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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2: Academy

갤리온들

작성자쿄쿄쿵|작성시간11.03.09|조회수2,391 목록 댓글 5

 

 

 

 

난반 무역선(Nanban Trade Ship)

 

 

강점&약점

+ 다수의 대형 대포로 무장한 강력한 유럽의 함선

- 다수의 일본함선에 의한 포위공격에 취약함

 

요구건물

- 난반 숙소(Nanban Quarter)

 

간략설명

이 유럽 상선은 해적의 습격에 대비한 강력한 대포로 무장돼있다.

 

긴 설명

유럽인 또는 난반⑴ 무역상들은 중국으로부터의 비단과 같은 다양한 상품과 함께, 뎃포와 대포의 주요 원천이다. 그래서, 그들의 화물은 일본해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던 악명높은 와코⑵들에게 주된 타겟이 돼곤했다. 해적의 습격을 막기위해 선박에 강력한 유럽식 대포를 설치했으며, 몇몇 군함의 능력도 갖췄다. 만약 잔혹하고 무례한 유럽인들을 기꺼이 신뢰 할 수 있고 매우 높은 자금을 지불할 능력이 있다면, 이 무역선을 함대로 고용 해 볼 수도 있다. 일반적인 난반선박은 유럽인들이 설계한 두 개의 돛대와 큰 삼각 돛을 단 캐러벌이다. 또 난반은 남쪽의 야만인을 의미하고, 이 말은 1540년대 이후부터 일본에서 무역을 하는 유럽상인을 통칭하는 말이 됐다(일본은 외국인과는 적은 접촉을 가졌으며 유럽인들은 전통적인 일본의 예절방식에 반해 거칠고 상스럽다고 생각했다). 난반무역은 유럽의 무기와 중국의 상품들을 가져왔지만, 유럽인에 대한 불신과 천주교 선교사의 선교로 인해 결국 사코쿠 정책⑶이라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로 인해 1633년, 일본은 폐쇄국가가 됐으며, 일부  네덜란드 상인을 제외한 외국인들은 출입이 금지됐다.

 


 

 

1) 난반(南蠻, なんばん, Nanban, 남만)

중화사상을 기반으로한 이 명칭은 중국을 기준으로

동쪽의 오랑캐는 동이,

서쪽의 오랑캐는 서융,

북쪽의 오랑캐는 북적,

남쪽의 오랑캐는 남만이라 부른다. 

 

 

 

 

 

 

 

 

2) 와코(倭寇, わこう, Wako, 왜구)

- 왜구란, 13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연안부나 일부 내륙 지역을 침략하고 약탈하고 사람들을 납치하며 밀무역을 행하던 일본인(또는 왜인)들로 구성된 해적을 가리킨다.

14세기에서 16세기의 일본은 센고쿠 시대로 막부가 실권을 잃고 각 지방으로 분열된 혼란한 시기였다. 일본 연안 일대의 생활이 궁핍한 중소 무사나 농민 및 어민 가운데 해적이 되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의 근거지는 막부의 통제력이 가장 약한 기타큐슈 연안 지역으로, 특히 대마도, 이키 섬, 마쓰우라 등지가 주된 거점지였다. 주된 약탈물은 식량이었으며 그 규모는 100척에서 500척까지 이르는 선단을 이루어 연안 마을을 습격하는 형태였으니 때로는 내륙 깊숙이 들어오기도 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3) 사코쿠정책(쇄국정책, Policy of sakoku)

 


                   

 

                   

구로부네(黒船, くろぶね, The Black Ship, 흑선)

 

 

강점&약점

+ 다수의 대형 대포로 무장한 강력한 유럽의 함선

- 다수의 일본함선에 의한 포위공격에 취약함

 

간략 설명

구로부네는 중무장한 무역선이며, 보통 다양한 화물을 싣는다.

