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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큐터] 전쟁론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과 본좌 만슈타인-4

작성자이제큐터|작성시간10.05.01|조회수1,048 목록 댓글 4

 

4.스타브카의 오판과 붉은 군대의 공세 확대

 

1월에 시작한 하르코프와 로스토프에 대한 공세가 성공적으로 돌아가는 듯 하자 스탈린과 스타브카의 기대는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세가 성과를 보이고 독일군 남부전선이 무너지는 듯해 보이자 스타브카는 별 작전의 본디 목표를 훨씬 거대하게 만들어 독일 중부집단군까지 확대하려 했습니다.

 

스탈린과 주코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끝나자 즉각 포위 작전에 동원된 병력들을 이동시켜 보다 북쪽에 위치한 새로운 목표로 보냈습니다. 로코소프스키가 지휘하는 돈 전선군 사령부와 예하 소총군 중에 제65군과 제21군이 새롭게 편성된 제2 전차군 및 제70군과 협력하여 보로네시-리브니 지역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받았으며 돈 전선군은 중부 전선군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제16 항공군과 제2 근위기병군단도 이 지역으로 재배치되었습니다. 나머지 돈 전선군의 제24군, 제64군, 제66군은 스탈린그라드 지역에서 재편성에 들어갔고, 바투틴이나 로코소프스키의 명령에 따라 어디에라도 합류할 태세로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소련군은 공세를 위해 부대를 대대적으로 개편합니다.

 

확대된 별 작전은 독일 중부집단군에 대해 연속적으로 3개의 공세 작전을 펼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1단계로 2월 12일에 서부 전선군과 브랸스크 전선구이 협격하여 오룔 돌출부의 독일군을 포위합니다.

2단계로 2월 17일에서 2월 25일 사이에 이들 2개 전선군이 새롭게 투입된 중부 전선군과 조우하여 브랸스크 일대의 독일군을 일소하고, 데스나 강을 넘을 공고한 교두보를 확보합니다.

마지막 3단계로 25일에서 3월 중순 사이에 칼리닌 전선군과 서부 전선군이 스몰렌스크를 점령하고, 남쪽의 이웃 전선군과 협동하여 르제프-뱌지마 돌출부의 독일 중부집단군을 섬멸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약한 내용이지만 정말 어마어마한 공세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스탈린과 스타브카는 야심만만한 작전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게 실패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공세들은 보로네시 전선군과 남서 전선군이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성공과 일치되도록 시간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소련군은 3월 중순에 드네프르 강 서쪽까지 진출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을 세우는 것과 실제로 시행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로코소프스키의 충격 집단은 부대 재편성에 불과 6일의 시간을 배당받았고, 전혀 새로운 지역으로 공세를 준비하는 데 5일의 추가적인 시간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라스푸티차에 빠진 독일군 오토바이병. 라스푸티차는 독일군 뿐만 아니라 소련군에게도 걸림돌이었습니다.

 

 

제2 전차군과 제2 근위기병군단은 이미 리브니 지역에 집결했지만, 제70군은 겨울의 러시아 도로를 200킬로미터 이상 이동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21군과 제65군은 스탈린그라드 지역으로부터 철도와 도로를 통한 힘든 이동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초봄에 내리는 폭설이 이동을 방해했고 라스푸티차가 수시로 찾아왔습니다. 집결지에서 공격 예정지로 이동하는 도로는 이미 심각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스탈린그라드로부터 북쪽으로는 오직 단선의 철도선 하나만 존재했고, 이미 작성한 시간 계획표는 허구임이 드러나 버렸습니다.

 

로코소프스키는 당연히 자신에게 부과한 빡빡한 시간 계획에 반대를 표시했습니다.

 

 

 

 

 

 

 

 

시간과 예산을 좀더 주신다면...

 

그 정도면 충분함. 닥치고 공격.

 

(ㅅㅂ놈!)

