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러일 전쟁사]러일 전쟁사 - 52. 제2, 3차 돌격전(4)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2.04.29|조회수596 목록 댓글 6

들린나야 산이 일본군의 수중에 넘어간 것은 실로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음을 의미했다. 일본군은 203고지를 공격하기에 가깝고 편리한 지점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들린나야 산의 정상에서는 뤼순 내항의 대부분을 관찰할 수 있었다. 산 정상에 관측소를 설치한 일본군은 즉시 내항에 정박중인 러시아 군함을 향해 포격을 가했는데, 조건이 유리한 만큼 포격도 효과적이어서 러시아 군함이 연안에 접안한 후에야 명중률이 낮아졌다.

당시 도쿄에서는 승리를 확신하는 군국주의자들의 데모가 펼쳐지고 있었던 만큼, 비록 두 번에 걸친 돌격전이 실패했다 할지라도 승리에 대한 확신이 동요되디 않았다. 영국의 육군무관 제임스(D. James)의 보고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거리의 군중들은 뤼순을 함락시켜야 하다고 끊임없이 호소했다.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는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지만 뤼순은 함락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뤼순이 완전히 함락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돌격전중에 중단되었던 포위작업이 더욱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더 이상 군사력을 분산시키고 싶지 않았던 노기 장군은 동부전선의 한 곳을 공격목표로 선택했다. 새로운 목표로 선택된 곳은 항포격용보루 №.Ⅲ과 보루 №.3이었는데 일본군은 각 보루를 향한 전진평행호 구축에 신속하게 착수하여 10월 10일에는 이미 50~100m까지 접근했다.

동부전선에 병력을 집중시켜!

 

그 외에도 일본공병은 항포격용보루 №.Ⅱ를 상대로 약 80m의 거리에 평행호를 구축한 후, 그 곳으로부터 갱도를 굴착했다. 그러나 바위가 많은 토질이라서 적지 않은 어려움이 뒤따랗다. 일본군의 의도를 간파한 항포격용보루 №.Ⅱ의 수비대는 즉시 항갱도 두 개를 굴착하기 시작햇다. 10월 14일 점심 무렵 두 개의 항갱도 중 한 곳에서 일본 공병의 작업 소음이 확실하게 들렸으며, 곧이어 러시아군은 일본군의 갱도를 폭파했다.

일본군은 공병작업을 강화하는 동시에 요새에 집중포격을 가했다. 포병의 임무는 돌격하는 부대를 위하여 보루를 관통하는 구멍을 만드는 것과 방어용 구조물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특별임무에 11인치 유탄포가 사용되었다. 9월 18일 보루의 콘크리트 지붕을 관통할 수 있는,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유탄포탄은 요새구조물과 항구 및 도시의 여러 곳을 파괴했다.

나름 히든카드였던 11인치 공성포 (일본)

 

포격 첫날 이미 항포격용보루 №.Ⅱ와 Ⅲ 및 여타 보루 등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첫 번째 포탄에 현지 신문인 <노븨 크라이>지의 인쇄소가 파괴되었다. 두 번째 포탄으로 동부 연안에 정박중이던 폴타바 호의 갑판 2개가 관통되었으나 다행히 폭발하지는 않았다. 세 번째 포탄에 항구의 공방 중 1개 동이 파괴되었다. 이 외에도 포함 자비야카 호와 기선 노비크 호가 침몰했으며, 운송선 앙가라 호는 두 발의 유산포탄에 명중되어 침몰하기 시작했으나 여울쪽으로 예인되었다.

당시 극동총독 알렉셰예프의 관저도 포격으로 허물어졌다.

 

일본군은 평행호와 근접갱도작업으로 전진하면서, 수시로 러시아군을 공격했다. 즉 9월 21일 일본군 약 4개 중대가 야음을 틈타 제25연대 소속의 의용군부대가 방어중이던, 동부전선 우측의 산을 공격했으나, 나제인 육군소장의 지휘를 받은 러시아군의 반격을 받고 후퇴했다. 일본군은 9월 28일 보루 №.3 앞에 있던 철도노반을 점령했으며, 10월 3일에는 주 공격목표였던 항포격용보루 №.Ⅲ와 매우 밀접한 곳에 위치한 엄폐호 №.3의 일부를 점령했다.

당시 여순주변의 철도역

 

일본군 지휘부는 동부전선의 항포격용보루라인을 성공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진로가 개척되었다고 판단했다. 10월 12일 공격작전명령서가 하달되었다. 영국의 전쟁참관원 바틀렛의 표현처럼 “자신에 가득 찬” 본 명령서에 의거하여 일본 포병은 10월 13일부터 4일에 걸쳐 쉼 없이 동부전선의 모든 보루를 포격해야 했다. 공격 예정일은 10월 17일이었으며, 목표는 보루 №.3에서 포대 B 사이의 진지였다.

공병은 포병의 공격준비포격이 진행되는 동안 보병의 공격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항포격용보루 №.Ⅲ 앞에 있는 굴강을 모두 메워야 했다. 그러나 이 명령은 완수되지 못했는데, 일본군이 참호를 메우기 위해 가져다 놓은 짚단과 흙을 러시아군이 지하통로를 통해 치워버렸기 때문이었다. 일본군은 지하통로의 존재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노기 장군은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천황의 생일(11월 2일)이 임박했으며, 그 날까지는 전 요새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동부전선의 보루는 점령해야 했다.