 

긴 설명

이 포르투갈 무역선은 한해에 한번 유럽으로 돌아가기 전 중국에 상품을 나른다. 때문에, 이 무역선은 일본 해안을 두 번 통과하게 되는데, 이는 악명높은 와코의 좋은 먹잇감이 될 만 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이 무역선은 중무장을 갖췄으며, 튼튼하게 만들어졌고, 속력 또한 빠르다. 그렇기에 어떤 위협적인 일본 함선이라도 파괴시킬만한 강력하고 충분한 유럽식 대포를 실고 있어 확실히, 구입할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1543년, 다네가시마 토키타카⑴가 포르투갈 상인으로부터 뎃포⑵를 구입한 것이 일본과 포르투갈과의 첫 교역이었다. 뎃포는 일본에게 있어 첫 현대식 화약무기였으며, 후에 많은이들이 찾게 됐고, 포르투갈인들은 두 나라 사이에서의 정기적인 무역을 위해 시장을 형성했다. 뎃포의 도입은 가타나를 든 사무라이의 백병전이 주를 이루었던 전장에서 뎃포를 든 아시가루⑶의 대규모 일제사격으로 일본의 전쟁양상을 바꿔 놨다. 그것 뿐만 아니라, 카톨릭 선교사들이 들어와 일본사회에 빠르게 영향을 주기 시작했으며 곧 다이묘와 가신들은 사무라이 정신 지낸 채 개종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의 구로부네와는 별개

 

 


 

 

1) 다네가시마 토키타카(種子島時堯, たねがしま ときたか, Tanegasima Tokitaka)

텐몬12년(天文12:1543), 큐슈 남쪽의 오오스미노쿠니 타네가시마의 섬 니시무라에 표착한 포르투갈 상인에게 영주 타네가시마 토키타카는 뎃포(鐵砲)를 2정 구입했다. -출처 역사군상 전국규슈군기, 학습연구사, 1989-

 

2) 뎃포(鐵砲, でっぽ, Matchlock firearm, 철포, 조총)

- 뎃포(철포)없이 전쟁에 나간다는 뜻의 무데뽀[무철포(無鐵砲)]라는 말이 생겨났다.

- 하늘을 나는 새를 쏘아 맞혀서 떨어뜨릴 수 있다(能中飛鳥)는 의미에서 조총(鳥銃)이라고 부른다.

일본 전국시대(1467~1573)는 뎃포로 전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국시대 당시 일본은 세계 최대의 뎃포 생산국이었다. 1573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무로마치 막부를 완전히 멸망시켜서 전국이 통일되고 난 후, 임진왜란(1592~1598)에는 그 전국시대에 사용되었던 뎃포를 사용하였다. 노부나가는 뎃포 전술에 가장 뛰어난 명장으로, 단발식이었던 뎃포의 단점을 3교대 사격(3열 횡대로 1열씩 교대하면서 사격하고 장전하는 방식)이라는 전술로써 연발 사격의 효과가 나도록 하였다. 이러한 노부나가의 3교대 뎃포사격 전술로, 당대 일본 최강이었던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賴)의 기마군단을 궤멸시긴 1575년 나가시노 전투는 매우 유명하다. 노부나가는 일본의 사무라이식 창검 위주 전투방식을 뎃포위주의 전투방식으로 바꾼 인물이다. -출처 위키백과-

 

 

3) 아시가루(足輕, Asigaru)

최하 무사계급이며, 주로 농민이나 하층민들에서 선발됐다(도요토미히데요시도 이 계급부터 시작).  일반적으로는 보병을 일컫는 일본의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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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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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즈사노스케 | 작성시간 11.03.09 쿠로부네라길래 16세기에 ...? 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쿠로부네도 있었군요 ㅋㅋㅋ..
  • 작성자비타튼튼 | 작성시간 11.03.10 쿠로부네 유지비가....ㅡ.ㅡ;;
  • 답댓글 작성자쿄쿄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3.10 ㄷㄷㄷ..
  • 작성자VOCARLOID 時代 | 작성시간 11.03.25 에라이; 모집비용이 무슨... 대포가 몇 문이나 달렸다고; 나토에서 나오는 전열함급으로 비싸냐..(그리고 유지비는 전열함
    보다 더 비싼듯>>)
  • 작성자재즈사랑 | 작성시간 11.05.06 아놔 모집을 해야 모집비용이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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