면 평화롭고 행복하겠지?

현실 = 다 개판 됨. 새로운 라이벌들이 나타나기 쉬운 상태가 됨..

 

 

4. 유방의 탁월한 정치적 감각

     ○ 단순히 세력 불리기에 골몰하지 않고 각 지방의 풀뿌리 민심과 직접 접촉하는 유일한 지도자였다는 점...

     ○ 의제가 항우에게 살해되자 곡을 하고 제사를 지내서 항우와 대적하는 천하의 명분을 세움.

     ○ 항우가 제나라 전영과 싸우는 틈을 타서 과감하게 항우의 근거지인 팽성의 뒤치기에 성공함..

     ○ 항우의 반격으로 쫓겨나는 와중에도 가장 안전한 관중으로 도망치지 않고 함양을 점령함..

     ○ 방어를 위태롭게까지 하면서 한신 별동대를 따로 보내서 화북지방을 공략함.

 

유방이 관중으로 도망치지 않고 함양에 목을 맨 이유가 훌륭한데

만약 관중땅으로 도망친다면 안전은 확보하겠지만

일개 진 지방의 유방이 천하를 거머쥔 초왕 항우와 맞선다는 불리한 정치적 도식에 빠지고 말게 됨..
하지만 함양을 장악하면 하남을 차지하고 하내를 넘볼 수 있어 삼진, 하남, 하내의 다섯 제후 8군을 거느리고 위왕 표를 동맹군으로 하는 대왕이라는 지위를 주장하는 것이 형식적으로 가능해짐.. 이런 정치적 그림을 그린 것.
이런 명목적 지위를 사수하는 것은 천하의 동향 속에서 유방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필요조건이었음..

 

유방이 진짜 깡다구가 대단한 게... 극도로 위험한 상태에서도 정치적 그림을 위해서 함양을 좀처럼 포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과감하게 병력을 빼서 한신의 별동대로 만들어서 화북지방을 공략하게 맡기기까지 함..

방어의 중심인 한신이 북방으로 떠나면서 함양은 더욱 위험해짐..

항우군의 포위를 당해서 유방은 몰래 함양을 탈출하기까지 함... 물론 다시 병력을 모아서 또 돌아옴...

 

항우가 전영과 경포의 뒤치기 때문에 힘을 집중하지 못한 덕분에 유방은 계속 틈을 노려서 반격을 하며 함양 부근에서 전선을 유지함...

 

 

5. 총력전

유방, 한신, 전영, 경포가 사방에서 두들겨 패도 항우는 성난 황소처럼 좌충우돌하며 엄청 오랫동안 버팀...

유방은 계속 관중의 소하에게 쇼미더머니를 외쳐서 병력과 물자를 충원하지만 이것도 한계에 도달함..

관중땅이 천하 경제력의 6/10을 차지할 정도로 알짜배기 땅이어서 이만큼 버틸 수 있었던 것인데

그 관중땅의 인구도 절반으로 줄고 경제력이 초토화될 정도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게 초한대전이었음..

항우도 버티고 버티다가 후방에서 경포의 끈질긴 뒤치기 때문에 보급물자가 부족해서 결국 유방과 정전협정을 맺음..

물론 협정은 유방의 훼이크였고, 항우가 팽성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한신군, 경포군을 집결시켜 협공...

해하(진하)에서 항우를 죽이는 데 성공함..

 

초한 양측 모두 모든 에너지가 고갈될 때까지 치고 받은 세계대전급 싸움이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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