 

로코소프스키라고 별 수 있습니까? 서기장은 물론이고 스타브카도 까라는데 까야죠. 어쨌든 로코소프시키는 공세를 시작합니다. 물론 위에서 말한 애로사항 때문에 2월 25일 이전에는 공세에 나설 수 없었고, 25일 당일이 되어서도 제2 전차군과 제65군은 철도 하차점에서 공격 집결지로 이동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로코소프스키는 2월 25일에 로딘의 제2 전차군과 바토프의 제65군을 선봉으로 내세워 공세에 착수했습니다. NKVD요원으로만 구성된 졍예 부대인 타라소프 중장의 제70군과 치스챠코프 중장(후일 이 치스챠코프가 북한에 입성하는 소련군 장군이자 소련군정을 이끄는 인물이 됩니다.)의 제21군이 도착 즉시 공격에 가담했으나 전력이 완전히 집결하지는 못했습니다. 양측 야전군은 진흙탕으로 변한 도로에서 교통 체증에 시달리며 행군 중이었습니다.

 

 

 

 

라스푸티차는 현대 러시아에서도 힘든 문제입니다. 여기에 시달렸을 양국의 병사들을 생각하니 그저 묵념

 

 

그 사이 2월 22일에 브랸스크 전선군의 제13군과 제48군이 독일 제2 기갑군의 우익을 강타했고, 바그랴먄 중장 휘하의 제16군이 지즈라 북쪽에서 독일 제2 기갑군의 다른 측며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날씨와 독일군의 교묘한 방어로 바그라먄의 진격은 방해를 받았습니다. 2월 24일까지 서부전선군과 브랸스크 전선군의 성과는 보잘것 없었습니다.

 

중부전선군의 상황은 이보다는 나은 편이었습니다. 제13군의 우측면 엄호하의 바토프의 제65군은 독일군 방어선을 뚫고 독일군 후방까지 돌파해 냈습니다. 로딘의 제2 전차군과 기병-소총병 집단은 세프스크를 통과하여 노브고로드-세베르스키를 향해 빠르게 서진을 계속했습니다.

 

3월 1일까지 로코소프스키는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북쪽으로는 독일 제2 기갑군의 옆구리를 파고들었고, 남쪽으로는 독일 제2군의 측면을 위협했습니다. 이때까지 제79군은 전방으로 추진하여 바토프의 우익에서 전열에 합류했으며, 독일군 후방 깊숙한 오룔과 브랸스크로의 진겨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3월 7일까지 크류코프의 기병-소총병 집단은 로브고로드-세베르스키의 외곽에 도달했고, 독소전 전체의 동계 전역을 통틀어 붉은 군대 최고의 진격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표면상으로 볼때 소련군은 상당한 성과를 이뤄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만슈타인과 독일군의 함정이었다는 것을 로코소프스키와 스타브카는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역관광 곧 시작된다. 긴장 타라.

 

 

사진 출처들

http://shadowwar.wordpress.com/2009/05/
http://www.dipity.com/timeline/Kursk/list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oonjy2k&logNo=80020634254&viewDate=&currentPage=1&listtype=0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6497&menuId=227243&listType=2&from=null&to=null&curPage=1&logId=4119174

엔하위키

 

참고문헌

'독소전쟁사'-데이비드 글랜츠

위키피디아 'Third Battle of Kharkov'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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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Che_GueVaRa | 작성시간 10.05.01 ㅋㅋㅋㅋㅋㅋㅋㅋ 로코소프스키와 쥬코프의 사진 배열이 정말 기막히네요..ㅋㅋㅋㅋ 실제 쥬코프가 굉장히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고 거칠었다고 하는데.... ㅋㅋㅋ 로코스프스키는 전쟁 끝날 때까지 사형수 신분이었고..ㅋㅋ

    그 걸 감안하고 보면 정말 절묘한 배열이라 생각합니다. 딱 어울려요.
  • 작성자yuso | 작성시간 10.05.01 로코소프스키와 주고프는 당시 몇살이었나요? 상당히 젊어보이네요?
  • 답댓글 작성자Che_GueVaRa | 작성시간 10.05.01 yuso님// 검색해보니 쥬코프와 로코소프스키 둘 다 1896년 생이니까 독소전 당시에 40대중반이었습니다.
  • 작성자yuso | 작성시간 10.05.03 스탈린의 군부숙청덕인가요?상당히 일찍 장군이 됬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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