10월 13일 아침부터 일본군은 제3군의 모든 포위포와 18문의 11인치 유탄포를 동원하여 동부전선의 보루와 뤼순 시, 항구를 강력하게 포격하기 시작했다. 11인치 유탄포와 6인치 구포(臼砲), 대포, 투척식 박격포의 집중포화로 방어구조물이 심각하게 파손되었다. 다수의 소총수용 참호와 항포격용보루, 보루의 흉장 등이 파괴되었으며, 많은 무기가 파손되었다.

러일전쟁 당시, 뤼순 공방전에 동원된 일본군의 11인치(28cm) 유탄포. 해안포를 운반해 사용했다.

 

10월 17일 포병의 엄호포격하에 항포격용보루 №.Ⅱ와 Ⅲ의 엄폐호를 점령한 일본군은 포대 B에서 보루 №.3 사이의 모든 전선에 걸쳐 총돌격을 실시했다. 돌격전에는 제9,11보병사단과 제1보병사단 소속의 일부 부대가 참여했으며, 공격은 12시에 5개 종대로 이루어졌다. 각 공격종대는 연대병력으로 구성되었으며, 2개 종대는 예비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뤼순 요새를 공격하는 일본 육군

 

일본군의 공격목표가 된 전선을 방어하던 병력은 총 26개 중대였으나, 그 중 대다수 중대의 전투력이 이전의 전투와 4일간에 걸친 공격준비포격으로 매우 약해진 상태였다. 예를 들면, 보루 №.3 앞에 위치한 참호를 방어중이던 제16연대 소속 제7중대의 생존자는 전체 병력 중 32명, 같은 곳에 배치된 제9중대는 41명 그리고 관둥 해병중대는 180명 중에서 70명에 불과했으며, 다른 부대의 사정도 이와 비슷했다.

일본군의 공격종대를 향해 대포와 소총, 기관총을 동원한 사격이 이루어졌다. 얼마 후 모든 보루와 포대 앞의 방벽사면이 전사자와 부상자로 가득 메워졌다.

한 개의 공격종대가 항포격용보루 №.Ⅱ의 흉장 안으로 돌입하여 일본군기를 세웠으나, 백병전으로 대응한 러시아군에 의해 몇 분 후 굴강 쪽으로 후퇴했다. 다른 공격종대는 포대 B 방벽의 엄폐된 교통호까지 도달했지만 수비대의 화력에 밀려 퇴각해야 했다.

일본군 중 일부가 포대를 돌파했으나, 백병전에서 모두 전사했다. 흉장의 아랫부분으로 후퇴한 일본군은 러시아군과의 백병전이 두려워서 전진하지도 못했으며, 맹렬한 총격 때문에 방벽으로 후퇴할 수도 없었다. 포대를 수비중이던 러시아군의 맹렬한 사격으로 혼란에 빠진 일본군은 몸을 던지듯 방벽으로 후퇴했으나, 엄폐물에 도달하기 전에 대부분이 전사했다. 몇몇 중대가 보루와 보루 사이를 돌파하여 후방으로부터 항포격용보루 №.Ⅱ를 점령하려 했으나 그 또한 격퇴되었다.

일본군의 우측 공격종대는 항포격용보루 №.Ⅲ을 향해 전진하여 굴강까지 접근했으나 돌격용 사다리가 너무 짧아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공격종대는 항포격용보루 №.Ⅱ 근처에 매설된 지뢰밭에 빠졌으며, 결국 퇴각했다.

돌격이 시작된 지 불과 3시간 만에 일본군의 공격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으며, 개방된 엄폐호에서만 진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일본군의 포격이 뜸해지다가 15시 35분에 완전히 중지되었다. 동부전선 수비대의 화력 앞에 물러선 잔여 병력은 무리를 형성하여 각자의 출발진지로 퇴각했다. 완전한 실패를 확인한 노기 장군은 2개 예비종대 및 나머지 병력을 전투에 투입하지 않았다. 재돌격이 있을 것이라는 수비대의 예상과는 달리 일본군의 공격은 포격에 한정되었다. 천황에게 바칠 생일선물은 이렇게 무산되어 버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4.30 원래 러시아군이 백병전에 능합니다. 나폴레옹과 맞부딪친 라이프치히 전투에서는 러시아의 바시키르 연대의 백병전 모습에 프랑스군들이 겁을 집어먹고 도망친 적도 있죠. 더구나 일본군에 비해 러시아군이 체격조건이나 다른 조건에서 훨씬 유리합니다. 효도르같은 체격과 싸움기술을 가진 적군들이 총검을 들고 돌격해온다면 아마 당할 재간이 없을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2Pac | 작성시간 12.05.01 효도르 언급에서 느낌이 팍 사네요. 키는 20cm 씩 더 큰 애들이 고함치면서 달려들면... --> 근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북한군하고 백병전해도 비슷한 상황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4.30 그래도 이때의 일본군은 태평양전쟁때의 일본군과 비교하면 인간미가 있어 보이죠.
  • 답댓글 작성자bookmark | 작성시간 12.04.30 이시기 일본은 백병전을 경시했고, 러시아는 반대로 백병전을 중시했는데 뭐 그런것 가지고. 압록강 건널때 영국 관전무관은 일본군이 '완벽하게 독일군을 카피했다' 는 평을 했습니다. 독일군이 약한 군은 아니잖습니까.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